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할대 작가와 100번의 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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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글쓰기 전도사까지는 못 되어도 글쓰기를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는 편이다. 글쓰기가 삶을 한 단계 높은 세계로 데려가 줄 수 있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인간적으로 끌리는 사람에게 더욱 글쓰기를 권한다. 성공 확률은 3퍼센트 미만. 쓰지 않던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은 드물다. 만약 내가 아니라 스티븐 킹이나 J.K. 롤링이 "당신은 꼭 글쓰기를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권유한다면 아무리 못해도 절반은 쓰지 않을까.


여하튼 나의 꾐에 넘어간 3퍼센트는 글을 쓴다. 동기는 제각각이다. 나처럼 용돈을 벌고 싶은 분도 있고, 이십 대 무렵에는 일기를 썼다면서 향수에 젖어 시작하는 분도 있다. 나는 이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적극적으로 격려한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만년필이나, 새로 장만한 노트북으로 바뀌어 있으면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글쓰기 입문자는 들뜨기 마련이다. 첫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는 기쁜 나머지 링크를 채팅창에 공유하기도 한다. 이모티콘에서 행복에 젖은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글쓰기 후기도 대체로 만족스럽다.


'어른이 되어서 글을 쓰니까 보람 있고 오랜만에 즐거웠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포스팅하는 글하고는 맛이 다르다.'

'더 똑똑해진 것 같다.'


왠지 저 기분을 알 것 같았다. 나도 저랬으니까. 신혼 무렵 바리스타 자격증 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머신으로 에스프레소 한 잔 뽑기가 만만치 않았다. 추출 시간이 짧으면 신맛이 강하고 지나치면 썼다. 적절한 온도와 커피 분쇄 정도, 타이밍이 맞아야 에스프레소라고 부를 만한 액체를 마실 수 있었다. 선생님이 알려주신 대로 했지만, 수십 번 실패했다. 커피 퍽(커피 찌꺼기가 단단하게 굳은 것)이 젠가 블록처럼 쌓였다.


손에 쥐가 내릴 즈음, 처음으로 황금빛 크레마가 도는 에스프레소를 내렸다. 어떻게 만든 것인지 기억도 안 났다. 데미타세에 담긴 에스프레소가 교재에서 본 사진과 비슷했다. 동료의 축하를 받으며 잔을 입술에 갖다 댔다. 추상화를 떠올리게 하는 표면 무늬와 구수한 향, 사람이 마실 수 있는 에스프레소였다.


나는 이 날 집에 돌아와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에스프레소를 열네 잔이나 마신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드디어 에스프레소 뽑기에 성공했다는 희열이 더 컸다. 나는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을 검색하고 가격을 비교했다. 상상 속에서 홈카페를 차렸다. 홈카페에서 나는 검은색 앞치마를 두르고 능숙하게 에스프레소를 내렸다. 흠잡을 데 없는 에스프레소가 청결한 잔에 담겨 있었다.


그러나 초심자의 행운은 일회성이었다. 다음 수업에서 나는 골든 크레마를 띄우지 못했다. 오히려 예전보다 맛이 없어진 것 같았다. 신중하게 수 십 번을 시도했지만 엉망 일로였다. 우연한 성공에 우쭐해 기대치는 높아졌는데, 현실이 따라주지 않았다. 안정적으로 좋은 에스프레소를 내리려면 수 천 번의 연습이 더 필요할 터였다.


글도 커피와 닮은 구석이 있다. 초기에 별생각 없이 썼는데 수작이 나오기도 한다. 자기가 써 놓고도 왜 이 문장이 이런 방식으로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읽어보면 참 좋은 글이다. 요 며칠간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본다.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불과 한 달 만에 실력이 부쩍 자란 것 같다.


'나 혹시 천재?'


자신감이 밀물처럼 차오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시기를 조심해야 한다. 극초기에는 누구나 발전의 속도가 빠르다. 최소한의 기본기만 갖춰도 규격을 갖춘 결과물이 나온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장기를 두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왕초보는 아무 말부터 움직인다. 의미 없이 왕을 아래로 내리거나, 사를 옆으로 민다. 그러나 일정 레벨이 넘어가는 사람은 몇 가지 패턴을 지키며 게임을 시작한다. 졸이나 마를 움직이고, 그다음 포를 중앙으로 옮기고 하는 식이다. 초보에게는 이 패턴만 가르쳐 주어도 승률이 급상승한다.


글쓰기에 자신감이 생긴 사람은 욕심을 낸다.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하고 싶은 것이다. 우쭐대장 A 씨의 사례를 보자. 여기 기고만장한 A 씨가 있다. A 씨는 브런치라는 작가 사이트를 발견한다. 브런치는 제법 도도한 곳이어서 작가 등록을 하려면 심사에 통과해야 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A 씨는 코웃음을 친다.


'2주나 열심히 글을 썼다. 내가 읽어 보아도 멋지다.'


A 씨는 세 편의 글을 첨부하여 작가 신청을 한다. 용감했으나 결과는 낙방. 다음 기회에 더 좋은 인연으로 만나자는 상냥한 거절 메시지를 받는다. A 씨는 뭔가 착오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서버 오류로 글이 누락되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에 빠진다. 흐음, 이럴 리가 없다.


