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탄 더르바 광장'을 나와서 우리가 향한 곳은 자전거 릭샤 기사가 "카트만두에 왔는데 그걸 안 보고 가느냐!"며 무척이나 안타까워했던 바로 그곳, '보드나트 스투파'였다.
운전기사가 스투파 앞 도로에는 차들이 너무 많아서 진입이 힘들다며 어딘지 알 수 없는 주택가 골목에 차를 대더니 그 길을 따라서 올라가면 된다고 했다. 어디가 어딘지 모를 낯선 골목길을 따라서 올라가는데 멀리서만 봐도 '저기구나!'라고 바로 느껴지는 입구가 보였다.
3일 째였던 네팔이라는 나라는 낡고, 오래되고, 복잡하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 동네도 마찬가지였다. 복잡한 도로변에 무채색의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 사이에 화려한 색칠이 되어있는 문이 보였다. 그래서 단박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차들을 피해서 도로를 건넜다. 카트만두 시내에서 봤던 불교 사원과 같은 분위기의 강렬한 색채의 문을 통과했다. 하얗고큰 둥근 몸체 위에 금빛이 반짝이는 티베트 불교 탑이 그 길의 끝에 보였다.하얀 몸체가 골목 출구를 꽉 막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큰 탑이었다.
화려한 문에 들어가면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것 같더니 평범한 상가건물들이 있어서 좀 놀라기도 했고, 의외라는 생각을 하며 스투파를 향해서 무작정 걸어가고 있는데 누가 제지를 했다.
'여행객 티켓 체크'라는 입간판과 의자 하나가 티켓 검사를 하는 곳이었다. 매표소는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딱 좋았다.
네팔 돈이 또 부족해서 인도 돈 2천 루피짜리 지폐를 잔돈으로 바꾸어야 했다. 상가를 둘러봐도 살 물건도 없고, 파탄에서 처럼 귤을 몇 개 사고 돈을 헐었다.
다시 내려가서 티켓팅을 하고 경사로를 조금씩 올라가는데 상가 건물 사이로 조금 보이던 스투파가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점점 내 눈앞으로 거대하게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마치 영화의 합성 장면처럼 탑은 주변 건물들과는 왠지 이질감이 느껴지는 색감과 크기였다. 새파란 하늘 배경 때문에 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스투파가 있는 광장이 오르막 길 위에 있었고, 거대한 스투파를 중심으로 집들이 둥글게 둘러싸고 있었는데, 사람들도 많아서 제법 시끌한 분위기였다. 그 한가운데에 하얀색의 탑만 고요하고 웅장하게 서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불교 탑은 호텔 근처에서, 그리고 스와얌부나트 사원에서 봤던 것과 똑같은 모양이었다. 왼쪽으로탑으로 올라가는 입구를 찾아서 걸었는데 탑을 둘러싼 하얀색 벽이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페인트가 벗겨지고 손 때가 묻어서 너무 지저분하고 조악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은 입구를 찾았는데 깜짝 놀랐다. 인도에 오래 살아서 웬만한 더러움은 참을 수 있는 경지가 되었는데도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네팔인들이 자부심을 가지는 그곳은 관리가 전혀 안 되는 것만 같았다. 개똥과 쓰레기가 스투파를 보기도 전에 기분을 상하게 했다. 일단 개똥을 피해서 문을 통과했다.
탑의 기단부에 '마니차(경전이 새겨진 원통형 티베트 불교 기도 도구)'가 쭉 있어서 불교 신자들은 기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지나쳐서 탑을 보려고 바로 올라갔다.
가까이에서 본 스투파는 탑이 아니라 큰 건물 같았다. 돔의 하단에는 108개의 작은 구멍에 부처가 있다고 하는데, 돔 아래 2단으로 된 기단부가 워낙 높아서 올려다봐도 구멍만 보이고 잘 보이지는 않았다. 황금색 탑에는 커다란 눈이 그려져 있었고, 기도 깃발이 오색찬란 나부끼고 있었다. 기단부는 주황색 꽃으로 치장이 되어 있어서 흰색 탑에 오색 깃발, 주황색 꽃까지 색감이 화려하고 예뻤다.
탑을 구경하면서 한 바퀴 도는데도 꽤 시간이 걸릴 정도로 큰 탑이었다. 탑돌이 방향인 시계방향으로 다른 사람들과 같이 걸으며 구경을 했다.
