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페라의 방

첫 번째 질문

by 이졔롸잇나우



밤하늘 같이 어둡고 반짝이는 벨벳 휘장을 걷으면 거기엔 그녀가 있다.


'Madame πέρα (péra)'


요염하게 허리를 비틀고 앉은 그녀의 입에선 핑크색 연기가 피어올랐고, 창백한 손엔 가죽소재의 시샤 파이프가 들려있었다. 파리한 얼굴 위에 어지럽게 별자리가 수놓아진 그녀는 가느다란 은색 테를 가진 모노클 너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대를 꿰뚫으려는 눈은 까맣게 반들거렸고 안광엔 호기심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것이 려있었다. 그녀가 몸을 살짝 나에게 기울이자, 훅 끼쳐 오는 연기가 볼에 닿으며 탄산 거품처럼 따끔거렸다. 이유 모를 수치심을 느끼며 그녀의 입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늘의 질문,
너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무엇인가."



온몸으로 느껴지는 강한 중력을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지금보다 앞선 모든 날을 훑으며 래로 아래로 떨어져 갔다.





리의 압력에 밀려 좁은 길을 찢고 나온 나의 태초 누구나 그렇듯 작고 말캉한 것이었다. 어떤 형태도 가지고 있지 않은 아(無我), 한없이 맑고 몽글한 물방울로 긴긴 시간을 그저 실체 없는 '어떤 것'으로 살아온 듯하다.


나를 만든 것은 미숙한 존재들이었다. 들은 나의 존재를 결정했지만 그들을 선택한 것은 기질 속에 들어있었던 '이타(利他)'가 아니었을까. 나의 태초는 그들을 가여워했으리라.


그들은 내가 태어나는 순간, 고귀한 자격을 부여받았지만 함께 따라오는 의무라는 것에는 감흥이 없는 자들이었다. 딱히 나를 키우려 하지 않았고 그저 살아가게만 해주었다. 나 또한 미완의 울타리 안에서 그저 길러졌다.



그들은 울타리 밖에선 안전했고 울타리 안에선 위험했다.


내 유년의 나날은 대부분 해가 저물어가는 6시.

돌아갈 곳이 없는데 돌아가야만 했다. 나에게 주어진 울타리를 멀리 벗어나지도 들어가지 못고 한참을 서성이던 나날.


그때의 나는 그 어떤 경계도 가지지 못했다. 나와 타인을 구분하는 경계는 스스로 들고 태어나는 것인지. 누군가가 부여하는 것인지. 배워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무지 속에 방치된 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오랫동안 천천히 남들보다 아주 아주 더디게 실체화되어 갔다.


베이는 줄도 모르던 말캉한 것은 수도 없이 다져지고 또 뭉개지고 채에 걸러졌다.

독한 하루하루가 흘러, 그들의 시대가 한걸음 물러나고 그들의 눈가에 하나 둘 거미줄 같은 주름이 늘어나기 시작하는 어느 날 울타리 밖으로 밀려났다.




나마의 울타리마저 없어진 내 밀려온 건 사막. 그들은 은 적도 없던 것을 독촉하며 내 등에 빚을 지워주었다. 이미 나의 이타(利他)는 메말라 내어 줄 것도 없는 껍데기를 기름을 짜내듯 쥐어짰다.


석유를 도둑맞은 사막의 밤, 건조하고 추운 나날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람이 남긴 흉터가 벽화처럼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쉽게 상처받는 것. 찢어져 너덜거리는 '체(體)'를 미고 걷는 나의 앞에 사막의 눈이 돋아났다. 메마른 동공 들여다보려는 모든 이를 들여다다.


공의 뒷면이 내 상처를 훑었고 본능이라는 것은 비로소 빗장을 열었다. 내게 주어진 단 한 번뿐인 '생'이 사무치도록 아까워졌다. 처음으로 사막의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감촉, 폐부를 채우는 모래 섞인 바람의 냄새가 느껴졌다.


다 해져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몸뚱이로도 살고 싶던 것일까. 돌아보니 아주 먼 곳에서부터 따라온 발자국은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이토록 가여운 꼴을 하고도 살고 싶은 것이구나.


'생'을 따라 쉬지 않고 걷고 있는 낡은 발을 묵묵히 따라갔다.






자욱한 연기 속에 마담페라의 모노클이 선명히 빛났다. 사막을 걷던 발끝의 각을 온전히 느끼며, 그녀의 앞에 앉아 덤덤한 눈으로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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