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지니의 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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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보증금 2500만 월세 6만 원짜리 임대아파트에서 7년 만에 6억 원이 넘는 신축 아파트로 이사했다. 이 모든 게 글쓰기와 독서의 힘 덕분이었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스물 여섯에 빈털털이가 되었던 경험은 전화위복을 위한 하나의 계기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알라딘의 요술램프라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용감하고 지혜로운 알라딘이 지니의 램프를 문지르는 장면은 언제 봐도 짜릿하다. 램프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보물 중 최고다.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는 로또 1등 당첨은 실상 세금 떼고 나면 십 수억에 불과하다. 반면 지니의 램프는 소원 세 가지를 이루어 준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소원 세 개. 과거의 나는 "알라딘, 억세게 운 좋은 녀석!" 하고 부러워 하기 바빴다.


그러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내가 묘하게 생긴 램프 하나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른다. 정신을 차려 보니 손에 램프가 쥐어져 있었다. 나의 램프는 수수했다. 영화 속 램프처럼 윤이 나고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성껏 문지르면 스르르 연기를 뿜으며 귀여운 요정이 나타났다. 요정은 말했다.


"네가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네 소원을 모두 들어줄 수 있어."


요정의 이름은 키보드였다. 키보드 요정이 이루어준 소원은 다음과 같다. 글쓰기 이후 10년 간 얻은 세속적, 물질적 성과만 적겠다. 원래부터 천재나 부자에게는 우습겠지만 지극히 평범했던 내게는 기적이나 다름없는 성과다.


아이 둘을 안전하고 쾌적하게 키울 수 있는 아파트에 입주했다. 아파트 구입 비용이 원고료나 인세만으로 얻은 돈은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각종 노하우와 사고방식이 크게 반영되어 있다. 각종 공모전에서 스무 차례 이상 수상하고 상금을 받았다. 2021년 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의를 받고 첫 책 <선생님의 보글보글>을 펴냈다. 중쇄 찍기에 성공했다. 무대에 서면 얼어붙던 내가 특강이나 북 토크에서 농담을 하게 되었다. 2022년에 휴직을 내고도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


글쓰기의 목적이 금전 획득에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감정의 해소, 역사의 기록, 동기 부여, 지식의 전파 등 금전과 무관한 가치들이 너무나도 많다. 금전은 오히려 글쓰기로 얻은 다른 가치로 인해 생기는 부산물에 가깝다. 그러나 지금은 글쓰기로 용돈 버는 방법에 집중하고 있으므로 물질 세계를 중점적으로 다룰 것이다.


첫 번째 글에서 밝혔지만 나는 스물여섯에 잔고 0원을 기록했다. 대학시절 아르바이트한 돈과 월급 아껴 모은 종잣돈을 싹 날렸다. 설상가상으로 빚까지 얻었다. 102 보충대에 입대하던 날에도 이렇게까지 절망스럽지는 않았다. 나중에 결혼을 생각하고 있던 여자친구에게 결국 모든 걸 고백하게 되는데, 고백하기까지 6개월 간의 은폐 시기가 있었다.


당시 나는 내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시간을 가지며 상황을 정리하고 향후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돈을 아끼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집까지 한 시간을 걸어 다니고, 겨울에도 보일러를 켜지 않았다. 데이트 비용을 제외하고는 나를 위해 거의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숨긴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는 없었지만 비뚤어진 자존심이 사태를 악화시켰다. 지독한 스트레스로 건강도 나빠졌다. 얼음 같이 차가운 바람이 부는 1월의 어느 아침 나는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걸 느꼈다. 구역질이 나고 눈앞이 핑 돌았다.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심리적 압박이 육체를 잠식했다. 가끔 숨 쉬기가 힘들었다.


점점 초조한 모습을 보이고 불안해하자 여자 친구는 내 건강을 염려했다. 나중에 들어 안 얘기지만, 여자 친구는 내게 다른 사람이 생긴 줄 안 모양이었다. 이런저런 오해의 말들이 오간 후 나는 결심했다. 모든 걸 밝히겠노라고. 이대로 살아갈 수는 없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여자 친구에 대한 도리다고 생각했다.


대출부터 패망까지 순서대로 이야기를 꺼내는데 갑자기 눈앞이 흐려졌다. 눈물이 벌컥 차오를 줄은 몰랐다. 말을 하면 할수록, 못난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 더 커졌다. '병신아,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잖아.' 미안함과 자괴감이 뒤섞인 눈물이 뜨겁게 볼을 타고 흘렀다. 그런데 의외의 반응.


