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기고글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본 적 없으면서

강원도 교육청 블로그 '쌤통' 교육 에세이

by 이준수
1.jpg


교사로 살면서 끝끝내 대답을 찾지 못할 질문이 있다. 공부는 왜 해야 해요? 부모라면, 교사라면 이 질문을 피해 갈 수 없으리라. “너의 전인적인 성장을 위해서란다,” 라는 피상적인 대답은 논외로 하고 속물적인 관점에서 입시 공부를 요즘 고민하게 된다. 아무래도 내년에 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 듯하다. 한 번은 우리 반 학생과 선문답 비슷하게 끝장 토론에 간 적이 있다. 나는 압도적으로 졌다. 흐름은 대략 이렇다.


공부는 왜 해야 해요?

다 너 잘되라고.


잘 되는 게 뭐예요?

잘 먹고 잘사는 거지.


잘 먹고 잘살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우선 살 집은 있어야지(여기서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집값이 얼만데) 그리고 차도 한 대쯤 있어야 겠고...(이미 승부는 났다. 패배다.)


집 사고 차 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돈이 있어야지. 그래! 돈을 벌려면 공부를 해야 해. 공부를 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땀이 삐질삐질 난다. 거짓말하지 마! 누구나 그럴 수 없다는 거 잘 알잖아) 좋은 대학 가면 좋은 직장 얻어서(으악! 언제 적 소리를 하는 거야!) 돈을 많이 버는 거지.


그다음은요?

일을 계속하면서 돈을 모으고 결혼도 하고(아니... 어째 1980년대 스타일 표준형 4인 정상 가족 가치관을 강요하는 사람 같다) 여하튼 그렇게 살면 행복해.


저는 게임 하면서 지금처럼 사는 것도 행복해요.

그래 그것도 좋겠지만 공부해서 아는 게 많아지면 균형감도 찾을 수 있고 행복은 여러 가지 물질적 조건이 뒷받침되어야 하며...(현학적인 표현이 마구잡이로 등장한다. 초등교사로서 실격이다.)


나는 완전히 말렸다. 내 논리는 결국 돈과 안정으로 귀결되었다.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긴 하였지만, 실체는 돈과 안정감에 지나지 않았다. 인정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다. 어쩌면 내가 모범생의 행로를 잘 밟아왔기 때문에 입시를 은연중에 '선'이라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생각하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사실 나는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다.


7세 초등학교 입학, 19세 대학 입학, 23세 교직 입문, 26세 군대 전역(전역 다음 날 바로 담임으로 투입), 28세 결혼, 29세 득녀, 31세 득녀, 34세 아파트 취득... 민망하다 싶을 만큼 성실한 삶이다. 쫓기듯 살아온 건 아니지만, 놀면 뭐 하냐는 자세로 열심히 살았다. 군인을 제외하고는 다른 직업 분야의 경험도 없다. 아르바이트도 대학 때 고등학생 대상으로 한 과외가 고작이다. 여행은 나름 이리저리 다녀봤지만, 어디까지나 여행이다. 단기 체류를 하는 외부인으로 낯선 동네에 슬쩍 발만 담갔다. 이렇게 살았으면서 아이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아라, 행복의 기준은 한 가지가 아니다 같은 조언을 할 수 있을까. 겪어보지 못했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세계를 내 것인 양 말하기에는 어딘가 부조리한 구석이 있다.



사춘기도 아니면서 나의 내적 갈등은 꽤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았다. 어떻게 하면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머릿속에 떠오른 일차적 아이디어는 ‘소설을 읽어야겠다’였다. 성실맨다운 발상이다. 소설에는 타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간접 경험을 하면 된다. 편리함이 돋보인다. 나는 늘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다. 안정성과 효율성 추구.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본다고 한들 현재 삶의 방식은 거의 바뀌지 않는다. 여가생활의 내용만 약간 차이 날 뿐이다. 여러 상념이 소용돌이쳤다. 어느 것 하나 투명하지 않다. 이렇게 큰 물음은 원래 뾰족한 수가 없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외면만 하면서 살 수도 없다. 하아, 난감하다. 불현듯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떤 단어가 떠올랐다. 스탑! 스탑 띵킹! stop! stop thinking!


바닥에 손바닥을 대고 팔굽혀 펴기를 했다. 근육의 팽창에 집중하면 잡생각이 달아난다. 한결 낫다. 그래 맞다. 스탑! 뭘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는 멈추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금껏 앞만 보고 걸었으니까 트랙에서 잠시 벗어나 바닥에 철퍼덕 앉아보자. 사람 구경도 하고, 하늘도 좀 보고.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멍 때리기'이다. 목표를 세우고 차근차근 달성하는 건 잘 해왔으니 안 하던 짓도 해보자. 흠, 그렇다고 사표를 낼 필요는 없다. 나는 학교와 학생을 사랑하고, 조촐한 나의 가정을 지켜야 한다. 휴직 정도면 충분하다. 십수 년 간 쉬지 않고 돈을 벌었다. 한두 해 쉰다고 해서 큰 탈이 날 것 같지는 않다.


달력을 펴고 구체적인 날짜를 계산했다. 현재 담임을 맡고 있으니 2학기 휴직은 불가하다. 담임이 바뀌면 학생이 피해를 본다. 따라서 휴직은 내년 3월부터 그 이듬해 2월 말까지가 될 것이다. 아파트 담보 대출이 걸리지만 10년 만기 상황 조건이니 버틸 수 있다. 흠, 그런데 다른 영역에서 걸리는 것도 있다. 나는 현재 내적 갈등이라는 이유로 일을 쉬려 한다. 경기 침체기에는 일자리를 못 구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이 흔하다. 당장 힘든 누군가에게 내적 갈등은 배부른 망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나는 삶의 중요한 문제를 유예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큰 녀석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적응하느라 손길이 필요하다. 휴직의 명분으로 삼기에도 적절한 시기다.


나는 맥주잔을 기울이며 아내와 진지하게 의논했다. 휴직은 수입의 중단이 전제되어 있다. 내가 쉬면 적어도 1년은 아내의 경제력에 의지해야 한다. 내 걱정과 달리 아내는 흔쾌히 휴직 결정을 반겼다. 재수, 삼수, 어학연수, 취직 실패 한 번 안 해본 인생도 밋밋할 수 있다나(세상에는 제법 다양한 취향이 있다). 1학년생 딸내미나 잘 챙기라며 아주 쿨한 반응이었다. 음, 휴직이 이렇게 간단한 것이었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일단, 올해를 잘 마무리할 것이다. 수업 준비를 하고, 생활지도를 하며 평소와 다름없는 한 해(물론 세부까지 똑같을 순 없겠지만)를 보낼 것이다. 내년 계획은 없다. 시간이 남아돌 테니 그때그때 요령껏 살면 된다. 휴직 기간에 딱히 깨달음을 얻는다거나 자기 계발을 기대하지 않는다. 사는 건 비슷비슷할 테니까. 다만 느긋하게 시간을 누리며 멈춰있을 것이다. 그럼 당장은 정리가 안 되더라도 소중한 무언가가 내 안에 남게 되리라는 직감이 있다. 아마도 유용성이나 사회적 성취와는 거리가 멀 테지만 상관 없다. 혹시 아는가. 공부는 왜 해야 해요? 라는 질문에 몇 마디쯤은 더 납득 할 만한 대답을 들려줄 수 있을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대견한 아이들에게 배려와 응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