세계 최대 탑이어서도 유명하지만 지진에 무너진 탑을 네팔 정부의 지원 없이 수십 억의 비용을 들여서 세계 불교계와 민간단체의 힘으로 복원했다고 해서 의미를 두는 듯했다.
불교 신자가 아닌 나는 카트만두에서도, 스와얌부나트 사원에서도 탑의 시각적인 모습에만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돔형의 둥근 하단부와 뾰족한 황금 상단부와 파란 하늘에 드리워진 오색 기도 깃발들과 흰색에 둘러쳐진 주황색 꽃들이 심플하면서 화려해서 네팔을 상징하는 색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지혜의 눈'이라는 부릅뜬 두 눈은 이해가 잘 안 되었다. 무섭기보다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티베트 불교인들이 들으면 경악할 일일 지는 몰라도 내 느낌은 그랬다.
탑이 제법 높아서 광장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거대한 탑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티베트 난민 출신들이라고 했다.
광장에는 비둘기가 너무 많았지만 벤치에 앉은 사람들은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따뜻한 햇볕이 광장에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밝고 따스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스투파는 불교인들이 의미를 알고 찾는 것이 아니면 크게 흥미를 끄는 곳은 아니었다. 한 바퀴 둘러보고 예쁜 색의 깃발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는 일이 전부였다. 세계 최대 불교 탑을 봤다는 정도가 다였다.
오히려 탑 주변의 사람들 구경이 나는 더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네팔인인지, 티베트인인지 모를 할머니들의 천연색 전통옷도 이국적이었고, 벤치에 쭉 앉아있는 남자들도 눈에 들어왔다. 전통 모자도 귀여웠다. 숯 화로를 땅콩 더미 속에 묻어서 땅콩을 익히는 모습도 신기했다.
다시 문 밖으로 나가서 왔던 길로 도로 내려갔다.
박타푸르 더르바 광장(Bhaktapur Durbar Square)
*15세기 카트만두 계곡의 3대 왕국.. 카트만두, 파탄, 박타푸르
'파탄 더르바 광장'에 오래 머물 시간이 없어서 조금 아쉬웠는데 다른 왕국의 유적지가 아직 남아 있었다. 그곳으로 우리를 데려다준 기사는 광장 근처의 어느 관공서에 주차를 했고, 계단을 따라서 올라가 보라고 했다. 일몰 포인트에 늦지 않게, 돌아오는 시간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기사가 가리키는 예쁜 벽돌 계단길을 올라갔다. 유적지를 찾아서 걸어가는 길목에 채소 노점들과 기념품 가게들이 보였고, 전통 목재 가옥들과 현대식 벽돌 건물들이 섞인 골목 분위기는 우리가 가려는 곳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안겨주었다.
외국인 입장료가 꽤 비쌌다. 15달러, 1000루피나 되었다. 네팔은 인도 루피가 통용된다고 들었는데 안 되는 곳도 많았다. 예매소 옆에 환전소가 있어서 네팔 루피로 환전을 했고, 티켓을 받았다.
오늘이 자기 생일이어서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젊은 남자가 지겹게 따라붙어서 무료로 가이드를 해주겠다는데 입장도 하기 전에 그 남자를 떼어내느라 진이 다 빠졌다.
유적지 안으로 입장을 했다. 파탄 더르바 광장에서 봤던 비슷한 건축물들이 많았다. 목조 건물은 그것대로, 석조 건물은 또 그것대로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파탄을 가지 않았다면 더 감탄했을 건축물들이었지만 아무래도 처음은 아니어서 감흥이 덜 한 건 사실이었다. 파탄보다는 더 정돈되고 깨끗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사람이 적어서 조용한 분위기의 옛 유적지를 볼 수 있어서 좋았던 곳이다.
지는 해의 강렬한 빛이 내리쬐는 건축물들은 해가 비치는 면과 그 반대의 어두운 면이 다른 모습으로 보이면서 옛 왕국을 더 오묘한 분위기로 만들어 주었다.
