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월세가 나오는 가게 주인이다. 가게는 수시로 모습을 바꾸고 규모를 키워나간다. 연 수입을 월 단위로 환산하면 30-40만 원가량 나온다. 이 가게는 보증금이 없고, 임차료도 없으며, 직원을 고용할 필요도 없다. 나는 하루 평균 한 시간 가게 문을 열고, 아프면 가끔 쉰다. 진상 손님 응대나 재고처리에 골머리를 썩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가게. 직장을 다니면서 운영이 가능한 가게의 이름은 '실전용돈글쓰기'이다. 나의 작업실은 온라인에 존재한다.
월 30-40만 원의 수입이 적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초기 창업 비용이 제로다. 밑져야 본전이요,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의미다. 직장인에게 추가 용돈은 꽤 쏠쏠하다. 삶의 질이 높아진다. 고급 디저트 가게에서 초코 무스 케이크를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들 수 있고, 신상 나이키 러닝슈즈를 고민하지 않고 구입할 수 있다. 남는 돈은 적금 계좌에 차곡차곡 쌓인다.
나는 투잡을 한답시고, 무리해서 과도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고 싶지 않다. 바쁜 걸 싫어한다. 돈을 좋아하지만 시간이 더 중요하다. 그렇기에 초대박을 꿈꾸지 않는다. 적당한 느긋함을 지향하는 사람이 초대박을 바라는 건 망상에 빠져있거나 욕심쟁이라고 생각한다. 피곤하지 않을 정도로 글을 쓰고 수익을 거둔다. 이것이 용돈 글쓰기에 임하는 나의 기본자세다.
일상과 본업, 취미가 균형 잡힌 상태가 좋다. 글쓰기는 균형 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위한 필수 스킬이다. 글을 쓰면 뇌의 효율이 극대화되고, 균형감이 향상된다. 좋은 균형감은 좋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뜻이므로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나아진다. 이렇게 멋진 삶을 누리면서 추가 수입까지 발생하니 글을 쓰지 않을 까닭이 없다.
내가 처음부터 글쓰기에 열정을 바쳤던 것은 아니다. 퇴근해서 글을 쓰기는커녕 책 스무 쪽도 읽기 귀찮아서 폰 게임을 했다. 그러다 비극이 찾아왔다. 참혹한 과거를 고백하건대, 결혼자금으로 모은 돈을 잃었다. 심지어 은행에서 2500만 원을 추가로 대출해 코스닥 잡주에 투자했다가 원금을 대부분 날렸다. 사기성이 농후한 주식 투자 사이트에 홀려 가입비 육십만 원을 내고 추천받은 주식이었다. 스물여섯의 나는 최악의 의사결정을 내렸고, 끔찍한 뒷감당을 해야 했다.
정체불명의 주식에 전 재산을 쏟아부으면서도 거래 일지를 남기지 않았다. 읽은 주식 책이라고는 세 권이 전부였다. 세 권 중 하나는 워런 버핏의 가치투자, 나머지 두 권은 주식 리딩 방에서 판매하는 교재였다. 워런 버핏의 조언에 따라 우량주에 장기 투자했다면 좋았으련만 나는 사기꾼 말을 따랐다. 워런 버핏은 한 번 사면 15년 간 팔지 않을 주식을 고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대출을 당겨 얼른 수익을 손에 쥐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독서와 글쓰기를 하지 않은 시기에 나의 뇌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지하에 파묻힌 울적한 돌멩이처럼.
나는 잔고 0원의 인간이 되었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내게는 육 년 넘게 사귄 여자 친구가 있었다. 나는 반 년 간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의 도리를 다 해야 한다는 결심이 서서, 여자 친구에게 그간의 사정과 결과를 낱낱이 고해 받쳤다. 이대로 가도 뾰족한 수가 없으니, 당장 헤어진다고 해도 책임은 내게 있다는 것을 확실히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여자 친구는 기회를 주었다. 예비 장인어른도 소싯적에 주식으로 고생하셨다나.
여자 친구에게 새사람이 되겠노라 약속했다. 나는 가게를 차리거나, 야간에 대리운전을 하는 등의 부업 겸직이 불가능한 직업이었기에 합법적으로 돈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복무규정에 따르면 주기적으로 수익이 발생하는 사업체에 취직 같은 것만 하지 않으면 다른 경제 활동이 가능했다. 가령 주식 투자나 부동산 투자는 괜찮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내게는 자본금이 제로였기에 '투자 활동'은 할 수 없었다. 대신 글을 써서 원고료를 받아야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독서와 집필 과정에서 발생하는 원고료와 인세는 연구 파트로 분류되는지 불법 사항이 아니었다.
결혼까지 이 년이 남아 있었다. 나는 미친 듯이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책값을 아끼려 강릉 시립 도서관과 옥거리 작은 도서관을 신발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읽고 쓰는 행위에는 돈이 들지 않았다. 오랜만에 배움의 희열을 느꼈다.
책을 백 권 넘게 읽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서서히 뇌가 깨어났다. 바보 같던 지난날을 되돌아보았다. 도대체 왜 그랬나 싶을 정도로 나는 어리석은 가치관과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똥 멍청이였다는 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만일 내가 독서와 글쓰기를 하지 않았다면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기변명이나 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글 쓰는 동안 뇌의 메타인지 기능이 발달해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었다.
대출상환을 위한 글쓰기는 거대한 인생 수업이었다. 문장을 쓰고 고민하면서 정신의 먼지를 털고, 건강한 시선의 힘을 길렀다. 사고방식과 마인드가 바뀌니 돈은 다시 금세 모였다. 결혼을 9개월 남기고 모든 대출을 상환했다. 월급과 글쓰기 수입, 외부강의 등으로 이천 만 원을 만들어 결혼할 수 있었다.