"괜찮아, 우리 아빠도 나 어릴 때 주식 투자하면서 엄마랑 엄청 싸웠어. 다음부터 안 그러면 돼. 바람핀 거 아니니까 상관 없어."


여자 친구는 정말 괜찮으니 진정하고 종이에 뭘 좀 써보자고 했다. 중구난방 말로 해봤자 어지럽기만 하다. 차근차근 정리해 보자는 제안이었다. 나는 눈물을 닦고 연필을 쥐었다. 내게 얼마 남지 않은 자원과 능력 따위를 차례차례 적었다.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다, 책을 싫어하지 않는다, 컴퓨터가 있다, 대학 평균 학점은 낮지만 에세이로 평가 보는 과목은 보통 이상이다.


적다 보니 희망이 생겨났다. 의외로 가진 재주가 많았다. 연필심이 바르르 떨렸다. 어쩌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쁨을 연필 끝으로 느꼈다. 은행 잔고가 0원을 찍은 이후 내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런 내게도 아직 할 수 있는 일과 자원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글쓰기의 요정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생각한 것을 적고, 적은대로 실행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어."


단순하지만 확실한 복음이었다. 나는 글쓰기로 용돈을 벌면서 월급을 저축하는 전략을 만들었다. 나는 여자 친구의 사랑과 믿음에 보답하고 싶었다. 우리가 예상한 결혼 시기까지는 2년이 남아 있었다.


종이에 칸을 나눠 달력처럼 계획을 세웠다. 월 단위로 저축할 수 있는 돈과 나가야 할 돈을 적었다. 문자화 된 생각은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이대로만 진행된다면 빚을 모두 갚고, 플러스 상태에서 결혼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신혼집은 임대 아파트에서 조촐하게 시작하자. 강원도는 대중교통이 불편하니 출퇴근을 위해 차를 구입하자 등등 구체적인 가이드라인도 세웠다.


내가 글쓰기를 삶의 무기로 삼은 건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향후 삶에서 글쓰기는 마법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힘을 발휘했다.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만 소개하겠다. 일기가 유료 칼럼으로 발전한 일화다.


글쓰기 왕초보 단계에서 나는 무엇을 쓸지 몰랐다. 그래서 일단 종이에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썼다. 내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 누가 봐도 굉장한 글감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둘, 일기라도 써서 사소한 이야기를 모아둔다. 3초 고민하고는 일기를 골랐다. 굉장한 글감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하한가 친 주식이 다음 날 상한가로 치솟기를 바라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날에도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발굴하여 키보드를 눌렀다. 하품 나오게 심심한 날에도 짧은 메시지 하나, 웃긴 에피소드 하나 정도는 건질 수 있다. 그 중 시사성과 공공성이 있는 글감을 모아 오마이뉴스에 보냈다. 일기는 기사의 형식으로 바뀌어 원고료가 되어 나왔다.


처음 받은 원고료는 2000원이었다. 나는 단지 일기를 쓰고 쓸 만한 추렸을 뿐인데 돈을 받았다. 팬더가 대나무를 뜯어 먹었다고 해서 상을 받지는 않는다. 그런데 글은 상이 나왔다. 나는 대나무를 냠냠 씹어먹듯 일기를 써댔다. 그러던 중 페이스북 메신저로 처음보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받았다. 정기 칼럼 제의라고 했다. 심지어 그 기자 분은 국내 최대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주간지 시사IN 소속이었다. 스팸인지 의심스러워서 인터넷에 기자분의 이름을 검색해 보기도 했다. 개인 번호로 통화를 하고 나서야 진짜 제의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었다.


나는 출간 경험도 없고 다른 매체에 정기 칼럼을 연재한 경력도 없었다. 그런데도 오마이뉴스에 올린 기사가 활동 근거가 되어 칼럼을 4년 간 쓸 수 있었다. 원고료도 후했다. 시사IN 기고는 또 다른 경력이 되어 새로운 기회로 이어졌다. 아침독서신문, 잡지 좋은 생각, 월간 에세이, 강원도 교육청 블로그 등 여러 매체에 글을 싣게 되었다. 스노우볼 효과가 일어난 것이다.


등단을 하지 않아도, 학위가 없어도 상관없다. 포기하지 않는 의지만 있다면 키보드로 마법의 요정을 부를 수 있다. 지금도 꾸준히 일기를 쓴다. 공개도 있고, 비공개도 있지만 계속 기록한다. 이제는 나의 모든 기록이 유료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힘들지 않다.


내가 자세하게 글쓰기 입문기를 적는 것은 그만큼 시작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손에는 이미 램프가 쥐어져 있다. 그 손으로 로또를 살 것이 아니라 램프를 문지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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