커다란 우물을 구경하고 사람들을 따라서 계속 걸으며 어느 문을 통과하려는데 네팔인들만 입장이 된다고 우리를 가로막았다. 입장료가 싸지도 않은데 너무 볼거리가 적다고 생각했었다. 유적지는 그것으로 끝이었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과 기념품 가게들만 보였기 때문이다. 그만 돌아가야 하나 싶어서 시계를 보니까 기사와의 약속시간이 아직 한참 남아있었다. 조금 더 둘러보자며 기념품 골목을 빠져나갔다.
세상에 우리가 본 것은 맛보기였었다. 'WAY TO DURBAR SQUARE'라는 이정표가 그제야 나타난 것이었다. 무슨 보물을 찾은 듯이 놀랐고 어이가 없었다. 그냥 돌아갔으면 어쩔뻔했나 싶어서 아찔했다. 안개 때문에 포카라행 비행기가 취소되는 바람에 갑자기 결정했던 카트만두 인근 여행이었지만 너무 아무 정보 없이 나선 길이 무모했다는 생각도 하면서, 그래도 지금이라도 그 이정표를 발견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함께 했다. 고마운 이정표가 가리키는 쪽으로 걸었다.
한눈에도 범상치 않은 공사 중인 높은 건축물이 넓은 광장에서 첫눈에 들어왔고, 좀 전에 봤던 것보다 더 오래되어 보이는 유물들이 많이 보였다. 조용하고 깨끗했던 그곳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광장에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관광객보다 현지 마을 주민들이 더 많아 보였다.
유적지인지 사람이 사는 집인지 구분이 모호한 광장 주변의 건축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히 유적지였는데 그 계단에는 노점상들의 좌판이 깔려있었고, 어떤 이는 올라가서 누워있었고, 석조상에 걸터앉아서 알까기 게임도 하고, 신발도 말리고 있었다. 15달러나 받고 외국인 관광객을 받는 유적지가 많나 싶어서 내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그들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그 모습들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내 나라는 아니지만 안타깝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광장 주변으로는 장이 서있었다. 우리나라 오일장 분위기가 났다. 네팔의 각종 채소와 과일들은 모두 팔고 있는 것 같았다. 시장 구경은 언제나처럼 재미있었다. 유적지 관리가 어떻든 간에 우리는 금세 노점 구경에 정신이 팔렸다. 바닥에 자리를 펴고 앉은 상인들은 한 무더기씩 쌓은 과일과 채소를 팔고 있었고, 저녁 준비하려는 동네 주부들은 연신 가격 흥정을 하고 있었다.
나보다 남편이 더 신나 보였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노란 감 앞에서 멈추더니 갑자기 감을 두어 개 사는 게 보였다. 우리나라 단감처럼 생겼는데 크기가 조금 작아 보이는 감을 바지에 쓱 문지르더니 한입 베어 물던 남편, 바로 손바닥에 뱉어내었다. 단감이 아닌 모양이었다. 어릴 적 동네 감나무 생각이 나서 자기도 모르게 손이 간 것 같았다. 비록 떫은 감이었지만 시장 구경도 하고 감도 사고 네팔에서, 네팔의 옛 왕국의 광장에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시장 구경이 재미있어서 자꾸 마을 안으로 걷게 했다. 3,4층 정도의 붉은 벽돌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고, 골목길은 어디라도 길고 깊었다. 유적지 구경보다 사람 사는 동네 구경이 더 재미있었다.
토기를 굽는 토기장 집도 보였고, 골목이 끝나는 작은 광장에는 어김없이 남자들은 '케로'라고 하는 손으로 하는 포켓볼 비슷한 알까기 게임을 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노점에 채소를 팔고 있었다.
약속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똑같이 생긴 골목길을 걷다 보니까 어디가 어딘지 방향을 잃고 말았다. 마을 주민들에게 매표소가 어디인지 물어봐도 영어를 할 줄 몰라서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다. 마침 문 앞에 서 있던 젊은 새댁이 보여서 겨우 간단한 영어로 대화가 되었고, 가리키는 방향으로 골목길을 계속 걸었다.
빨리 가야 하는데도 네팔의 동네 구경이 너무 재미있어서 자꾸 가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집들이 반듯하게 다닥다닥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길게 늘어선 모습이 로마나 파리의 골목을 걷는듯한 착각이 들게 했다. 골목 분위기가 너무 비슷하다고 느끼는 순간 커다란 우물이 보였고, 운동복을 똑같이 입은 귀여운 여자 아이들이 나타나서 그곳은 네팔이라고 알려주는 듯했다. 얼마나 귀여운지 우리말로 예쁘다고 했더니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까르르 웃으며 뭐라고 재잘대는데 우리 딸들 어릴 때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더 귀여웠다.
