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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dion Feb 12. 2016

상처받은 사람. 여기로 오라

후르츠바스켓

유리잔에 담긴  물처럼
 스치기만 해도
흔들리고 괴로워하던
시절이었다.


겨우 사춘기를 벗어나 혼자서 정신적인 자립을 할 무렵의 나는 그 어디서도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저 가만히 눈만 뜨고 있어도 대가없이 받을 수 있었던 부모님과 가족들의 무한한 사랑은 현관을 나서는 순간부터 얼마나 어려운지 몰랐기에 학업 이외에도 또다른 어떠한 노력이라는 것을 해야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부모님도 친구들에게서도 전해 듣지 못한 그 사실에 충격을 받은 채 그렇게 혼자 내던져 져 스스로의 마음-멘탈을 성장시키는 방법을 알지 못한 나는 아무 의식없이 받지 못했다는 상실감에 어쩌지도 못한 채 그저 작고 어두운 방 안으로 숨어들어 괴로워하고 아파하기를 반복했다.


약삭빠르지 못해 분위기 파악을 잘 하지도 못했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아니, 노력이라는 것 자체를 몰랐기에 그저 주변의 모든 것에 비해 내가 가진 것이 작아 보였고 하찮게 보였었다.

옆자리의 누군가가 칭찬을 받았거나, 받고 싶었던 좋은 성적, 그 밖의 많은 혜택 들은 노력하지 않은 만큼, 혹은 더 간절하지 않았던 만큼 나에게 쉽게 다가오는 법이 없었다.

그 순간순간의 좌절감에 쓰러지는 나를 지키기 위해 처음엔 그저 남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을 시기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지키기 시작 했다.  

저 사람은 분명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얄팍한 수를 썼을 것이다. 라던가, 저 사람은 원래부터 머리가 좋았을 것이다. 나는 왜 그렇지 못할까. 왜 나는 더 많이 가진 부모님을 만나지 못했나. 등등의 소소한 불평불만들이 작은 먼지가 굴러 큰 덩어리가 되듯 타인에 대한 나의 생각만으로 똘똘 뭉쳐져 애꿎은 마음 한구석에 일부러 생채기를 내고는 그 크기 만큼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괴로워하며 자책을 하는 악순환으로 나는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매일같이 밤을 꼬박 새도 끝내지 못할 만큼의 많은 과제들과 시간을 쪼개어도 개인 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빠듯한 아르바이트에 치여 겨우 눈만 뜬 채 시험 범위를 체크하기 위해 강의실을 옮겨 다니기 바쁘던 몇 년 동안 스스로 상처를 낸 마음은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 어두운 반지하 자취방의 문을 잠그고 몇 번을 확인하듯 꽁꽁 싸매고 여미고 다녔고. 스스로를 다독여 치유 할 줄도 몰랐고 생채기를 내기만 하는 그 괴로운 악순환에서 헤어나오는 방법을 몰랐던 나는 실망 감과 자괴 감을 버티지 못하고 지나가는 다른 이의 무심한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받고 좌절하는 흔하디 흔한 유리멘탈이 되어있었다.




작은 골방에 틀어박혀
스스로의 마음에 연고를 바르듯
만화를 읽고 또 읽었다.


작은 일에도 소소하게 상처를 받은 날은 어떠한 자신만의 의식을 치르듯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마치  누군가가 뒤따라와 어깨를 두드리며 너는 왜 그러냐고 왜 의연하지 못하냐며 따지고 물어 올 것 같은 두려움을 피해 뒤돌아보지 않고 냅다 자취방 안으로 도망을 치듯 문을 잠그고는 어두운 방 안 낡은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만화책을 펼쳐 들었다.


유치하거나 혹은 잔인함을 자각하지도 못한 채 그저 종이, 펜선과 활자가 난무하는 만화책을 읽고 책장을 넘기며 낮 동안 상처받은 마음을 온전히 쏟아 부었다. 마치 술을 마시면 머릿속이 마비되어 다른 사고를 전혀 할 수 없게 되듯 나는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것을 멈추기 위해 읽고 또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다음날 아침에 다시 저 방문 밖을 나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화에서 위로를 받다.


그러다 멍해진 머릿속으로 찬물을 끼얹듯 마음에 박히는 대사에 갑자기 현실로 돌아올 만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저 가볍고 아기자기하게 그려지는 소소함 속에서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위로받기 위해, 혹은 같은 마음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풀 듯 모여들고 아파하고 공유하는 이야기들을 그려 온 이 만화 때문에.

주먹밥처럼 등 뒤에 붙은 자신의 장점은 타인의 눈에는 쉽게 보이지만 스스로는 알기 힘들다고 말하는 만화 주인공의 대사에 저 깊은 바닥에서 웅크린 채 뒤돌아 앉은 자신을 찾아 내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자각하게 만든 것이다.

그 동안 타인의 장점만 찾기에 바빠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나에게 마치 훈계를 하듯 만화 속의 대사가 내 머릿속을 맴돌며 마비되었던 어떤 곳으로 흘러들어 예상치도 못한 위로를 받게 된 것이다.




지금은


그 누구도 못 말릴 정도로 뻔뻔한. 남들보다 강한 멘탈을 가진 아줌마가 되어 일부러 생채기를 내려는 날카로움에도 굴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 졌다.


가장 약해져 있던 그 시간의 나에게 가장 큰 위로와 힘이 되어 준 덕분에 아직도 마음 한편에 고이 보관되어 있는 만화.

그저 다른 사람의 모습에 현혹되어 자신을 돌아보는 법을 잊은 상처받은 이에게 힘이 되는 추억을 남겨주어서 고마운 작품이다.






후르츠 바스켓
타카야 나츠키의 만화와 이를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다. 만화는 하나토유메에 1998년 16호부터 2006년 24호까지 연재되었고, 단행본은 23권으로 완결되었다.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은 총 26편으로, 일본에서는 테레비도쿄에서 2001년 7월 5일부터 2001년 12월 27일까지 방영하였고, 대한민국에서는 투니버스와 애니원에서 방영하였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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