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그릇>이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책의 요지는 사람마다 돈을 다룰 수 있는 그릇의 크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월 천만 원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천만 원을 벌 수 있고, 삼백만 원인 사람은 삼백만 원을 벌 수 있다. 만일 월 삼백만 원의 그릇을 가진 사람이 1%의 확률로 우연히 투자 대박이 나더라도 곧 판단력을 잃고 실패하게 된다. 복권 당첨자의 비참한 말로와 유사한 경로다.
비과학적인 발상이지만 직관적으로 이해는 되었다. 나는 돈의 그릇이라는 개념이 글쓰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종종 본인의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을 출간하는 것이 꿈이라는 분을 만나게 된다. 출판은 누구나 가질 법한 바람 중 하나다. 나는 겨우 책을 한 권 낸 작가이지만, 수년간 공백 없이 용돈 글쓰기를 하고 있다. 꽤 안정적이다.
나의 첫 책 <선생님의 보글보글>은 출판사의 제안을 받고 썼다. 마케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알음알음 추천만으로 중쇄를 찍었고, 2021년 청소년 교양도서로 선정되었다. 온라인 연수로 제작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북 토크를 세 번 열었다. 내 책을 읽어 본 지인은 가끔 묻는다. 어떻게 하면 책을 낼 수 있냐고.
나는 책을 내고 싶다는 분께 일기를 쓰듯 매일 십 분이라도 생각을 정리하여 글로 써 보라고 했다. 진심 어린 조언이었지만 상대는 원론적인 대답이라 여기는 눈치였다. 그러지 말고 출간에 이르는 확실한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작은 한숨이 나왔다. 나는 차마 "호텔 레스토랑에 취직하자마자 셰프 하실 수는 없잖아요."라고는 말 못 했다. 그런데 상대가 간절해 보이면 다소 과격한 제안을 한다.
"10만 원을 걸고, 3주 간 글쓰기를 매일 하겠다고 공언하세요."
블로그나 브런치에 써도 되고 종이 공책에 써도 된다. 중요한 것은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다. 만일 글쓰기에 성공하면 10만 원으로 창작 관련 책을 구입하고, 실패하면 불우 이웃 단체에 기부하면 된다. 매우 심플한 글쓰기 약속이다.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10만 원이 아까워서라도 성실히 쓴다.
나의 제안에 응하는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 꼴이다. 어떤 분은 자기를 놀리는 거냐고 핀잔을 주신다. 하지만 나는 진지하다. 3주 글쓰기를 제안하는 까닭이 있다. 반복된 행동이 습관으로 자리 잡으려면 적어도 20일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이 그렇다.
만약 당신이 타고난 천재 작가라면 3주 글쓰기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이미 글의 그릇이 출간의 단계를 상회하고 있기에 일필휘지로 책 한 권 뚝딱 쓰겠지. 실제로 일류 작가 중에서 기계로 찍어내듯 부지런히 책을 쓰면서도 작품의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 부류가 있다. <화차>, <이유>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미야베 미유키를 읽으면서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천재적인 업적을 창출하는 사람 대부분이 글쓰기를 즐긴다는 점이다. <생각의 탄생>이라는 책을 보면 창조적인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작업하는지 잘 나와있다. 천재들은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인식 등의 생각 도구를 쓰는데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록을 한다. 혹은 여가 선용 차원에서라도 계속 글을 쓴다.
글쓰기는 인생이라는 게임의 치트키와 같다. 문자화 된 생각은 머릿속에 있을 때보다 명료하게 드러나고, 종잡을 수 없는 세상에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열어준다. 그러니 한 번 글쓰기의 힘을 절감한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계속 쓴다. 삶이 나아지는 느낌을 살갗으로 느낄 수 있고 실제로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출판사와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정식 출간은 글쓰기가 무르익으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출판이라는 우연의 스파크가 튀기를 마냥 기다리지 말고, 읽고 쓰면서 글쓰기 레벨을 높여 두자. 내가 이런 논지로 말을 꺼내면 몇몇 분들은 뭐 그렇게까지 하냐며 신박한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요즘 소수 정예 글쓰기 컨설팅을 신청하면 석 달 후 무조건 책이 나오게 해 준다는 것이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관련 자료를 좀 찾아보았다. 정말로 그런 컨설팅이 존재하고 운영되고 있었다. 수강료는 강사의 수준과 수강 인원에 따라 다르지만, 적게는 수십 만 원에서 최대 수백 만 원을 호가했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는 법. 세상에는 저자 란에 본인 이름을 넣고 싶은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 것이다. 몇 달치 월급을 기꺼이 쏟아부을 만큼.
