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게 생긴 건 뭘까

여자가 봐도 예쁜 여자들

by 이지원입니다


예쁘게 생긴 건 뭘까


"나… 이 얘기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유퀴즈에 출연한 손예진이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욕먹을 각오 같은 건 이미 단단히 했다는 얼굴이었다. "얘기해 보세요!" 유재석과 침착맨의 목소리가 양쪽에서 재촉했다. 둘은 능숙하게 멍석을 깔았다. 손예진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입을 열었다.



다섯 살인가, 여섯 살 때였다고 했다. 엄마 손을 잡고 버스를 타고 다니던 시절. 그때 사람들이 자꾸 말을 걸었다고 한다. "어, 너 너무 예쁘게 생겼다." 그래서 집에 와서 거울을 들여다봤단다. 다섯 살 손예진은 거울 속 자기 얼굴을 보면서 진지하게 생각했다. '예쁘게 생긴 건 뭘까?'



침착맨이 다섯 살 손예진의 심정을 알아챘다는 듯 거들었다. "(예쁘다는 개념을) 모르니까, 모르니까." 유재석이 한 줄로 깔끔하게 요약했다. "(예쁘다) 그게 나다." 모두가 단숨에 납득했다. 손예진이니까.




여자가 봐도 예쁜 여자들
[분위기미인들의 이야기]


2012년이었다. 7년간 물리치료사로 일하다가 돌연 상경하여 지태주닷컴이라는, 지방태워주식회사의 줄임말인 회사를 운영하게 됐다. 6개월간 서울시의 지원을 받으며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죄다 만나고 다녔다. 일평생 좁은 인간관계를 고집하던 내게는 도전이자 곤혹이었다. 처음엔 어느 대학 교수, 어느 회사 대표를 만났지만, 내가 지루한 걸 못 참는 편이라 이후엔 책과 블로그를 뒤져서 끌리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때 만난 사람들을 기록한 일기장이 있다. 대략 200명쯤 됐는데, 나름대로 구분하고자 5가지 클립으로 나눴다. 그중 하나가 '분위기미인'이라는 클립이었다. 거기엔 30명 남짓한 여성들이 있었다. 들춰 볼 때마다 점차적으로 내 인상이 바뀌는 걸 느꼈다. 각양각색으로 떠오르는 그녀들의 잔상이 내 미세 근육을 자극하고, 그로 인해 내 주변에 그녀들과 닮은 분위기가 형성되는 셈이었다. 확신하건대, 그녀들을 떠올리는 시절과 덮어놓는 시절의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분위기 있다는 건 뭘까? 깨끗한 피부나 저칼로리 요리처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개념을 파고들수록 내 삶에 실질적인 변화가 생겼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2018년 어느 여름이었다. 가까운 사람이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소개해줬다. 들어가 보니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섬세하고 세련된 디자인이 돋보였다. 같은 요리도 어떤 접시에 담아내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게 느껴지듯이, 이곳에선 내 글이 다르게 읽힐 것 같았다. 작가 신청을 했고, 승인이 났고, 오랫동안 묵혀둔 이야기를 구구절절 써 내려갔다. 제목은 '여자가 봐도 예쁜 여자들'이었다.



그게 첫 글이었다. 그런데 그 첫 글이 76만 뷰를 기록했고, 유튜브는 210만 뷰를 넘었고, 2021년 여름 책이 됐고, 베스트셀러가 됐다. 말도 안 되게 커다란 운이 내게 따랐던 것이다. 이후 다른 책을 출간하자는 제의를 여러 번 받았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나는 상상력이 풍부한 창작자가 아니라는 것을. 계속해서 또 다른 세계를 그려낼 힘이 내게는 없었다.





8가지 색에서 6가지 꽃으로


처음엔 색깔이었다. 8가지 색깔로 여덟 명의 분위기미인을 그렸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색은 겉에 입는 것일 뿐이니까. 그때 월트 휘트먼을 만났다. 그는 1855년 12편의 시로 시작한『풀잎』을 평생에 걸쳐 아홉 차례 개정했다. 임종 직전까지, 나이프도 포크도 들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진 상태에서도『풀잎』최종판 작업을 했다. 33년간 자신의 인생 전부를 한 권의 책에 담았다.



나도 이 하나를 평생 쓰기로 했다. 그리하여 색은 꽃이 되었다. 라벤더, 백합, 튤립, 코스모스, 프리지아, 장미. 색은 입고 벗을 수 있지만, 꽃은 뿌리부터 다르다.



라벤더, 백합, 튤립,
코스모스, 프리지아, 장미


[공지] 『여자가 봐도 예쁜 여자들』2026판 연재


2021년 여름, 『여자가 봐도 예쁜 여자들』을 썼습니다. 5년이 지났습니다. 같은 재료, 다른 깊이로 다시 씁니다.


이 글 속 인물들은 제가 분위기상점에서 만난 여러 미인님들에게서 발견한 매력들이 모인 '우리의 초상'입니다. 그녀들 속에서 당신 자신을, 혹은 당신이 아는 누군가를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이 이야기는 매주 화요일, 브런치 멤버십(월 3,900원)에서 이어집니다.


01 프롤로그: 예쁘게 생긴 건 뭘까

02 분위기 있는 여자 특징 5가지
03 3개월마다 남의 인생을 사는 여자 이야기
04 느리게 걷는 당신이 놓치지 않는 것들
05 매일 아침 사과를 깎는 여자 이야기
06 호의가 부담이 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07 50원 때문에 300만원 날린 여자 이야기
08 억울한 순간을 통과할 때 생기는 힘
09 198개의 전화번호를 지우지 못하는 여자 이야기
10 왜 당신은 속정을 나누고 싶어 할까
11 30분 전에 룸서비스를 주문한 여자 이야기
12 나쁜 여자가 섹시한 이유
13 양 백 마리를 세며 목욕하는 여자 이야기
14 가시를 숨기지 않아도 사랑받을 수 있다
15 에필로그: 나처럼 예쁜 여행 여자는 '나' 뿐이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