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털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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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3주는 글 쓰는 몸을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절대다수는 실천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3주 글쓰기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보통 수준을 넘어섰다. 빌 게이츠와 제프 베이조스 같은 세계 최고 부호들이 독서광에다 글쓰기 중독자라는 사실을 알고도 꿈쩍하지 않는 사람이 세상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사람들이 독서와 글쓰기를 하지 않는 것이 절대 풀리지 않는 불가사의 중 하나다. 사람들은 잘 살고 싶다고 말한다. 행복해지고 싶다고 외친다. 그런데 그 길에 가까 빠르게 이를 수 있는 독서와 글쓰기를 하지 않는다. 바나나 속살을 먹고 싶으면 껍질을 까야한다. 그런데 껍질을 까는 사람은 소수다. 만일 당신이 바나나 껍질을 벗길 용의가 있다면 글쓰기의 기초 몸풀기 운동이라 할 수 있는 '아이디어 털어내기'부터 해보자.


아이디어 털어내기는 본격적인 글을 쓰기에 앞서 생각과 느낌을 쏟아내는 작업이다. 의식의 흐름에 편안하게 몸을 맡기고 최대한 솔직하게 쓰면 된다. 나는 윈도우 메모장을 사랑한다. 단순하기 그지없다. 하얀 빈 창에 커서가 규칙적으로 깜빡이는 모습이 좋다. 어차피 아이디어 털어내기로 쓴 글은 남에게 보이는 용도가 아니므로 생각나는 대로 쓰면 된다. 복잡한 문법이나 문체 신경 쓰지 말고 생각과 감정을 옮긴다는 느낌으로 해보자. 내가 하는 '아이디어 털어내기' 과정의 일부를 옮겨보겠다.


"흠, 요즘 자주 피곤하다. 잠을 일곱 시간씩 자도 그렇다. 나는 생기 있는 하루를 보내기 위한 균형 잡힌 몸을 원한다. 무엇부터 하면 될까. 운동과 식습관 조절이 필요할 것 같다. 운동은 단순해야 한다. 따로 시간을 내어 피트니스 센터나 헬스장에 갈 수는 없다. 홈트레이닝을 하자. 푸셥과 플랭크가 무난할 것 같다. 군대에서 매일 했던 습관이 남아있다. 근력을 키워야 기초대사량이 증가한다. 힘을 써도 쉽게 지치지 않을 것이다. 식습관은 베테랑 운동선수를 참고하자. 오래 버틴 에이스에게는 반드시 비결이 있다. (다른 인터넷 창을 띄워 검색 중) NFL 탬파베이 버커니어스 소속 톰 브래디는 4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연봉이 5000만 달러다. 체력 왕의 비결은 규칙적인 물 마시기와 삶은 달걀이다. 톰 브래디는 오전 6시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물 500ml를 마신 뒤 삶은 달걀과 아보카도 중심의 아침 식사를 한다. 심플하고 저렴한 방법이네. 이것으로 간다. 한 달 후에 몸 상태를 다시 체크해 보자."


아홉 줄짜리 글이다. 작성하는데 10분이 걸렸다. 나는 생각나는 대로 적기만 했다. 글쓰기에 입문한 초기에는 하루에 한 번씩 아이디어 털어내기만 해도 된다. 이 연습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짧은 글을 능숙하게 쓸 수 있어야 긴 글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단순 사실을 나열하는 일기가 아니라 아이디어 털어내기로 연습해야 하는 걸까.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 아무 특징도 없고, 감성도 안 실린 글을 누가 돈을 내고 읽어줄까? 만일 내가 공모전 담당자라면 로봇 녹음기 구술 기록이나 다름없는 평이한 글을 수상작으로 뽑을까? 조금이라도 색다른 관점이 있는 글, 재미와 감동을 주는 글, 커다란 깨우침을 주는 글에 눈길이 더 가지 않을까.


생활문으로 용돈 글쓰기를 하려면 나만의 시선과 경험이 중요하다. 위대한 에세이를 남긴 작가들에게는 대체하기 힘든 색깔과 분위기가 있다. 나는 글을 막 시작할 무렵 고민이 많았다. 진부한 표현이 글 전반에 가득했다. 나만의 무늬를 보여주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도서관에 가서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빌렸다. 그 안에서 내 고민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글쓰기 초보는 긴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문장이 딱딱하게 굳어있다. 가식적이고, 식상한 표현이 반복된다. 긴장을 푸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나는 이후 최대한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디어 털어내기를 했다. 홍차나 커피를 곁들이며, 음악을 들었다. 그러자 글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아이디어 털어내기의 다른 한 가지 쓸모를 소개하자면 '로우 데이터로서의 역할'이다. 로우 데이터(RAW DATA)는 문자 그대로 날것의 글쓰기 재료다. 로우 데이터는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이나 기업에게 필수적인 자료다. 가령 언론사는 수천만 장 이상의 사진과 영상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이 자료들이 모두 기사나 보도 방송에 쓰이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로우 데이터는 추후에 심층 보도 프로그램이나 기록물을 제작할 때 유용하게 쓰인다.