기운을 차린 A 씨는 블로그에 글 몇 편을 더 쓴다. 닷새 뒤 다시 브런치의 문을 두드린다. 이번에야 말로 통과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저번의 탈락은 그저 사고였을 뿐이다. 이틀 뒤 브런치에서 메일을 보내온다. 짜잔! 탈락입니다. 믿을 수 없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심사 위원이 비전문가 아니야? 그러다 어떤 숭고한 깨달음에 이른다. 브런치는 나와 '색깔'이 다를 뿐이야. 나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다른 무대를 찾아가자.


내가 무얼 잘하는지 생각해 보자. 나는 비판 능력이 뛰어나니까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글을 쓸 수 있어. 다시 용기백배하여 오마이뉴스 시민 기자로 등록한다. 시민 기자는 별도의 자격이 없어도 기사를 작성할 수 있다. 모든 원고가 기사로 채택되는 것은 아니지만 채택이 되면 등급에 따라 원고료가 나온다.


이번에야 말로 나의 진면목을 보여주겠어! 그러나 돌아오는 건 원고료가 아니라 '~한 방향으로 다시 기사를 작성하면 어떻겠냐'는 정중한 미채택 쪽지다. 자신감이 쭉 빠진다. 며칠 동안 글을 놓는다. 그래, 꽤 흥미로운 취미였어. 하고 모든 걸 그만두고 싶다. 아, 내가 읽기에는 나쁘지 않은 글이었는데...


미련과 좌절의 무한 루프. 센스 있는 분은 알아채셨겠지만, A 씨는 바로 나다. 이랬던 내가 출간 제의를 받고, 북 토크를 하고, 주간지와 여러 잡지에 칼럼을 쓰고, 공모전에서 입상을 하게 된다. A 씨를 보면 알겠지만 나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철저한 노력파다. 될 때까지 도전하며 포기하지 않는다. 인디언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올리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글 재능이 있는 분은 나보다 늦게 시작하여도 훨씬 큰 성취를 이룬다. 속도도 빠르고, 텍스트의 깊이도 훌륭하다. 세상은 애초 불공평한 공간이다. 그래서 부럽지 않다. 나는 천재와 수재를 질투심을 못 느낀다. 넘어설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기에 감정 동요가 없다.


내 목표는 처음부터 상위 25% 안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전업 글쓰기로 생계를 꾸릴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고, 용돈이나 벌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러니 천재를 시기할 까닭이 없다. 오히려 천재의 재능을 레버리지 삼아 그 사람의 강점을 내 방식대로 흡수하고 싶다. 나는 끈질긴 구석이 있으니까 일부 흡수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야구를 보는 사람은 알겠지만 일류 타자의 기준 중 3할대 타율이라는 개념이 있다. 3할 타자가 되려면 100번 타석에 서서 30번 이상 안타를 쳐야 한다. 언뜻 들으면 겨우 30%? 하면서 고개를 갸웃할 수 있다. 그러나 꾸준히 3할 타율을 유지하는 타자는 소수이다. 3할 유지에 성공하면 몸값이 천정부지로 뛴다.


야구와 글쓰기는 그런 점에서 비슷하다. 쓰는 족족 주목을 받고, 책을 냈다 하면 베스트셀러로 이어지지 사람은 손에 꼽는다. 탑 스타플레이어만 이러한 영광을 누린다. 반면 용돈 글쓰기는 2할 대만 유지해도 가능하다. 나의 목표는 2할 5푼이다. 이 정도가 내 본업과 육아 그리고 글쓰기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적절한 수준이다. 오버해서 3할로 목표치를 올리면 탈이 난다. 생활의 일부에서 펑크가 발생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좌절을 겪고 계신 초보 글쟁이 분들께 약간 덜 초보인 내가 드릴 수 있는 조언이 있다. 나름 십여 년 가까이 글을 쓰고 용돈 벌이를 해온 입장으로서, 작가는 배트를 계속 휘두르는 수밖에 없다. 단순하지만 확실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2할대 타자인지 3할대 타자인지 확인하려면 적어도 100번은 타석에 서 봐야 한다.


우리는 종종 너무 빨리 절망한다. 19번 시도해서 2번 밖에 성공하지 못했다면서 한숨 쉰다. 그럼 1할대 3류 작가가 아니겠냐고 자조한다. 과연 그럴까, 81번 추가로 시도해서 마지막 스무 번을 모두 성공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100번 타석에 서기 전까지는 자기 타율이 얼마큼 되는지 정확히 가늠하기 힘들다.


작가는 뇌의 근육을 쓰는 사람이다. 뇌가 글쓰기에 기계처럼 반응할 때까지 충분히 반복 훈련을 해야만 한다. 야구팀에 투수 코치와 타자 코치가 있듯이 당연히 지도도 받아야 한다. 온라인 글쓰기 클래스도 좋고, 오프라인 글쓰기 모임도 좋다. 시중에 나와 있는 창작론, 창작 에세이를 두루 섭렵하는 정성도 들여야 한다.


3할대 작가는 어려울 수 있다. 재능이 따라줘야 하고, 현실 조건이 맞아야 한다. 그러나 2할 작가는 도전 가능한 범위에 있는 난이도 중급의 과제다. 노력으로 커버 가능한 부분은 어지간하면 그냥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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