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갈만, 인도양 그리고 대서양이 만나는 곳
깐얀꾸마리에서의 둘째 날을 맞았다. 하늘은 쉽게 구름을 걷지 않았고, 일몰을 못 본 우리는 일출도 보지 못했다. 우기의 여행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어서 쉽게 마음은 접었고, 바람이 많이 불었기 때문에 배가 뜨는지가 더 궁금했다. 그 멀리까지 가서 일몰, 일출도 못 봤는데, 섬에도 못 들어가면 그거는 많이 아쉬울 것 같았다.
호텔 밖으로 내려와 봤다. 전날 저녁에는 안 보이던 단체 관광객들이 타고 온 듯한 대형 버스들이 해안 도롯가에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길게 주차되어 있었다. 깐얀꾸마리가 힌두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시각적으로 웅장하게 느껴졌다. 수많은 버스를 보니까 이제는 배가 뜬다 해도 우리가 탈 자리가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미모 대결이라도 하는 듯이 화려한 색깔로 개성각각 치장한 버스 구경이 재미있었다.
호텔로 올라왔다. 아침 식사시간이 늦은 인도인들, 그들에게는 다소 이른 그 시각에 호텔 뷔페식당엔 우리 둘 뿐이었다. 조용한 식사 시간이 무척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 버기를 불러서 정원 한 바퀴를 도는 것으로 아침 산책을 대신했다.
바람이 좀 잦아드는 것 같아서 배가 뜨는지 선착장으로 나가봤다. 타밀나두주 최대 명절인 그들의 추수감사절, 퐁갈(pongal)을 앞두고 큰 시장이 열렸다. 수많은 가게들과 상인들과 관광객들로 아침부터 시장 골목은 인산인해였다. 사람들 사이를 같이 걸으며, 시장 구경도 하며 바닷가로 나왔다.
존슨이 앞장서서 선착장에 서둘러 가보더니 파도가 높아서 배가 못 뜬다는 말을 전했다. 하는 수 없었다. 시장 구경이나 하고, 호텔에서 수영이나 하며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아쉬웠지만 긴 인도 생활을 정리하면서 인도의 남쪽 땅끝에 와봤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우리가 힌두교인도 아닌데 그 섬에 안 간들 뭐 어떨까라는 억지 이유를 갖다 붙이며 위안 삼았다.
섬은 그 안의 템플이며, 바다 위의 큰 동상이며, 육지에서도 눈으로 잘 보이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멀리서 바라만 보다가 다시 시장 골목을 빠져나왔다.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다. 섬에 못 가서 아쉬운 사람들이 행여나 배가 뜰까 봐 멀리는 못 가고 근처를 배회하는 듯 보였다.
걷다 보니까 호텔이 보였다. 관광버스가 줄지어 서있는 호텔 근처 바닷가는 또 다른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남자들이 대부분인 그곳에는 아침밥을 직접 만들어서 먹는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밥 이래 봤자 채소 썰어 넣고 맛살라 가루 섞어서 끓인 멀건 커리가 다이겠지만, 남자들은 불을 피우며, 채소를 썰며 분주해 보였다. 눈이 마주치면 함박웃음을 짓고 인사를 하고,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으면 포즈도 취해주었다. 앞만 보며 걷던 남편이 내 모습이 웃긴 모양이었다. 남자들만 득실 대는 그곳에 여자 혼자서, 그것도 외국인이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대화하는 모습이 신기하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인도에 오래 살았나 보다 생각했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들이 아무렇지가 않았고, 말 걸고 사진 찍어달라는 그들이 싫지가 않았다. 수백수천 명의 인도 남자들 사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잘 헤집고 다니며 사진도 찍었다. 그들의 눈에 나는 '외국인'이었지만 내 눈에 그들은 그냥 '사람들'이었다. 나도 마치 그들처럼 생겼을 것으로 착각을 하며 길을 걷고 있었다. 그들과 섞여서 살았던 10여 년,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았었다.
좀 전의 세상과는 완전 다른 세상으로 들어왔다. 시끄럽지 않고, 깨끗한, 아무도 없는 호텔 야외 수영장에서 벵골만인지, 인도양인지, 대서양인지 모를, 세 바닷물이 합쳐진다는 그 바다를 바라보며 둘이서 물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바다가 바로 내려다 보이는 멋진 수영장을 우리만 즐기고 있었다.
수영을 끝내고 룸에 막 들어오니까 휴대폰이 울렸다. 배가 뜬다고 했다며 빨리 내려오라는 다급한 존슨의 목소리에 서둘러서 체크아웃을 했다.
선착장에는 배가 뜨기만을 기다렸던 사람들로 이미 가득했다. 50루피짜리 승선 티켓을 들고 우리도 긴 줄을 섰다. 섬이 가까워서 배가 자주 오가는지 긴 줄은 빠르게 줄어들었고, 우리도 드디어 배에 올랐다.
