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지난 3주 간 아이디어 털어내기를 한 소감이 어떤가? 내면의 생각과 느낌을 가감 없이 글로 바꾸는 동안 문장도 좋아졌을 것이다. 이제 점프를 할 차례다. 아이디어 털어내기는 자기 자신을 위해 쓰는 연습 글이었다. 쓰는 사람도 나이고, 읽는 사람도 나 자신이다. 그러나 내 글을 돈으로 사주는 사람은 모두 외부에 있다. 우리는 외부의 기준을 충족시켜야만 한다.
공모전이나 칼럼 기고, 기사 작성의 경우 주제와 양식이 있다. 우리는 자기만의 시선을 담아 글을 쓰되, 일정한 형식을 준수할 수 있도록 주의해야 한다. 만일 번다한 양식을 지키기도 싫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죄송하지만 용돈 글쓰기가 어려울 것이다. 언제나 돈은 나를 위해 쓰는 글이 아니라, 타인을 이롭게 하는 글을 쓸 때 나온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럼 타인을 이롭게 하는 글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자기만의 시선을 담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위할 수 있을까. 텔레비전 뉴스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르다.
지금은 밤 아홉 시. 종합 뉴스 방송이 나올 시간이다. 말쑥한 차림을 한 아나운서가 바른 자세로 앉아 있다. 그런데 만약 아나운서가 뉴스 진행 도중 넋 나간 독백이나 즉흥 코미디 콩트를 하면 어떻게 될까. 방송 사고로 간주되어 비상 영상이 재생될 것이다.
뉴스 아나운서는 시청자가 알아듣기 쉬운 발성과 말 빠르기로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려 노력한다. 물론 모든 방송사가 똑같은 내용을 뉴스로 내보내지는 않는다. 방송사마다 어떤 사실을 부각할 것인가 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작가로 치면 본인의 관점이나 시선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시청자의 이해도와 편의성을 높이려는 시도는 모든 방송사가 공통적으로 하고 있다. 글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독자의 편에 서서 생각해 봐야 한다.
글쓰기로 용돈을 벌기 위한 스킬은 무엇이 있을까? 내가 소개할 첫 번째 스킬은 쉬운 표현 사용하기이다.
글 쓰는 사람에게 커다란 오해가 있다. 대학교재에 등장하는 고급 단어를 써야 글이 고급스러워진다는 믿음이다. 나는 우리나라 성인들이 수능 언어영역 비문학 문제에 골을 싸매다 보니 만들어진 오해라고 생각한다. 긴장을 풀어도 좋다. 우리는 독자가 대학 교육을 받을 만을 만한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가려내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럼 남들이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만일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독특한 표현은 어떨까. 문학 영역이라면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글의 종류는 생활문이다. 생활문은 누구나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 누구나 편안하게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문장을 풀어나가면 된다. 내가 쓴 한 편의 글(2017 학교 화장실 공감 스토리 공모전 장려상)을 분석해 보면서 설명해 보겠다.
나는 2016년부터 2019년까지 강원도 삼척 산골 탄광촌에 위치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했다. 아무래도 탄광촌이 경제, 문화적으로 낙후한 지역이다 보니 지원금이 자주 내려왔다. 그중 한 예산이 화장실에 할당되었다. 돈의 힘은 빠르고 섬세했다. 암모니아 냄새 풍기던 낡은 변기 화장실은 비데와 천장 온열판이 갖춰진 최신식 공간으로 거듭났다. 그렇지만 첨단 설비가 꼭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었다.
비데를 처음 접한 우리 반 K군은 신통방통한 기계가 궁금해 견딜 수가 없던 모양이었다. 하루는 K가 똥을 누고 비데를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휴지 대신 비데 '세정' 버튼을 누르는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K는 잠시 뒤 매우 놀라 괴성을 질렀다. 똥꼬를 향해 물이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몹시 당황한 K는 온갖 시도를 해보았지만 성난 기계를 잠재울 수 없었다. 모든 걸 단념한 K는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순간 인체 감지 센서가 작동해 기계가 멈췄다.
기쁨도 잠시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액체 처리가 급선무였다. K는 속옷과 바지에 묻은 전쟁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휴지로 사투를 벌였다. 그러다 수업에 늦게 참여했다. 다음은 K의 육성 기록이다.
"아까 똥 누고 비데 썼는데 막 소리 나면서 물 나오고..."
"그냥 기계가 멈췄어요."
나는 다음 날 비데 사용법 특강을 했다. 야유와 놀림이 난무할 줄 알았던 수업은 의외로 진지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제법 많은 수의 아이들이 비데의 기능에 감탄하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나 또한 비데 수업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나는 K군 비데 사건이 너무 재미있어서 삼십 분 만에 원고를 뚝딱 썼다. 분량은 A4 용지 한 장. 삼십 분 만에 쓴 원고는 상금이 되어 돌아왔다. 글에 어려운 단어는 하나도 쓰지 않았다. 만일 내가 글에 힘을 준답시고 '배변 활동이 과도하게 왕성했던 K'라든지, '변의를 느끼면 인내심이 단기간에 고갈되는 과민성 대장증후군' 같은 표현을 주야장천 늘어놓았으면 어땠을까. 아주 피곤하지 않았을까.
