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시간 아닌데요?

거절이 힘든 그대에게

by 이졔롸잇나우



불과! 어제, 오늘 있었던 일.
평소 같았다면 절대 꿈도 못 꿨을 내 최애 커피집의 첫 샷을 오늘 먹어보게 됐다는 사실.


왜냐고?


사건은 핸드폰에 찍힌 불길한 부재중 전화 2통을 발견하고 시작되었다. 다음날 첫 타임(우리 매장 오픈시간은 오전 10시이다.) 손님의 부재중.


이미 예약 약속을 정했는데 다시 연락이 온다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니다. 보채듯 2번이나 남겨 뒀다면 더더욱. 이분은 심심하면 변경이나 노쇼를 일삼는 내 마음속 블랙리스트 고객이기도하다. 마음 같아선 차단해버리고 싶지만 그녀가 속해있는 커뮤니티는 안타깝게도 *동네 목욕탕 이다.

*동네 목욕탕이란?

동네에서 방귀 좀 뀐다 하는 만렙 아주마니들이 모여있는 던전과도 같은 곳이다. 보통 수 십 년 된 중소형의 목욕탕이고 달목욕에 1만 원만 추가하면 위층 헬스장, 에어로빅도 이용가능! 텃세가 심해 신규가 적고 10년 이상 고락을 함께한 달목욕러들이 50% 이상을 차지한다. 사우나 안에선 친목부터 권력과 암투(?)가 벌어진다. 그런 이곳에서 미운털 박히면 동네생활은 그야말로 아웃!


이렇듯 이 작고 시끄러운 동네 목욕탕 소속에 이미 그 목욕탕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 매장에 오고 있어 그 고객만 차단하기도 어려운 상황. 저번 노쇼 후 연락을 안 받았더니 가게에 찾아와서 직접 예약을 잡고 갈 정도의 대범함과 끈기! 까지 장착한 그녀의 집착에 고마워서 눈물이 날지경이다.

한데 왜 연락한 걸까? 떨리는 마음으로 통화버튼을 누른다.


-고객님 저희 10시 오픈이에요,,
-알죠 아는데,, 진짜 미안한데 원장님이 좀 만 일찍 나오면...
-얼마 나요? 하.. 그건 좀 어려운데.. 네네.. 하..


요는 그것이다. 본인의 일정이 있으니 1시간 동안 손젤 발젤을 다 하던지 아니면 조금 일찍 좀 오픈해 달라는 거다. 그녀의 '조금 일찍'이란 게 아침 8시 30분. 나도 안다, 거절해야 하는 거. 한번 받아주면 금세 두 번, 세 번 우스워진다는 거. 근데 나도 인간인지라 거절하는 말도 한두 번이지 끝도 없이 매달리면 매정하게 말이 안 나온다는 거다!


"으이그.. 물렀어, 물렀어!"

어제를 곱씹으면 이제는 나 스스로에게 화가 울컥 올라온다. 손님도 손님이지만 내 룰을 어겨가며 오케이 한 나 자신에게 더 화가 나는 것이다.

이상하게 어떻게든 해달라며 선택지를 내쪽으로 미루면 그걸 또 나는 어떻게든 해내려 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사장병'이라는 것인가! 내 손을 떠난 모든 것들까지 책임지려 하고, 결국 손해도 감정손실도 내가 다 당하는 병. 내 샵이 1인 샵이기도 하고 여기가 소위 동네상권이다 보니 어느샌가 난 '예스맨'이 되어있었다.

애초에 가게를 오픈하면서 정한 룰인데, 이사정 저사정 봐가며 깨기 시작한 후부터 어느새 나 스스로에게도 고객에게도 영업시간은 초과 가능한 부분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된 것 같다. 내 딴엔 예약이 어려운 샵이 되는 게 부담스러워서, 나만 조금 더 힘들면 어찌 됐든 가게이미지도 좋아지고 돈도 버니까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런데 이렇게 나를 깎아가며 봐주는 고객의 사정이라는 게 참 본인위주인 것이라...


급하게 해야 한다 해서 겨우 뒷손님께 양해 구해 밥도 못 먹고 받았더니 "오늘 오후에 헤어 잡아놔서 한번에 하려구요~ 두 번 세 번 나오기 싫더라고요." 웃으며 "네.. 네.." 하고 넘겼지만 으이구..진짜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오늘은 그랬다. 2주 전부터 10시 예약을 잡아놨지만 갑자기 11시 30분까지 가야 할 곳이 있다는 거다. 보통은 먼저 잡힌 예약이면 다른 시간대로 약속을 잡거나 둘중 하나를 포기하지만 둘다 하고 싶으니 나에게 '내입으로 말하기 미안하지만...' 이라고 말하며 8시반 출근을 요구 하는 것이다.

내가 잘하려는 마음이 그냥 이런 식으로 소비된다는 걸 깨달을 때면 매번 괴롭다. 이렇게 쌓인 시간들이 모이면 내 몸도 지치게 된다. 충분한 휴식이 있어야 다음 일도 잘 해낼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나하나 퀄리티가 중요한 일들은 더더욱 그렇다. 차라리 한 시간이라도 더 자서 내 몸을 회복하는 게 더 이득이지 않았을까. 우울해진다 나 잘하고 있는 게 맞나?


"사장은 나야."

출퇴근시간을 내가 아닌 고객이 정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내 패턴은 무너지게 된다. 내 컨디션이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것은 내 가게인 것이다. 나라는 사장이 나라는 직원을 추가수당도 없이 일을 시킨다고 생각하면 그 얼마나 악독한 사장이란 말인가? 그 직원이 나 자신이 아니었다면 고용노동부랑 통화할 일이다.

만약에 이런 일에 아무런 스트레스를 안 받는 성격이라면 이 같은 고민은 필요 없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성격이라 스스로 고통받거나, 또 이런 고객과의 실랑이로 힘든 사람이 있다면 우리 마음을 고쳐먹고 연습해 보자!



"고객님 저희 샵 오픈시간은 10시입니다."
"오픈 준비시간도 있어서 더 빠른 시간은 어려워요."
"이날은 어렵고 이번주는 이날 이날 가능해요, 아니면 다음주 이날 이날 예약가능하세요"(대안제시)


이 정도의 완곡한 거절만으로도 강제 추가근무를 면 할 수 있다. 매정한 게 아니라 다른 손님께 해드릴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한 관리라고 생각하면 좀 더 단호해질 수 있겠다. 내가 할 일은 주어진 시간 안에서 방문하는 고객님께 양질의 서비스를 성심성의껏 제공하는 일이다.

나처럼 거절이 힘든 사람들이 있다면, 거절 못하는 나 자신에게 까지 또 스트레스받거나 자학하지는 말자. 딱 잘라 잘 거절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같이 인간미 있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조르는 손님이 있다는 것을 보면, 사실은 우리 가게 좀 잘되는 것일 지도?

가게운영에 정답은 없다. 다만 나한테 맞는 길을 매번 고민하며 찾는 것뿐. 이런 고민들조차 힘든 자영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가 애쓴 흔적이 아닐까. 어쩔 수 없이 힘들게 스케줄을 잡았다면 뒤에는 나를 위해 충분히 쉬는 시간도 만들어주자. 일에 몰입한다고 내 기쁨에 소홀하지 말길 바란다. 나 또한 스스로 미련하다고 자책하지 않고 다음엔 더 나은 방법을 찾아 성장하는 사장님으로 거듭나려 한다.

사장님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은 일찍 퇴근하십쇼!!









첫 연재에 글을 쓰고 지우고

몇번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새로운 도전의 설렘을 안고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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