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준수 Mar 27. 2022

몸으로 글쓰기

8

내 체력이 올림픽 선수급이라면, 베스트셀러를 일 년에 두 편씩 써내고도 남을 것이다. 글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에 백 번 동의한다. 의자에 장시간 앉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체력은 작가의 필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전업 작가의 경우 원고 마감과 분량 등의 이유로 네다섯 시간씩 글을 쓴다. 네다섯 시간이라 해도 최소 기준이며 바쁜 날에는 여덟 시간 이상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한다. 작가는 몸 쓰는 직업이 맞다. 


나는 용돈 글쓰기를 하는 부업 작가다. 전업 작가만큼 글쓰기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당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시간이 적다고 해서 대충 한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다. 몰입한 순간만큼은 깊이 생각하고 성실하게 키보드를 누른다. 때때로 너무 글쓰기에 몰두한 나머지 밥 먹는 것을 잊고, 해 지는 줄도 모르기도 한다. 


글쓰기는 확실히 재밌다. 그리고 잘하면 용돈도 벌 수 있다. 용돈이라고 하지만 한 달 30-40만 원 규모로 적지 않은 액수다. 사람들은 하루 한 시간 글쓰기로 용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한다.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한 시간쯤이야, 하고 힘차게 쓴다. 실제로 각 잡고 써 보면 한 시간 금방 간다. 이렇게 쉬운 걸 여태 안 하고 있었다니, 별 것 아니군. 하는 생각마저 든다. 다음 날에도 그럭저럭 할 만하다. 사흘 째부터는 슬슬 몸이 꼬인다. 나흘째에는 겨우 글을 완성하고 진이 빠진다. 그러다 문득 몸이 떨린다. 이 짓을 매일 해야 하다니.


그러나 거창한 출발과 달리 반년을 넘기지 못하고 글쓰기를 그만둔다. 지능이 부족해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 참 머리 좋고, 계산 빠르다. 글을 오랫동안 못 쓰는 이유는 글쓰기 체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글쓰기뿐만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대부분의 행위는 장기전이다. 당신이 재즈 바를 오픈했다. 끝내 주는 수제 맥주 4종과 최상급 스피커 세트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일주일에 하루만 문을 연다. 장사가 잘 될 것 같은가. 1년도 안 돼서 문을 닫아야만 할 것이다. 맥주 맛이 끝내주면 뭐 하나. 매일 가게 문을 열지도 않고서 손님 탓을 할 수는 없다. 


하루 한 시간 글쓰기는 최소한의 작업 시간이다. 전등을 켜고, 문을 활짝 열어 영업 중임을 알려야 한다. 귀찮다고 사나흘씩 '휴가 중' 팻말을 걸어두면 오던 손님도 끊기고, 돈도 마른다. 그럼 꾸준히 용돈 글쓰기 가게를 운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체육인이 되면 된다. 잘못 쓴 것이 아니다. 글은 튼실한 하체와 풍부한 심폐지구력에서 나온다. 


세간 사람들에게 작가의 이미지는 그리 건강하지 않다. 파리한 얼굴, 지독한 골초, 평균 이하의 신체 능력을 먼저 떠올린다. 혹은 세상과 담을 쌓고 이상에 사로잡힌 외골수 이미지도 있다. 술독에 절어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모지리 작가를 상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편견은 18세기 낭만주의 시대의 천재가 등장하는 문학 작품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한 글 쓰는 사람들은 모두 몸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파도를 보며 멍을 때릴지언정 해변가를 서성인다. 그렇게라도 발을 움직이지 않으면 글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가령 나만 해도 아침에 일어나 몸 움직이는 계획을 세운다. 운동은 필수다. 보통 팔 굽혀 펴기 4세트, 오천보 이상 걷기를 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분리수거 후 계단으로 집에 오기(27층)' 같은 특수 미션을 넣는다. 다리를 멈추면 머리도 멈춘다가 나의 신조다. 


그렇다고 한 달에 오십만 원짜리 피트니스 클래스에 갈 필요는 없다. 적당한 양의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이면 충분하다. 사실 나는 본업도 있고, 아이도 둘이나 키워야 해서 무척 바쁘다. 시간 투자를 최소화하는 운동을 선호한다. 


운동은 글쓰기에 무척 많은 도움이 된다. 원리는 간명하다. 첫째, 운동 중 글감 생성과 얼개 짜기를 할 수 있다. 둘째, 기초 체력이 좋아진다. 


첫 번째 효과부터 살펴보자. 어째서 운동이 글감 생성에 영향을 주는가. 보통 직장인이라면 퇴근 후에 글을 쓸 것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키보드에 앞에 앉았는데 머릿속이 캄캄하다면 얼마나 막막하겠는가. 앉자마자 바로 문장이 나오면 편할 것이다. 그러려면 낮에 글감을 미리 찾아두어야 한다. 운동은 글감을 발견하는 안테나의 감도를 높여준다. 


예컨대 나는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닌다. 큰 아이를 미술학원에 데려주어야 할 때, 차에 태우기보다 10분 일찍 출발하여 같이 걷는다. 개인적으로 운전은 글쓰기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운전대를 잡고 있으면 뇌가 편안하게 작업할 수가 없다. 신호 변경이나 주변의 보행자를 살피는 등 신경을 예민하게 세워야 한다. 머리가 느긋하게 돌아갈 환경이 아니다. 반면 걷기는 느린 속도로 이동하면서 두루 세상을 관찰할 수 있다. 