나는 똥을 눈다고 썼다. '용변을 보다'라고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똥을 누다 혹은 화장실 다녀온다고 하지 '장 비우기' 같은 말은 거의 모른다. 쉬운 표현은 그 상황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나 문장일 가능성이 높다. 제일 먼저 생각난 단어나 문장이 피부에 와닿고 상황에 적절하면 과감히 쓰자. 창피한 기분이 든다고 해서 쉬운 낱말 사용을 꺼리면 어색한 글이 되기 십상이다.
두 번째 스킬은 단문 쓰기다. 나는 단문(짧은 문장)을 사랑한다. 긴 문장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알아두면 요긴한 상식이 있다. 짧은 문장에 비해 긴 문장을 잘 쓰기란 매우 어렵다. 긴 문장은 의미의 왜곡이 발생할 확률이 높고, 호흡도 길어진다.
혹시 집에 초등학교 시절 쓴 일기장이 있으면 들추어 보라. 한 숨에 읽기 버거운 문장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나는 직업이 초등교사라 아이들 일기를 수시로 읽는다. 어떤 일기는 문장이 하나로 끝난다. 읽다가 질식사할 것 같다.
오늘 아침에 순대국밥을 먹었는데 그 순대국밥은 어제 엄마가 밥 하기 싫어서 요기오로 4인분이나 시킨 것으로 내가 참 좋아해서 불만은 없지만 오늘처럼 1교시에 체육이 있으면 뛰기가 불편해서 조금만 먹으려고 하다가 먹다 보니 배고파서 두 번 먹었다가 점심때 급식에서 감자탕이 나와서 처음에는 엄청 싫었는데 먹다 보니 맛있어서 한 번 더 받아먹었는데 저녁에 또 남은 순대국밥을 먹었다.
헉헉, 나는 아이들의 폐활량을 존경한다. 아이들에게 왜 이렇게 썼냐고 물어보면 언제나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썼어요."
생각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문장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문장이 길면 비문이 자주 나온다. 독자는 주어와 서술어가 무엇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정확한 의미를 캐치하지 못해 앞으로 돌아가기 일쑤다. 당신이 긴 문장의 귀재가 아니라면 단문을 쓰자.
내가 긴 문장을 꺼리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 독서동아리 회원이었다. 당시 내가 흠모하던 선배 Y가 있었는데, 매우 지적이고 독서량도 굉장했다. 하루는 Y 선배가 심각한 얼굴로 미간에 힘을 주며 말했다.
"마르셸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지 않고는 소설을 읽어봤다고 하기 힘들지."
Y 선배의 평판이 작용했는지, 주변에서도 '오오' 하며 동조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전혀 모르는 작가에다가 전혀 모르는 작품. 그러나 바보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프루스트인지 콘푸로스트인지 모를 그 사람을 머리에 새기며 굉장히 동감하는 척했다. Y 선배가 내게 질문을 하지 않아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나는 동아리가 끝나기 무섭게 도서관으로 뛰어갔다. 허세가 들통나기 전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어야만 했다. 서가를 헤매다가 겨우 책을 발견했다. 나는 두 번째 절망에 빠졌다. 총 11권. 그것도 한 권 한 권이 벽돌이었다.
'오 신이시여 왜 제게 이런 시런을 주시나이까.'
빈말으로도 다 읽을 자신이 나지 않았다. 나는 1권만 우선 빌렸다.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1권부터 등장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라고 다를까. 주인공 이름만 대충 외워두어도 나중에 쓸모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책장을 오십 장도 채 넘기기 전에 세 번째 고비가 찾아왔다. 마르셸 프루스트는 긴 문장을 아끼고 가꾸는 사람이었다. 그의 긴 문장은 확실히 아름다웠다. 그러나 더 확실하게 졸렸다. 가령 다음과 같은 문장.
'왜냐하면 아주머니가 나날이 확인할 수 있는 쇠진한 기력 탓에 어쩔 수 없이 부과된 칩거였는데도, 아주머니는 행동이나 움짐임 각각을 피로나 고통으로 만들면서 자신의 무위나 고립, 침묵에 기력을 되찾아 주는 축복받은 휴식의 부드러움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멋지지만 초보 독자는 소화불량 걸리기에 딱 알맞은 문장이다. 우리 같이 용돈 글쓰기를 하려는 사람은 굳이 이렇게 긴 문장을 쓸 필요가 없다. 외부에 기고하는 칼럼이나 공모전 원고는 분량이 짧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 경험을 떠올려 보면 시사IN 교육 칼럼 200자 원고지 11매(A4 용지, 10pt 기준 1장 조금 넘는 분량), 아침독서신문 200자 원고지 6.5매 등 A4 용지 두 장을 넘지 않는 글이 대다수였다.
정해진 분량이 짧은 글에서 긴 문장을 남발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결과적으로 필진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것이다. 짧은 원고에서 긴 문장을 쓰면 리듬감을 살리기 힘들다. 메시지의 전환이 어렵고, 늘어지는 느낌이 든다.
단문의 효용성은 인터넷에서 즉시 확인이 가능하다. 여러분이 이름을 들어 본 메이저 언론사 홈페이지에 방문해 아무 칼럼이나 골라 다섯 편 읽어 보자. 대체로 잘 읽힐 것이다. 읽다가 숨이 컥컥 막히는 긴 문장은 편집자가 알아서 컷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용돈 글쓰기 주요 스킬로 쉬운 표현 사용하기와 단문 쓰기의 장점을 학습하였는데, 누구라도 쉬이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독자 여러분의 심정은 어떠하였는지 답신을 받고 싶은 욕망의 부추김이 가늠할 길 없어 한숨 폭폭 새어져 나온다.
위 문장의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면 이번 글은 성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