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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Jan 09. 2020

커피 한 잔, 과자 한 봉지

야금야금 소액결제가 늘어갈 때

아하, 요놈이 무섭구나. 


가계부 앱을 쓰다 보면, 가끔은 너무 적나라한 통계에 저 혼자 민망해질 때가 있다. 자취생이 써봤자 어디다 돈을 쓰겠냐마는 안 그래도 높은 엥겔지수가 여기서 더 높아지는 것만은 사양하고 싶다. 여러 카테고리가 있겠지만, 가장 알아채기 어려우면서도 순식간에 불어나는 건 아무래도 식비 중에서도 커피값, 그리고 간식비가 아닐까 한다. 외식비야 자릿수가 눈에 보이다 보니 의식해서 줄이려 한다지만 800원, 1000원씩 나가는 간식비나 친구들과의 한 잔, 공부할 때 한 잔하는 커피는 달갑지 않은 사족들이 꾸물꾸물 붙어든다. 에이, 요거가지고 뭘. 하다가 된통 맞았다. 가계부 통계만 봐도 생활습관이 보이고, 식습관이 보인다. 스스로 정리하기 민망스러울까봐 요즘은 똑똑한 앱들이 다 해주니, 차마 외면하기도 그렇다. 


작년 초에는 적당한 주 1회 외식. 그리고 매주 장을 봐와서 신선한 재료로 요리를 했다. 교환학생에 다녀오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라 혼자 해먹는 게 습관이 되고, 그게 더 자연스러웠던 때. 지금은 외식, 식재료비와 간식비, 커피값이 비등한 놀라운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해먹는 횟수는 줄고, 돈에 압박감은 여전하고. 그래서 편의점 간식을 자꾸 찾으면서, 배가 차지 않으니 자꾸 하나씩 더 집어들게 되는 패턴이다. 방학 중에 특별한 일도 공부도 없이 시간은 많은데 시간이 많을수록 더더욱 집안일과 요리를 미루게 된다. 내가 사는 공간과 내가 먹는 것을 살뜰히 신경쓰는 일인데, 분명 나를 위한 일인데. 


그뿐만은 아니다. 생전 갈구하지 않았던 술과 야식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잠옷으로 다 갈아입고 나서도 어쨌든 꾸역꾸역 나가 캔맥주와 과자를 사는 것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아, 이게 혼자 사는 직장인, 혼자 사는 학생의 어떤 스테레오타입이구나. 예외라고 생각한 건 오만이었다고. 그런 시기가 필연적으로 오게 마련이라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변명도 했다. 끌려가기 싫은 마음에 라면만은 사다놓지 않았다. 정말이지 웃긴 자존심이 아닐 수 없다. 라면을 사는 순간 자취한테 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뭘 위해 버티는지도 모르고 그냥 부러 그랬다. 아주 바득바득. 그렇다고 그놈이 포기를 하진 않더라. 다른 곳으로 살금살금 흩어져 저녁 9시, 10시, 집에 가는 길에 여기저기서 유혹의 손길을 뻗더라. 


외로움 때문인지, 식습관이 바뀌어서인지, 시간이 남아 돌아서인지, 인생에 욕구불만이 있어서인지. 괜히 살 것도 없으면서 외투만 대강 걸치고 대형마트를 가면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 섞여 매대를 구경하곤 했다. 이런 시간낭비가 어딨느냐며 속으로 머리를 쥐어박으면서도. 괜히 노트북 하나 들고 카페를 가고는 했다. 집에서는 집중이 안된다며. 방 책상에는 이제 찬기가 흐른다. 허무하게 팽 당한 것이다. 괜히 시장을 거닐다 꽈배기, 찹쌀 도너츠 하나를 사들고 들어가 다 식은 맛없는 빵을 우적우적 씹어 넘긴다. 체를 하고, 다음 날 늦잠으로 이어지고, 이렇게 의식도 못하는 사이에 아주 견고한 고리가 하나 만들어졌다. 


발목이 삔 것처럼, 아주 조금 불편하면서도 무시할 수가 없는 이 경고등. 작은 신호. 아무래도 이제 정말로 일어나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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