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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진탕 마신 다음 날에는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직장에서 처리해야 할 복잡하고 전문적인 업무는 물론, 간단한 집안일도 잘 안 된다. 다 때려치우고 누워서 폰이나 하고 싶다. 운동도 가기 싫다. 햇볕 쬐는 골목길 고양이처럼 만사 귀찮다. 그다지 재미도 없는데 습관적으로 게임을 한다. 나는 이런 증상을 뇌가 제기능을 못할 때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뇌가 썩은 상태의 나는 무기력하게 산다. 글쓰기를 생활화 하기 이전에는 자주 이랬다.
인생을 건조하게 정의하면, 의사결정의 누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하루하루 내가 어떻게 살아왔느냐, 그게 인생의 전부다. 좋은 인생을 살고 싶다면 좋은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글쓰기는 뇌를 활성화시켜서 우리가 나쁜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도와준다.
나는 인생이 어느 한순간 망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망했다고 판단하기 훨씬 전부터 전조 증상이 있었을 것이다. 버는 돈보다 과한 소비를 하고, 과음과 과식을 하고, 책이나 신문을 읽지 않는 등 안 좋은 습관이 쌓여서 어느 순간 결정적인 실책을 범하게 된다.
안 좋은 생활습관과 사고방식은 잘 바뀌지 않는다. 인간은 해오던 방식을 고수하는 본능적 관성이 있다. 나도 게임을 완전히 끊지 못하고, 달콤한 디저트가 없으면 이틀을 버티지 못한다. 남들보다 글쓰기를 오래 붙들고 있을지는 몰라도 다른 영역에서는 평균 이하도 수두룩하다.
사회초년생 시절 대출을 받아 코스닥 잡주에 투기했다. 포커 마스터들이 모인 하우스에 종잣돈을 털리고 싶어 제 발로 찾아간 방구석 도박쟁이 꼴이었다. 빨리 수익을 거우고 싶어 레버리지를 감행한 나는 가슴이 떨리고 조급했다. 중간에 탈출 기회가 있었다. 수익률이 마이너스 이십 퍼센트에 달했지만, 차라리 그 시점에 실패를 인정하고 그만두었으면 되었다. 그러나 나는 탈출하지 못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대처할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과거의 내가 경제 도서를 오십 권씩 탐독하고 여윳돈으로 투자 일기를 남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적어도 최악의 상황은 피하지 않았을까. 대출과 불법 투기 사이트와 코스닥 잡주라는 고혈압 유발 콤비네이션은 아니었으리라.
나는 글쓰기가 두뇌 능력을 극대화한다고 생각한다. 몸으로 느끼고 있다.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했다. 섬뜩하지만 진실에 가까운 표현이다. 독서와 글쓰기가 필요 없는 사람도 물론 있다. 이 사람들은 천재다. 타고난 센스와 실천력이 워낙 압도적이라 책벌레가 아니어도, 글을 쓰지 않아도 눈부신 성과를 낸다. 그러나 보통 사람은 글을 쓰는 편이 백 번 낫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은 용돈 글쓰기를 희망하는 사람일 것이다. 왜 자꾸 실질적인 기술은 말해 주지 않고 곁가지만 도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곁가지를 도는 중이 아니다. 글쓰기를 하려면 뇌의 활성화와 마인드 변화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갖춰지지 않으면 세부적인 스킬을 알려주어도 소용이 없다. 따라서 '글쓰기 = 두뇌 활성화 ->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수익 발생' 정도로 방향성을 가져 주시면 감사하겠다.
글을 쓰면 손 끝에다 뇌가 하나 더 달리는 기분이 든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머리로만 생각을 정리한다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고 부럽다. 나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오로지 쓰는 행위를 통해서만 사고라고 할 만한 고급 작업을 할 수 있다.
왜 머리만으로 안 되는가. 일단 잡생각이 너무 많다. A를 생각하는 동안에 B와 J가 튀어나온다. B와 J야 그만 생각나라, 하고 고개를 흔드는 순간 X와 Y가 불쑥 일어선다. 이래서는 중요한 일을 추려내기가 어렵다.
나는 뇌가 흐리멍덩할 때 컴퓨터 메모장부터 연다. 종이 수첩을 써도 상관없다. 우선 오늘 해야 하는 일의 목록부터 작성해 보자. 나의 3월 21일 자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팔 굽혀 펴기 5세트
2. 청탁 원고 A4용지 1장 분량까지 쓰기
3. 설거지와 분리수거
4. <양을 쫓는 모험 상권> 6장 읽기
이하 생략
과업을 열 개 정도 쓰고 우선순위를 매긴다. 투두 리스트(To do list) 작업만 마쳐도 뭘 해야 할지 몰라서 허둥지둥 대는 일이 사라진다. 목록을 작성하는 동안 우왕좌왕하던 뇌가 진정된다. 긴 글을 쓰지 않고, 할 일 목록만 글로 적어보아도 효과를 체감할 수 있다.
용돈 글쓰기는 생활문만 잘 써도 된다고 앞서 밝혔다. 투두 리스트는 생활문의 글감이기도 하다. 나는 보통 밤에 글을 쓰는데 제일 먼저 투두 리스트부터 확인한다. 그럼 하루의 윤곽이 다시 잡히면서 맞아, 콜라를 마시려다 생수로 바꿨지 하고 기억이 되살아난다. 이 기억을 일기로 작성해 보자. 잘 쓴 일기 몇 개를 적당히 연결하면 좋은 생활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일기라고 하니까 초등학생처럼 단순 사실만을 건조하게 나열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글쓰기로 용돈 버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그 어떤 언론사나 단체에서도 단순 사실의 집합체를 돈 주고 사지 않는다.
좋은 생활문에는 당연히 나의 생각이나 느낌이 들어가야 한다. 생활문의 생명력은 나만의 시선과 공감, 생생함에 있다. 유료화가 될 수 있는 생활문은 나만의 안목을 요령껏 잘 드러낸 글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되겠다.
나만의 시선과 공감이라는 용어가 생소한 분들을 위해서 예시를 하나 들어 보겠다. 나는 2020년 우리숲 이야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탔다. 공모전의 주제는 '도시와 숲'이었으며, 원고 준비를 위해 일기장을 뒤적였다. 최종적으로 내가 원고에 사용한 소재는 도시 숲과 공동묘지였다.
나는 신혼여행으로 이탈리아 여행 중 공동묘지가 마을 가까이에 있는 장면을 보았다. 주민들이 묘지를 공원처럼 다니는 걸 보고 뜨악했다가, 저럴 수도 있구나 하고 수긍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세계의 여러 장례 풍습을 소개하는 책자를 읽다가 나무 아래에 사람을 묻는 수목장이라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탈리아의 공동묘지와 수목장을 연결시켰다.
우리나라의 공동묘지는 기피시설로 여겨져 도시 외곽에 위치한다. 나는 사람들이 죽음을 낯설게 여기지 않는 방안으로 도시 내에 수목장 숲을 조성하면 어떻겠냐고 썼다. 숲을 거닐듯 고인을 추모하고 자연 속에서 죽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덜어내자는 의견이었다. 기이하게 여겨질 수 있는 아이디어였지만, 새로운 관점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위에 소개한 일화 말고도 '투두 리스트 -> 일기 -> 생활문 -> 공모전 원고 -> 입상'으로 이어진 경험이 수 차례 있다. 일단 뭐라도 쓰자. 탁탁탁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뇌가 깨어난다. 말했지 않은가. 글쓰기는 손 끝에 뇌를 하나 더 달아주는 행위라고. 농담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