안타깝게도 출간을 확정 명시한 컨설팅 졸업 작품 중 화제작은 찾기 힘들었다. 솔직히 평하자면, yes24나 교보문고 등 일반적인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구매가 불가능한 책들도 많았다. 말 그대로 출간해서 소장은 하지만 정상적인 판매 시스템에 편입되지 못한 것이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책도 상품의 일종이다. 독자가 자기 돈 써가며 읽고, 친구에게 소개해 줄 정도로 입소문이 날 때는 책값보다 더 큰 무엇을 얻어갔다는 의미다. 전혀 알지 못했던 분야의 지식, 당장 실천에 옮기고 싶은 동기부여, 배가 아플 만큼 웃긴 이야기 등 팔리는 글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판매 가격의 최소 두 배 이상의 가치를 구매자에게 주지 못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는 존속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좋은 책을 쓸 수 있는 작가가 오래간다. 실력을 기르고 독자에게 가치와 만족감을 주자. 용돈 글쓰기를 하려는 분도 이 마인드를 꼭 가지고 계시는 편이 좋다.
사실 용돈 글쓰기가 목적이라면 굳이 출간을 하지 않아도 된다. 출간은 오랜 시간 투자와 원고 작업이 필요하다. 취미로 글을 쓰는 분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나는 생활문을 주로 쓴다. 출간을 목표로 기획 작업을 하지는 않는다. 제의가 들어오면 여건을 보아 쓸 수는 있겠으나, 우선은 짧은 생활문에 집중한다.
나는 용돈을 벌기 위해 공모전에 도전하고, 잡지에 칼럼을 기고한다. 모두 분량이 적은 글이다. 출판에 비해 글쓰기 시간이 적게 투입되고, 에너지 소모도 덜하다. 그렇기에 직장을 다니고,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용돈 글쓰기를 오랫동안 병행할 수 있었다.
출판사와 계약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혼자 준비하는 출간 작업은 리스크가 있다. 1년 넘게 전념했는데 계획이 틀어지거나, 중도 하차하면 얼마나 속이 쓰리겠는가. 다시 시작할 엄두조차 안 날 것이다. 반면 용돈 글쓰기는 실패해 보았자 A4 용지 1장 반의 원고다. 중도 포기의 데미지가 덜 하다. 현대 사회는 글쓰기 말고도 할 일이 무진장 많다.
가급적 정신 자원을 적게 잡아먹는 고효율 작업 방식을 갖추자. 그래서 나는 무리하게 '당신이 누구든 3개월 뒤 출간!'을 외치지 않는다. 출간을 위한 출간은 위험하다. 차라리 1년이고 2년이고 꾸준히 잔근육 키워 용돈 버는 글쓰기 게릴라가 되자.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글의 그릇이 커지면 어느새 출간 제의가 들어온다고 확신한다. 시기는 특정할 수 없어도 준비된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있다.
나는 이전 글에서 글 쓰는 몸을 만들기 위한 3주 글쓰기부터 해 보자고 제안했다. 3주 글쓰기에도 요령이 있다. 맞춤법을 공부해서 정확하게 쓰자!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맞춤법은 알고리즘이 알아서 맞춰 준다. 다음 글에서는 요리의 양념에 해당하는 글 쓰기 팁을 다루어 볼 것이다.
일주일 만에 책 완성해서, 대박 나는 허황된 꿈을 좇지 말고 기본으로 돌아가자. 하루 한 시간의 독서와 글쓰기. 용돈 글쓰기를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이 두 가지다. 전업 작가가 아니라서 참 좋다. 취미 글쓰기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