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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포카라' 대신 보드나트의 '카트만두'(4)

인도를 떠나면서 하는 인도, 네팔 여행(19)




다시 카트만두


산을 내려왔다. 네팔의 겨울 해는 짧았고 이미 깜깜해져 버렸다. 시골을 벗어나서 카트만두 도심으로 들어서면서 교통체증이 말도 못 하게 심했다. 좀 전의 아름다운 노을은 다른 세상이었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꼼짝을 안 하는 차 안에서 여행의 피로까지 쌓여서 그 시간이 너무 길고 지겨웠다.

그래도 약속한 시간 8시경에 호텔 근처에 도착이 되었다. 능력 있는 여행사 운전기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려던 곳 모두 다 둘러보고 일몰 시간도 딱 맞추더니, 차가 막혔는데도 호텔 도착시간까지 맞추는 능력자였다. 덕분에 갑자기 떠난 투어가 너무 만족스러웠다.


호텔 근처에 저녁 먹을만한 식당을 구글에 검색해서 찾아갔다. 가격, 맛 평가 모두 좋은 곳이라며 남편이 가보자는 로컬 식당이었다. 환하고 깨끗한 길 옆으로 토끼굴 같은 통로를 지나가라고 지도가 알려줬다. 굴을 통과해서 찾은 식당은 말 그대로 현지인들의 맛집인 것 같았다. 작은 분식집 느낌의 식당은 우리가 상상했던 그런 곳은 아니었다. 갔으니 일단 앉았다.



주인이 손으로 직접 빚는 만두(모모)가 유명하다고 했다. 만들어 놓은 모모가 모두 팔리면 더 이상 못 파는 음식이라고 했다. 그래서 모모를 시키고, 우리나라 야채 전 비슷한 메뉴를 주문했다. 찐만두는 피가 너무 두꺼웠고, 전은 로컬 향이 좀 많이 났다. 현지인들에게는 맛집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입맛에는 그저 그런 맛이었다. 여행 후의 피곤함 때문에 입맛이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가격이 워낙 싸서 만두를 많이 남겼어도 아깝지는 않았지만 맛집 주인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다.



다시 그 토끼굴 같은 곳을 통과해서 나오려는데 정전이었다. 너무 놀랐고 좀 무서웠다. 폰 플래시를 얼른 켜서 빠져나왔더니 굴 반대편은 정전도 아니었고 환한 넓고 다른 세상이었다.

이제는 마지막이 될 카트만두의 밤길을 걸어서 호텔로 향했다. 첫날의 그 밤길과 분명히 같은 길인데 다른 마음으로 보게 되는 그 길은 다른 길이기도 했다.



네팔의 마지막 밤인데 피곤하다고 그냥 잘 수는 없었다. 호텔 루프탑 바에 올라갔다. '에베레스트' 맥주잔을 기울이며 인도 남쪽 끝에서 북쪽 끝 네팔까지 바쁘게 내달린 우리의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찬 공기보다 더 차가운 맥주가 그 모든 시간을 차분히 정리해 주었다. 좋았다고, 잘 결정했다고, 다시 못 할 여행이었다고, 우리의 그 시간을 스스로 칭찬했다. 무엇보다 감사한 마음이 크게 들었다.



아침이 되었다. 카트만두를 떠날 날이었다. 퉁퉁 부은 얼굴로 호텔 앞에서 아쉬움을 담아서 사진을 찍고, 호텔에서 불러준 택시를 타려고 도롯가로 나갔다.

익숙해진 골목이, 익숙해서 아쉬운 골목이 여행가방 바퀴소리에 잠이 깨서 우리를 배웅하는 듯 느껴졌다. 조용한 아침 골목을 소란한 소리를 내며 우리가 이제 그곳을 떠난다는 사실을 온천하에 알리며 걸어갔다. 기다리고 있던 택시를 타고 카트만두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짐을 부치고 보딩을 기다리면서 국제공항이라는 사실이 무색한 작은 매점 같은 곳에서 커피와 빵을 사서 간단히 아침 요기를 했다. 역시나 걸어가서 파란색 로고가 익숙한 소형 비행기에 올랐다. 매운 컵라면을 먹었고, 경유지 델리 공항으로 날아갔다.



작은 카트만두 국제공항과는 너무나 비교되는 최신식 델리 공항에 도착했다. 첸나이로 가려면 다시 국내선 청사로 이동을 해야 했는데 크고 복잡한 공항에서 다행히 헤매지 않고 잘 찾아갔다. 긴 여행 후였지만 피곤하지도 않았고, 집중도 잘 되었다.


사람이 너무 많았던 국내선 청사였지만 그 틈에 끼어 앉아서 피자도 사 먹으며 이제는 내 집에 간다는 편한 마음으로 비행기가 뜨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이틀 뒤에는 한국으로 귀국을 하지만, 더 이상은 내 집이 아닐 곳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여행 끝의 안정감을 주고 있었다.



첸나이 공항에 도착했다. 익숙한 모습에 반가움과 함께 안도감이 밀려왔다. 여행이 너무 좋았지만 여행의 마지막은 어차피 집이었다. 돌아갈 집이 있어서 떠도는 여행이 즐거운 이유이기도 했다.


공항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운전기사 라주가 반갑게 우리를 맞았고, 짐을 받아서 차 트렁크에 실었다. 첸나이에 돌아왔다는 사실이 그제야 확실히 체감이 되었다.

인도 여행의 끝은 항상 한국식당이었다. 인도를 떠나면서 했던 인도 여행의 마지막에도 한국식당을 찾아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제대로 한국 맛을 내는 식당에서 얼큰한 순두부찌개와 김치찌개로 보름간의 기름진 위를 달래주었다. 살 것 같았다. 인도 여행이 정말 끝이 났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제 정말 내 집으로 향했다. 첸나이에서 11년을 살았지만 첸나이가 발전된 도시라거나 깨끗한 도시라고는 한 번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11년 동안 많이 깨끗해지고 높은 건물도 제법 들어섰지만 한국인인 내 눈에는 여전히 낙후된 도시였었다. 그런데 인도의 소도시, 시골, 네팔의 카트만두에서 돌아온 첸나이는 너무 발전된 대도시였고, 잘 정비된 깨끗한 도시였다. 첸나이를 떠나려는 마당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도의 4대 도시 답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하게 되었다. 덕분에 첸나이는 큰 도시, 인도에서는 나름 발전된 도시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그 도시를 떠날 수 있었다.



이틀을 첸나이에서 보낸 뒤에, 2박 3일 스리랑카 여행을 하고 한국으로 귀국을 했다. 11년의 인도 살이가 내내 여행 같았지만 여행 중의 마지막 이틀의 첸나이는 네팔 여행 후에 스리랑카를 가기 위한 경유지였고, 여행지였다. 내 집에서 하루, 호텔에서 하루 묵고 떠난 첸나이가 그즈음에는 여느 다른 여행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내 집이 주는 편안함과 다시 못 올 여행지의 숙소가 합쳐진 이상한 기분이었던 이틀 밤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11년의 여행 같았던 인도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그 긴 여행의 끝을 '찐'여행으로 끝을 맺었다. 잘 끝내고 떠나는 인도였기에 한국에서 잘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도 생겼다. 여행이 우리에게 준 위로와 희망이 그런 용기를 만들었다. 잘 살았고, 잘 떠나는 인도를 만들어 주었다.


2019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아침에 우리는 두 딸이 기다리는 한국에 돌아왔다. 남편은 정확히 10년 10개월 만이었고, 나는 10년 8개월 16일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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