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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Sep 05. 2021

내 조건이면 91년생 교사 만날 수 있어?

2021 벡델 공모전 에세이 부문 선정

나는 스무 살 이후 여초 집단에서 생활한 남자다. 강원도에 있는 교육대학교를 나왔는데, 재학생의 75%가 여자였다. 어떻게 그렇게 숫자 딱 떨어지게 단정 지을 수 있냐면 남성 할당제가 있기 때문이다. 교육대학교는 상대적으로 여학생에게 인기가 높다. 성적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면 합격자의 90% 가까이가 여자로 채워진다. 공정한 경쟁이 장려되는 입시 절차에서 그게 뭐 어때서, 실력대로 가야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대로라면 나는 지금쯤 초등학교 선생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교대는 한쪽 성별이 75%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독특한 규칙을 준수했다. 그 덕에 나는 간신히 입학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조금 우스운 규칙이다. '한쪽 성별'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상은 성적이 낮은 남학생을 구제하기 위한 구명보트나 다름없지 않은가.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학부모들이 자녀의 담임으로 여교사만 거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남녀 성별이 골고루 배분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등이다. 남학생에게는 득이 되는 의견이지만, 일반적인 채용 시스템에서 정론으로 채택할 수 있는 논리는 아니다. 그러나 어쨌든 할당제는 지켜졌다.


교대를 지망하는 입시생 커뮤니티에서는 쿼터제의 불합리함에 대해 지속적인 성토 글이 올라왔다. 면목이 없던 나는 얼른 페이지를 닫으며 침묵을 지켰다. 지금도 특혜를 받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어둡다. 입학 시의 찜찜함이 있어서 그런지 교대에 오고 나서도 성별과 관련한 발언이나 이야기가 나오면 괜히 움찔했다.


어떤 교수(강사였던 것 같기도 하다)는 강의 시간에 여학생과 남학생의 '레베루'가 다르다고 단정 지었다. 그 근거인즉 임용 패스 후 교사가 되더라도 결혼 시장에서 평가받는 가치가 다르다는 것이다. 굳이 세분화해서 설명하자면 1등은 예쁘고 어린 여교사, 2등은 덜 예쁘고 어린 여교사, 3등은 예쁘지만 나이 든 여교사, 4등은 못 생기고 나이 많은 여교사, 5등은 잘생기고 돈 많은 남교사, 6등은 평범한 남교사…. 목록을 분석한 결과 나는 6등과 7등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런 말들을 수업 시간에 들었어야 했을까.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지나갔다. 설마 여학생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려고 그랬던 걸까. 만약 그랬다면 결과는 대실패다. 나와 친했던 과 동기 A는 여교사를 결혼 기계로 몰아세우는 말이 몹시 역겹다고 했다. 시집이나 잘 가려고 서울대 포기하고 교대 온 게 아니라고 못 박았다. 아이들이 좋아서, 교사를 전문직으로 생각하는 A에게 "여자 직업으로 선생이 최고!"는 칭찬이 아니라 저주에 가까웠다. 시간이 흘러 군대에서도 교직과 여성성을 향한 공격은 끊이지 않았다. 


"어린 애들 콧물 닦아주고, 더하기 빼기 가르치는 거 여자들이나 하는 일 아니냐?"


나는 졸업 이후 1년 반 동안 담임으로 근무를 하다가 입대했다. 젊은 간부들이 모두 나의 또래였다. 소대장 중 한 명은 고등학교 동창이라 사석에서 말을 놓았다. 연대장도 부인이 초등 교사라고 나를 후배님이라 부르며 예뻐했는데 그런 모습들이 갓 부임한 부사관들에게는 좀 아니꼬웠나 보다. 나보다 서너 살 어렸던 그들은 꼬투리를 잡고 싶었는지, 틈만 나면 교직을 무시했다. 남자는 자고로 굵직한 직업이다, 저학년 율동을 시범 보여달라, 군대에 말뚝 박아라.


나는 혼란스러웠다. 사람을 가르치는 일에 여성스럽고, 남성스러운 구분이 어디 있는가. 대학생을 가르치면 남자다운 것이고, 초등학생을 가르치면 여성스러운 것인가. 이해할 수 없는 의문투성이였다. 1학년 학생이 바지에 실수하면 뒤처리를 도와주는 것이 왜 이상한가. 사칙연산이 얼마나 중요한 개념인데 더하기 빼기라고 무시를 당해야 하나. 실생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수식이지 않은가. 


어린이를 대하는 일, 권력과 무관한 일, 시시콜콜한 일상적 보육과 기초 지식을 가르치는 일을 우습게 보는 시선은 뿌리 깊게 존재했다. 몇몇 간부는 내게 아는 여교사를 소개시켜 달라고 했는데, 의도가 불순했다. 여교사는 돈도 안정적으로 벌고, 퇴근도 늦지 않고, 왠지 남편도 내조 잘할 것 같고, 애도 잘 키울 것 같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단 한 명도 연락처를 주지 않았다. 썩은 그들의 표정을 보며 A의 마음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현재 십 삼 년 차 교사이고, 아내와 딸 둘과 함께 산다.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여초집단의 운명은 끈덕지게 이어진다. 그간 세상은 많이 변해서 교장, 교감 선생님 중 여성이 절반 수준으로 많아졌고 성별에 따른 차별적인 역할 분담도 약간 개선되었다. 그렇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내 조건이면, 91년생 교사 만날 수 있어?’ 이건 내가 얼마 전 포털사이트에서 본 광고이다. 저렴한 광고 멘트는 십수 년이 지났건만 변함이 없다. 여전히 이 세계에서 통하는 문구일 테다. 나는 내가 퇴직할 무렵이 되어도 왜곡된 성역할이나 편견이 없어지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수준 빠지는 모욕이나 농담에 반응하지 않으며 저항을 이어나갈 것이다. 이 나라의 수많은 A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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