타도 괜찮을까 싶은 너무 낡은 배와 깨끗하지 않은 구명조끼, 인도가 처음이었으면 그 배를 타기가 두려웠겠지만 우리에겐 너무 익숙한 모습이어서 아무렇지 않게 수많은 인도인들 틈에 끼어 앉았다. 지저분한 구명조끼는 주황색 짐더미처럼 수북이 쌓아두기만 하고 입는 사람이 없었다. 안 입어도 된다는 존슨과 우리만 입고 있었다. 바람이 잦아든 바다 위를 배가 떠 갔다. 배 타는 일은 언제나, 어디서나 신나는 일이었다.
많은 인도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과 함께 금방 섬에 도착했다.
그들에게 성스러운 섬, 신발을 벗어서 맡겨야 했다. 땡볕에 돌섬을 걷다가는 발바닥에 화상을 입지 않을까 싶은 남인도의 태양인데, 흐린 날씨가 오히려 고마웠다. 날씨 때문에 일몰도 일출도 못 봤지만, 바람이 세서 배가 못 뜰까 걱정이었지만, 그 날씨 덕분에 맨발로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돌섬을 구경할 수 있었다.
돌섬 위의 큰 바위를 깎아서 만든 석조 건축물은 이미 다른 곳에서도 많이 봤었지만 볼 때마다 신기하고 대단했다. 조각의 섬세함과 아름다움은 봐도 봐도 감탄을 하게 만들었다.
종교가 다른 외국인인 우리 눈에는 인도의 최남단의 섬에 있는 단지 정교하고 아름다운 건축물, 큰 석조상이었지만 힌두교도 인도인들은 그들의 성지인 그곳을 다른 눈으로 봤을 것이다. 버스를 타고 며칠씩 노숙을 하며, 오로지 신앙심 하나로 먼 길을 왔을 그들은 우리와 분명 달랐을 것이다.
시장 골목에서 봤던 족히 수천 명은 될 것 같던 그들 모두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이틀째가 되니까 그들에게서 지독한 신앙심을 보게 되었다. 종교의 힘으로 살아가는 그들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인도의 남쪽 가장 끝에 세워진 신상과 템플과 메모리얼이 그들에겐 어떤 의미일지가 읽혔다. 단순한 관광이 목적인 우리와는 분명히 달랐다. 배 안에서의 기대에 찬 그들의 눈빛을 나는 봤다.
작은 섬을 바람과 함께 한 바퀴 돌고, 뭍으로 돌아가는 배에 올랐다. 돌아가는 배는 바람에 심하게 흔들렸고, 섬에 들어갈 때와 달리 탑승객 거의 모두가 낡은 주황색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 안 그래도 흔들리는 배 때문에 모두 심각해졌는데, 출발하자마자 배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술에 취한 남자와 승무원 사이에 실랑이가 있었다. 위험하니 난간에 기대지 말라는 승무원과 술이 취해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남자가 곧 큰 싸움이 날것처럼 배 안은 어수선했다.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바로 코 앞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또 한 번 느꼈다. '우리 참 인도에 오래 살고 있구나'라고. 그 자리를 피하기는커녕 되려 그들을 말리고 있었다. 외국인 여자가 나서니까 좀 누그러지는 듯이 보였다. 큰 싸움이 날 것 같았던 그들에게는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뭍에 도착했다. 선착장에서 걸어 나오면서 보이는 어촌마을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화려한 색이 칠해진 어부들의 목선이 그 풍경에 한몫을 하고 있었다. 이제 다시는 못 올 것 같은 그곳, 기념사진도 여러 장 남겼다.
바위섬을 제법 오래 걸어 다녀서 갈증이 났는데, 마침 코코넛 상인이 보였다. 무섭게 생긴 칼로 내리쳐서 구멍을 낸 코코넛에 빨대를 꽂아서 단숨에 한통을 비웠다. 갈증에는 코코넛 주스만 한 게 없다.
해변가를 따라서 쭉 걷다 보니까 작고 예쁜 성당이 보였다. 내가 성당 내부 구경을 하는 동안, 남편은 그 사이에 멀리 방파제 위를 걷고 있었다. 나도 방파제에 가보려고 나섰다.