나의 이천 만 원에 아내가 모은 사천만 원을 보태 반전세 신혼집을 구했다. 아내는 내가 모은 돈의 두 배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나를 타박하지 않았다. 아내에게 고맙고도 미안해서 평생에 걸쳐 보답하겠노라고 굳게 다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당시 나는 스스로가 모지리 쓰레기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자책한다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 사라진 2500만 원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빚을 갚고 나서도 글쓰기와 독서를 놓지 않았다. 개선된 인간이 되어 '빚내어 주식투자' 같은 실책을 더는 범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글쓰기가 무척 재미있어서 취미로 완전히 자리 잡은 것도 한몫했다. 대출이자를 벌어 보고자 시작한 글쓰기는 6년 동안 출간, 북 토크, 강연, 온라인 연수 제안, 각종 매체 원고 청탁으로 이어졌다.
나는 현재도 등단을 하지 않았고, 대학원에서 국문학이나 문예 창작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도 아니다. 수십 편짜리 웹소설을 뚝딱 써내는 이야기 달인도 물론 못 된다. 단지 생활하면서 겪은 일, 책을 읽으면서 나온 생각을 뽑아내 일기처럼 쓴다. 이 행위를 반복하면 글쓰기 실력이 늘고, 월평균 30만 원 대의 수익을 거둘 수 있다.
글쓰기에는 굉장히 종류가 많은데 내가 주로 다루는 건 생활 글쓰기다. 생활문만 적당히 쓸 줄 알아도 추가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상식적으로 한 번 생각해 보자. 모든 인간은 생활인이다. 장관도 똥을 싸고, 대기업 임원도 장을 본다.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기본적인 생활양식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바꿔 말하면 생활은 누구나 하는 것이기에 누구나 생활문을 쓸 수 있고, 생활문은 공감의 여지가 크다. 그러므로 몇 가지 글쓰기 스킬을 익히고, 작가로서의 마인드 세팅을 하면 누구나 생활문으로 용돈을 벌 수 있다. 지레 겁먹을 것 없다. 여기 혹시 라면을 끓이지 못하는 사람 있으면 손을 들어 보자.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혹시 기억이 안 나면 라면 봉지 뒷면의 조리법을 읽고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다. 그럼 전문 라면 장인이 끓인 맛까지는 아니어도 허기진 때에 맛나게 먹을 수 있는 라면 한 그릇을 완성할 수 있다.
나 역시 글쓰기를 시도해 보기 전에는 막막했다. 제일 겁이 났던 것은 내가 글 쓸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왠지 등단을 해야만 글을 쓸 자격이 주어질 것 같았다. 책장에 꽂힌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내가 어떻게 글을 써' 같은 생각이 나면서 주눅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사 먹다가 깨달음이 찾아왔다. 길거리 떡볶이 푸드 트럭은 정식 건물에 입주한 식당이 아니다. 사장님이 일류 호텔 출신 경력이 있는 분도 아니다. 그렇지만 굉장히 맛있고, 사 먹을만하다. 글도 똑같지 않을까? 내가 쓸 수 있고 팔 수 있는 글을 쓰면 되는 것이다.
용돈 글쓰기를 목적으로 하는 나는 상위 1% 천재를 이길 마음이 없다. 아마추어가 고래 싸움에 진을 빼면 안 된다. 그렇지만 노력으로 상위 25%까지는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상위 25%의 역량은 훈련에 의해 만들 수 있다. 이미 완벽한 참고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셀 수 없이 많이. 확실한 근거를 보여주겠다.
각 분야의 상위 1% 천재들은 이미 책으로 각종 노하우와 핵심 원리를 남겨두었다. 플라톤은 <향연>을,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데일 카네기는 <인간 관계론>, <자기 계발론>을 썼다. 각자의 분야에서 일을 하고 생활하는 우리는 천재들의 아이디어를 빌리면 된다. 책을 읽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것이지, 이미 책은 차고 넘친다.
용돈 글쓰기는 책을 읽고 글을 쓸 줄만 알아도 충분하다. 천재의 아이디어와 우리의 경험이 만나면 소액일지언정 유료화할 수 있는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믿기 힘들겠지만 정말로 그렇다. 책을 꾸준히 읽고 글쓰기를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상위 25% 수준의 생활문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의 글에서 실전 용돈 글쓰기에 필요한 기술과 태도, 루틴을 다룰 것이다. 훌륭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 지식, 덕성, 체력이 모두 필요하듯 글쓰기에 필요한 자질도 종합적일 수밖에 없다. 만일 어떤 글쓰기 수업에서 스킬 한 두 가지로 책을 쓸 수 있다고 말하면 허위, 과장이라고 보아도 좋다.
야구 선수는 시즌 전 스프링 캠프와 시범 경기를 뛰며 몸을 만든다. 비 시즌이라고 해서 탱자탱자 놀지 않는다. 나는 글을 직접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을 '정규 시즌', 글을 쓰지는 않지만 머릿속으로 내용을 구상하는 시간을 '비 시즌'이라고 가정하겠다.
실전 용돈 글쓰기 과정은 1루타를 무난히 칠 수 있도록 초심자를 도와주는 것이 목표다. 우리는 정규 시즌과 비 시즌에 필요한 것들을 두루 배울 것이다. 홈런왕을 양성하는 코스는 아니니 혹독한 훈련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궁금하면 다음 글을 읽어 보자. 나를 믿고 함께 노력하다 보면 2루타, 3루타까지 때려낼지도 모르지 않은가. 글쓰기란 타석에 서 보기 전에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