개인에게도 로우 데이터는 필요하다. 나는 '아이디어 털어내기' 작업 없이 어떤 글도 쓸 수 없다. 돌아서면 툭, 자고 나면 툭. 나는 잘 까먹는다.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갈수록 증상이 심해진다. 특별히 이상한 현상은 아니다. 본래 인간은 망각하는 동물이다. 인간의 뇌는 작업 처리 효율을 높이기 위해 망각이라는 쓰레기 청소 작업을 한다. 덜 중요한 정보를 지우고, 의미 있는 정보를 장기 기억으로 보낸다. 나의 건망증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글 쓰는 사람에게 글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곤란하다.


특히나 생활문으로 용돈벌이를 하려면 그날그날의 생생한 감정과 사건 기록이 남아있어야 한다. 나는 아이디어 털어내기를 브런치나 네이버 블로그에서 한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스마트폰으로 꾹꾹 글자를 누른다. 온라인에 한 번 올리면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 나는 IT 기술이 발전한 21세기가 아니었다면 제대로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가끔 어떤 분들은 하소연을 한다. 혼자서 묵묵히 글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도저히 자극이 안 되고, 의욕도 금방 죽어서 일주일을 못 넘기겠단다.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위로를 드린 뒤, 글쓰기 그룹에 가입하시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혼자서 뚜벅뚜벅 목표를 향해 가는 사람이 있고, 의기투합하여 팀 플레이하는 사람이 있다. 글쓰기에도 성향 차이가 뚜렷하다.


나는 개인 단위로 글쓰기가 어려운 분들을 '장 의존형 field dependent'이라 부른다. 장 의존형은 환경을 바꿔주면 잘 쓴다. 글쓰기 도전 모임이나 커뮤니티에 가입해야 하는 편이 좋다. 글쓰기 모임에 가면 열정이 폭발하는 사람들이 폭포수처럼 글을 써 댄다. 하루에 두 편씩 막 쓴다.


멘토 역할을 하는 분이 있는 경우 간단한 첨삭과 함께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것 같았어요.' 같은 코멘트도 달린다. 장 의존형은 혼자서 할 때보다 그룹에 들어있을 때 의욕이 치솟는다. 3주 글쓰기는 물론 석 달 글쓰기도 무리 없이 해낼 수 있다.


반대 성향인 '장 독립형 field independent'은 굳이 커뮤니티에 가입할 필요 없다. 가 봤자 속만 시끄럽고, 과도한 경쟁 분위기에 휘말려 내 목소리가 묻힌다는 기분이 들 수도 있다. 타인을 의식하다 보니 문체가 흐트러지고, 어색한 감정이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도 장 독립형이라 그룹이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커뮤니티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물 안 개구리를 피하기 위해 종종 커뮤니티를 찾는다.


장 독립형은 혼자서 슉슉 글을 쓸 수 있지만,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성장이 멈추기도 한다. 본인 자아에 심취한 나머지 '나는 이대로 완벽해. 딴 건 됐어.' 하고 제자리걸음을 할 가능성이 있다. 나는 '자뻑'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혼자서 이런저런 탐구를 했다. 갖은 시행착오 끝에 나에게 최적화된 돌파구를 발견했다. 바로 천재의 작품을 의무적으로 읽는 것이다.


천재는 나보다 뛰어나다. 천재는 여러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다. 천재의 업적을 두루 살피며 공부하는 것만으로 나는 성장할 수 있다. 이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다음 일은 쉽다. 예컨대 나는 감상적으로 변하고 싶을 때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고, 돈이 벌고 싶으면 '모건 하우절'을 읽는다. 두 사람은 내게 언제나 최고 수준의 기쁨과 행복을 선사한다.


나도 언젠가는 이런 경지에 오르고 싶다는 건강한 동기를 부여해준다. 자신이 장 독립형이라면 천재를 읽자.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아이디어 털어내기의 기초 개념과 실제 사례를 살펴보았다. 성향에 따라 방법을 달리 해야 한다는 점도 수긍이 될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텅 빈 페이지를 여러분의 아이디어로 채우는 일뿐이다. 문장을 쓰다 보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삭제 버튼을 누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게 될 수도 있다. 단어 하나를 두고 '사랑'이 좋을지 '애정'이 좋을지 망설여져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불면의 밤을 스물한 번 보내고 나서 첫날에 쓴 글을 읽어 보자. 내가 헛걸음하지 않았구나 하고 꿀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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