근처에 학교가 보였고, 하굣길에 바로 집에 가지 않고 골목 넓은 장소에서 '자치기' 비슷한 놀이를 하는 남자아이들이 보였다. 참 정겨웠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은 볼 수 없는 골목 풍경이었다. 그곳은 미치 내가 어렸을 때로 돌아간 듯한 모습이었다. 네팔을 떠나서도 예뻤던 여자 아이들과 골목에서 놀고 있던 남자아이들의 모습이 한참 동안 남아 있었다. 나의 어린시절과 겹쳐 보이면서 따뜻한 감정이 올라오는 하나의 가억이 되어주었다.
자꾸 걷다 보니까 좁은 골목의 끝이 보였고, 매표소 쪽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처음 올라온 계단 위의 어느 장소가 나타났다. 사방이 뚫려있는 동네 한가운데에 유적지가 있어서 매표소가 있었지만 입구의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은 파탄 더르바 광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이해가 잘 안 되었다.
늦지 않게 다시 택시에 올라탔다. 일몰 전에 마지막 장소인 산 위에 올라가려면 그래도 서둘러야 한다며 기사가 바쁘게 출발을 했다.
나가르코트(Nagarkot) 전망대
히말라야산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카트만두 동쪽에 있는 해발 2190m의 전망대.
11월~2월 사이에 날씨가 좋은 날에는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 칸첸중가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차가 제법 멀리 가고 있었다. 한적한 곳으로 들어서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시골 같았다. 산들에 둘러싸인 마을은 제법 넓은 논에 추수를 끝낸 짚단이 쌓여 있었고, 지는 해가 노랗게 그 마을을 비추고 있었다. 밀레의 '이삭 줍기'나 고흐의 '낮잠', '프로방스의 추수' 같은 그림이 연상되는 그런 풍경이었다. 평온하고 나른했다.
점점 산길로 차가 달렸다. 달팽이처럼 뱅글뱅글 산길을 올랐다. 제법 산은 높았고 한참을 올라가는데 산속 마을이 차창 밖으로 간간이 보였다. 유채꽃이 계단식 밭에 노랗게 장관을 이루고 있었고, 허름한 산골 마을에는 삼삼오오 볕 아래 모여있는 노인들도, 막 하교한 아들을 맞는 엄마도 보였다. 서쪽 하늘로 낮게 내려앉은 해는 산골마을을 따뜻하고 포근하게, 눈이 부시게 내리쬐고 있었다.
해는 점점 겹겹이 쌓인 산 뒤로 내려가는 중이었고, 높은 산길을 올라가던 우리는 그 해와 같은 눈높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해는 내려오고, 우리는 올라가고 있었다.
거의 다 온 모양이었다.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소나무 숲이 장관이었다. 공기가 제법 차가웠지만 창문을 내리고 좋은 공기를 들이켰다. 찬 공기도 좋았고, 소나무향도 좋았다.
차에서 내렸는데 아직 해가 넘어가려면 조금의 여유가 있어 보였다. 기사가 꽤 시간을 잘 맞춘 듯했다.
일몰 포인트에 올라가는 계단 아래의 주차장에는 어김없이 노점상들이 보였고, 사모사(감자 소가 든 튀김만두 비슷한 인도 간식), 도넛, 땅콩, 삶은 계란 등등 간식거리를 팔고 있었다. 뜨거운 짜이와 삶은 계란으로 요기도 하고, 몸도 데웠다.
산 위에 올라갔더니 아래보다 꽤 더 추웠다. 고도도 높아졌고, 해가 넘어가고 있어서 더 추운 것 같았다.
계단 입구에 세워 놓은 눈 덮인 히말라야 사진을 보는 순간 그 위의 전망대에 기대감이 한껏 커질 수 밖에 없었다.
계단 길을 올라갔다. 눈앞의 광경은 '아, 여기는 네팔이지. 후진국이지!' 그 생각이 먼저 들게 만들었다. 예쁜 유리 건물을 기대했던 내가 너무 민망해지는 순간이었다. '전망대'라는 단어에 딱 맞는 모습의 '전망대'가 우리를 맞았다. 그 와중에 지는 해는 또 얼마나 예쁘던지 감정이 복잡 미묘했다.