너무 예쁜 어촌 풍경 구경하며, 부드럽고 고운 모래가 발가락 사이를 간지럽히는 해변을 따라 슬슬 걷고 있는데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두두둑 쏟아져 내렸다. 아열대 지방 특유의 예고 없이 갑자기 내리는 폭우였다. 존슨은 비를 맞으며 차를 가지러 갔고, 마을 어부들이 쉬는 공간으로 나는 비를 피할 수 있었다. 남편은 비 피하기를 포기했는지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설레설레 방파제를 걸어 나오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내가 있는 공간을 둘러보았다. 날씨 때문에 고기잡이를 포기한 어부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많은 인도 사람들, 인도 남자들 사이에 여자는 나 혼자였다. 카드놀이에 심취해 있어서 낯선 외국 여자가 그곳에 와있는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그러다가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인도 남자들만 가득한 그 공간이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움찔 긴장을 하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시장 골목과는 다른 공기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 남자, " 비가 많이 오죠? 비 피해서 잘 들어왔어요" 라며 유독 하얀 치아를 한껏 드러내며 말을 건넸다. 순간 경계심이 풀렸다. 나도 웃으며 "땡큐!"라고 대답했다. 괜히 긴장했던 내가 미안했다.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니까 그 남자가 한 말은 영어가 아니었다. 타밀어였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다 알아 들었다. 말을 알아들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 그 마음을 읽었다. 친절하고 순박한 어부 아저씨들이었다.
카드놀이하는 어부 아저씨들의 소란한 목소리와 굵은 빗방울이 내는 우렁찬 빗소리와 비 내리는 어촌마을의 아름다운 바다 풍경, 더없이 좋았던 시간이었다. 지금도 깐얀꾸마리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다. 영화 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듯이 그 풍경이 보이고, 그 소리가 들리고, 그 냄새가 코 끝에 와닿는다. 잊지 못할 순간이 되었다.
인도의 땅끝 어느 어촌 마을의 낯선 곳에서 나는 그렇게 혼자서 감상에 젖어 있었다. 11년의 인도 생활이 영화 필름처럼 지나갔다. 길었지만 짧았던 11년이었다. 두렵고 낯설었던 인도가 편하고 익숙해지기까지, 그 11년의 시간을 그곳 어촌마을, 어부들의 쉼터에서 다시 경험했다.
비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고, 인도인 가족이 나처럼 비를 피해서 들어왔고, 곧이어 남편이 왔고, 내 휴대폰으로 어부 아저씨의 위치 설명을 들은 존슨이 차를 끌고 왔다. 딱 맞게 픽업을 와 준 차를 타고 깐얀꾸마리를 떠날 준비를 했다.
차창 밖의 비 내리는 깐얀꾸마리 마을은 너무나 황홀했다. 첸나이에 살면서 초록색 집도, 보라색 집도 더 이상 이상하게 보이지 않던 때가 있었다.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알록달록 인도 집들은 어느 순간부터 내 눈에도 예쁘게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그날의 빗방울 너머 차창밖 풍경은 더할 나위 없었다.
귀국 이삿짐 정리를 하면서 거의 매일 송별회도 하면서 정신없이 호텔 예약도 해야 했었다. 모두 15박의 호텔 예약이었다. 인터넷이 말도 못 하게 느린 인도에서 그 일도 꽤나 힘든 일이었다. 예약이 안 된 줄 알고 한번 더 예약된 호텔이 있었다. 깐얀꾸마리에서 첸나이로 올라가면서 1박을 하기로 한 마두라이의 어느 호텔이었다. 할인을 많이 해주는 대신 취소가 안 되는 예약이었다.
전날 바닷가 전망대에서 만났던 한국 청년을 다음날 아침에 배가 뜨는지 보러 갔다가 또 만났었다. 마침, 그 청년의 다음 여행지도 '마두라이'라고 해서,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존슨과 그 호텔에서 같이 지내는 걸로 얘기가 됐었다. 아까운 호텔이었는데 다행이었다. 배낭여행객 그 청년에게도, 숙소비 아낀다고 차에서 자는 존슨에게도 그 호텔은 좋은 잠자리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 우리 차로 같이 마두라이로 이동하기로 했고, 점심을 같이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깐얀꾸마리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로컬 식당에서의 볶음밥과 맛살라 치킨이었다.
하얀 종이 바람개비 같았던 수많은 풍력 발전기가 들판에 끝도 없이 펼쳐져진 멋진 풍경을 눈에 담으며, 셋이었던 우리가 넷이 되어서 템플의 도시 '마두라이'로 향했다.
뱅갈만과 인도양과 대서양의 바닷물이 만나고, 일출과 일몰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그래서 힌두인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그 땅, 인도의 최남단을 떠나서 다시 북쪽으로 향했다.
그즈음에 우리는 여행을 떠난 이유를 까맣게 잊을 정도로 여행에, 인도에 푹 빠져 있었다. 무겁고, 개운하지 않았던 생각은 작은 물결 하나가 일었다가 금방 사라지는 것처럼 별 일이 아닌 것이 되고 있었다.
겨우 1박 2일이었던 인도의 땅끝 도시는 짧은 시간이 전혀 아쉽지 않을 많은 경험을 선물했고,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깐얀꾸마리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추억의 도시가 되었다. 또 하나의 인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