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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Dec 07. 2022

텅 빈 침실과 중고 육아용품

2022 우수 환경도서 독후감 공모전 일반부 우수

  대한민국에는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종교가 있다. 이 종교는 정식 종교로 분류되지도 않는데, 학교와 사회 곳곳에서 전수되어 한국인의 정체성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종교의 이름은 ‘GDP 성장주의’다. 국내총생산의 증대, 우리 사회의 사명은 ‘GDP 3만 불 시대!’와 같은 구호로 압축 표현되고는 했다. 나 또한 한국의 GDP 순위가 얼마나 상승했느냐를 승전보처럼 듣고 자랐다. 국제 경제라는 치열한 전장에서 GDP는 한 나라의 경쟁력 혹은 생존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주효한 지표로 작동했다. 


  학생 시절 우리는 비인간적인 입시 교육을 강요받았다. 새벽잠을 줄여가며 대학 입시에 몰두해야 하는 이유는 좋은 직장을 잡는 데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좋은 직장이란 돈을 많이 주는 곳이었다. 돈을 많이 주는 회사는 대기업이고, 대기업이 잘되어야 나라가 산다고 배웠다. 이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반항하면 한국 사회의 루저가 되어 집도 못 사고,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섬뜩한 충고를 공기처럼 마시며 살았다. 먹고 사는 문제. 인생에서 ‘먹고사니즘’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그런데 어쩌나. 먹고 사는 일이 어렵게 되었다. 갑자기 대한민국의 GDP 순위가 고꾸라진 것은 아니다. 1950년 전쟁 당시 최빈국이던 한국은 21세기 이후 쭉쭉 순위가 상승하더니 마침내 꿈에 그리던 10대 경제 대국에 안착하였다. 그리고 선도적 기후 악당 국가로 변모했다. 놀랍고도 슬픈 이야기다. 한국 같은 선진국이 엄청나게 에너지를 낭비하며 탄소화합물을 뱉어낸 덕분에 지구는 인간이 먹고살기 어려운 행성이 되었다. 이미 시작된 생태계 붕괴는 ‘인간의 경제활동으로 인한 대멸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막연한 불안이 아니다. 『적을수록 풍요롭다』에서는 기후 변화로 생물의 다양성이 감소하고 있으며, 인간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행성이 되고 있다고 확언한다. 우리는 침몰 중인 배에 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을 벼랑으로 내모는 원인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맹종하는 인간의 탐욕이다. 


  나는 저자인 제이슨 히켈이 지구를 망치는 자본주의의 허점을 아주 명쾌하게 후벼 판다는 세간의 평을 듣고 책 『적을수록 풍요롭다』를 집어 들었다. 환경과 더불어 자본주의는 내게 오랜 관심사였다. 그러나 종종 혼란스러웠다. 미친 자본주의와 탐욕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나는 돈이 필요했다. 네 식구가 살아갈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두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려면 돈이 들었다. 그래서 돈을 탐하면 탐할수록 죄책감이 들었다. 어릴 적 경제적 문제로 다투는 부모님 모습을 보기도 했고, 돈 때문에 해체되는 다른 가족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그럼 환경을 해치지 않는 수준의 자본주의는 어떤 것인가? 일상에서 평범한 시민이 갖출 수 있는 태도나 균형 감각은 무엇인가? 이 두 질문은 내 오랜 고민거리였다. 


  그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자본을 탐하는 사람으로 살 수밖에 없는 사실에 속죄하는 기분으로 환경단체에 기부했다. 아내는 그린피스, 나는 서울환경연합에 매달 소액을 보냈다. 어벤져스 같은 활동가분들의 사례를 읽으며 물개박수를 치고 불편한 마음을 잠재웠다. 일종의 면죄부였던 셈이다.