어떤 상황에도 그 상황을 쉽게, 금방 잘 받아들이는 우리는 그 환경을 바로 받아들였다. 전망대 철골 구조가 재미있다는 생각으로 바뀌면서 올라가 보자가 되었다. 전망대 계단이 너무 가팔라서 목을 90도로 뒤로 꺾어야만 꼭대기가 보일 정도였다. 그러니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너무 무서웠다. 무서운 계단보다 더 힘들었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손이 너무 시렸던 일이다. 체감은 거의 영하였던 날씨에 장갑도 없었던 손바닥이 쇠기둥에 얼어붙는 줄 알았다. 손이 너무 차가워서 어쩔 수없이 빠르게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망대에 올라 선 우리는 너무 재미있고 황당해서 한참을 웃었다. 어렸을 때 한겨울에 미끄럼틀에 장갑도 안 끼고 올라가던 딱 그 상황이었다. 어디 가서 이런 경험 해보겠냐며 우리는 손바닥을 비비며 재미있어했다. 네댓 명만 올라오면 꽉 차는 꼭대기에서 젊은 네팔 커플과 서로 사진도 찍어주면서 나름 그 동네에서 제일 높은 산꼭대기의, 그보다 더 높은 철제 전망대 위에서 넷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 경관을 둘러보았다. 정말이었다. 멀리 히말라야 설산이 보였다. 비록 많이 멀고, 많이 작게 보였지만 남편이 가고 싶어 했던 그 설산이 눈앞에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서쪽에는 지는 해가 붉게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고, 동쪽에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설산이 길게 뻗어있었다. 여행사 사장이 말했던 바로 그 풍경이었다. 추웠지만 그 풍경을 오래도록 보고 싶어서 전망대 위에 한참 동안 있다가 내려왔다. 좁은 공간으로 올라오려는 사람이 있어서 자리를 비켜줘야 할 때까지 그 위에 서 있었다.
오랜만에 한겨울 차가운 기온도 즐거웠고, 내 눈높이에서 떨어지는 해도 재미있었다. 우리가 산꼭대기에 올라왔더니 해는 반대편 산꼭대기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켜켜이 쌓인 산들이 각기 다른 농도와 채도로 노랗거나, 붉거나, 주황으로 겹쳐져 보였다. 그 순간의 풍경 속에 우리도 담아서 사진으로 남겼고, 잊고 싶지 않은 풍경을 추억으로 간직하려고 서로 사진에 담아 주었다.
히말라야 설산과 아름다운 일몰을 눈과 마음에 담고, 다시 산을 내려왔다. 그런데 그렇게 감탄했던 일몰의 순간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렸다. 산길을 내려오는 우리 눈 앞에 펼쳐진 붉은 노을의 장관은 입을 못 다물게 했다. 노을을 내가 내려다보며 산을 내려왔다. 노을은 올려다 보는 것만은 아니었다. 눈높이의 산 주변뿐만 아니라 360도 하늘 전체가 붉게 타고 있었다. 하늘뿐만 아니라 산도 마을도 들판도 모두 노을빛으로 불타고 있었다. 빙글빙글 그 장관을 보면서 산길을 내려오는데, 산꼭대기의 일몰의 순간도, 히말라야의 설산도 모두 잊히게 했다.
네팔에서의 3박 4일 동안 가장 좋았던 세 가지를 꼽으라면 노을을 내려다보면서 빙글빙글 산을 내려왔던 그 시간이 첫 번째이다. 그다음이 박타푸르 더르바 광장 주변 동네를 걸어 다닌 일, 세 번째가 자전거 릭샤를 타고 돌아다닌 카트만두의 아침 시간이다.
그만큼 나는 그 노을 풍경이 좋았다. 내가 본 최고의 노을이었다. 실제로도 너무나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포카라를 못 간 아쉬움이 그 노을이 위로해준다는 느낌을 받았고, 무엇보다 언제 다시 와볼까 싶은 네팔에서의 마지막 여행지를 이제는 내려간다는 아쉬움 때문에 그 모든 마음이 합쳐져서 아름다운 장면,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