어제 내가 움직이면서 보고, 들을 것들을 나열해 보겠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쓸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해주시면 되겠다. 


"3월 중순의 강릉은 봄이 시작되는 무렵이다. 하얀 매화꽃이 피고, 목련은 막 꽃봉오리를 틔우려 한다. 대관령 꼭대기에는 하얀 눈이 쌓여 있지만, 산허리 아래는 눈이 모두 녹아 짙은 초록빛이다. 나는 아직은 차가운 봄바람을 맞으며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간다. 


교문 주변에서 방문 학습지 외판원들이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다. 아이를 현혹하는 풍선과 장난감이 한가득이다. 한 사람이 내게 말을 건다. 자녀가 1학년이라고 하자 무료 학력 테스트를 해 주겠다고 한다. 아이도 해보겠다고 해서 의자에 앉힌다. 나는 휴직 중인 초등교사라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고 학부모 모드로 지켜본다. 1학년용 테스트 종이에 4학년 국어 교육과정에 나오는 용어가 나와있었다. 


'다음 문장에서 어찌하다에 해당하는 것을 찾으세요.'


나는 작년에 4학년 담임을 하였다. 직접 국어 수행평가를 출제하고 성적도 매겼으므로 너무나도 잘 아는 내용이었다. 아이는 평균 이상의 스코어를 기록했지만, '어찌하다'가 무슨 뜻인지 몰라서 그 문제를 틀렸다. 학습지 선생님이 아이 테스트 결과를 해석해 주었다. 자못 심각한 표정이다. 


"아이가 음독은 되지만, 그것을 응용하여 문제를 푸는 능력이 아쉽네요. 저희 학습지 해보시는 것 어떠세요?"


나는 정중히 사양하고 자리를 나왔다. 학습지 회사의 비즈니스 전략을 알 것 같았다. 처음부터 해당 학년보다 몇 단계 높은 수준으로 레벨 테스트를 한다. 그 후 현재 아이가 열등하니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남들보다 뒤처진다고 은근히 협박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불안 마케팅이다. (이하 생략)"


걷다 보면 구몬 테스트를 받는 이벤트도 발생하고, 다른 사람과 대화도 한다. 자동차를 끌고 갔으면 결코 경험하지 못했을 부분이다. 몸으로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일이 많아야 글감이 풍부해진다. 한 번 마음속에 들어온 글감은 사라지지 않고 저절로 자라는 성질이 있다. 우리 의식의 귀퉁이에서 뇌의 양분을 빨아먹으며 조금씩 크는 것이다. 


운동은 글감을 키우는 유모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운동은 걷기와 푸셥이다. 모두 동작이 단순하고, 머리에 과부하를 주지 않는다. 그 사이 뇌는 긴장을 풀고 미처 못 처리한 문제들을 해결한다. 


걷기가 지루한 분은 뛰어도 좋다. <노르웨이 숲>, <해변의 카프카>로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한 시간 씩 뛴다. 그 덕분일까 칠십이 넘은 현재까지도 하루키는 왕성하게 글을 쓰고 있다. <세계의 끝 여자 친구>로 유명한 소설가 김연수도 자주 호수 공원 주변을 달린다고 말했다. 


나 또한 운동이 주는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운동을 하고 나면 언제나 훨씬 더 나은 글이 생산되었고, 퇴고의 질도 높았다. 시간이 남아 돌아서 운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직장 생활도 해야 하고, 2년 터울의 아이들도 키워야 했다. 마트 장보기, 세탁소 방문 등 지극히 일상적인 과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지런히 걸었다. 


운동이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비단 나만의 개인적이고 경험적인 의견은 아니다. 우연히 뇌 관련 도서를 읽던 중 과학적 근거를 발견했다. 해마 뉴런은 유산소 운동을 할 때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유산소 운동은 조깅이나 빠르게 걷기, 적당한 속도의 자전거 타기 등 장시간에 걸친 운동을 의미한다. 


그런데 운동을 통해 태어난 뉴런도 방치해 두면 28시간 뒤 소멸해 버리고 만다. 이 녀석들을 살리고 싶으면 뉴런에 지적인 자극을 주어야 한다. 책 읽고 글쓰기가 바로  지적인 자극이다. 지적인 심폐소생술로 뉴런을 살리면 뇌 안에서 구축되어 있던 다른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거대한 의식의 유기적인 일부가 된다. 쉽게 말해서 처리 속도가 빠르고, 새로운 정보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레벨업 상태의 뇌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쓰다가 중간에 막혀서 팔 굽혀 펴기를 스무 번 했다. 스쿼트도 다섯 번 하고, 아파트 단지도 세 바퀴 돌았다. 몸을 움직이고 나니 자동으로 문장이 머릿속에 만들어져 있어서 너무 짜릿했다. 해마 뉴런이 새로이 태어난다는 것이 대략 이런 현상을 말하는 것 같다. 


내가 글쓰기로 버는 용돈에는 해마 뉴런의 지분이 상당하다. 해마 뉴런 만드는 비용 공짜입니다. 얼른 만들어 보세요.


작가의 이전글 글맛을 살려주는 콤보 스킬 두 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