  그런데도 큰 돌덩이 하나가 내 가슴을 짓누르는 막연한 감각을 지울 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적을수록 풍요롭다』는 정말 고마운 책이었다. 지구를 사랑하는 마음과 자본주의 사이에서 균형 감각을 잡으며 살아갈 수 있는 방향을 보여주었다. 성장과 성장주의는 다른 것이며, 인간의 필요와 행복 증진을 위한 성장이 필요하다는 말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더불어 ‘성장을 위한 성장’, ‘축적을 위한 축적’이 자본주의를 광적인 상태로 몰아가는 주범이고, 한 국가의 성장이 멈추었을 때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매우 곤란해질 수 있다는 사실도 이해하게 되었다. 


  초원의 말을 달리게 하려면 채찍과 당근이라는 두 방법이 있다. 여태 내가 읽은 환경 책은 ‘채찍’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지구가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져 가는지 초강력 경고를 하며, 사람들의 무관심과 무절제함을 성토했다. 무시무시한 멸망의 문장을 읽고 있노라면, 독방에 갇힌 고행 수도사가 된 것 같았다. 친환경 생활을 하기는 하지만, 정서적으로 그리 건강하고 유쾌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반면 『적을수록 풍요롭다』의 채찍과 당근 비율은 3:7 정도다. 실제 텍스트 분량으로는 5:5이지만, 독자로서 느끼는 의미의 가중치를 적용하면 3:7처럼 다가왔다. 매서운 채찍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한결 위로받은 심정이었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희망의 복음서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내용도 매우 설득력 있다. 특히 우리가 국가 교육과정으로 배우는 자본주의의 속성이 잘못되었다고 꼬집는 대목은 압권이다. 인간의 본성에 새겨져 있다고 가정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원리는 발명된 개념에 가깝다. 산업혁명 이전 농노의 권리가 높았던 시절, 사람들은 1년의 삼 분의 일 가량을 쉬었다. 필요 이상으로 생산하지 않았으며, 온갖 축제를 즐기며 느긋하게 햇볕을 쬐었다.


  상당한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그럼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생산력이 증대된 시대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은 왜 이렇게 바쁜가. 뭐가 그렇게 조급해서 평생 필요도 없는 물건을 만들고, 자원을 써대는 걸까. 최첨단 풍요 속에서 쫓기듯 살 바에야 차라리 불편해도 느긋한 농노의 삶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적을수록 풍요롭다』가 가리키는 성장의 방향은 명확하다. 교환 가치가 아니라 필요 가치를 기준으로 성장하자. 나는 이것을 ‘덜 일 하고, 더 느리고 행복하게 살자’로 받아들였다. 그레타 툰베리 급으로 세계를 뒤흔들 사람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욕심내지 않고 최대한 자원과 에너지를 적게 쓰면서 사는 것이다. 그 정도만 인지하고 실천할 수 있어도 나쁘지 않은 인생이라 생각되었다.


  우리 가족도 소소한 실천을 수년째 해오고 있다. 큰 소리로 자랑할 수준은 아니지만, 꾸준히 노력하며 살고는 있다. 가령, 열흘에 한 번꼴로 플로깅을 한다. 또 매일 가계부를 쓰며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았는지 돌아본다. 하루 식비는 2만 원, 기타 생활비는 1만 5천 원으로 기준을 정해 생활한다. 


  침실은 텅 빈 방이다. 잠을 잘 때만 붙박이장에서 이불을 꺼낸다. 텔레비전과 건조기는 단 한 번도 내 돈 내고 사본 적이 없다. 전기요금은 1년 내내 동일 면적의 다른 가정보다 약 20% 적게 나온다. 아이들 육아용품도 나눔 물품이나 중고 물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유모차는 직장 선배에게 받아 썼고, 애들이 학교 갈 무렵이 되어서는 중고 시장에 싸게 나온 ‘구몬 전집 동화책’을 들여와 읽혔다. 장바구니와 텀블러 사용은 일상화되어 있다. 아이스크림을 스테인리스 통에 담아 오기도 한다. 


  왕성하게 환경운동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 미미하기 짝이 없는 우리 가족의 일상을 나열하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적을수록 풍요롭다』를 읽고 나니 작은 실천, 작은 살림 규모도 나쁘지 않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사실 세상에는 무난한 수준으로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가정이 꽤 많지 않을까. 다들 너무 낯 뜨거워하지 말고, 웃으면서 당당하게 친환경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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