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란 교사, 햇병아리 교사
<좋은생각> 제8회 청년이야기 동상
군대를 미루고 스물셋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대학 졸업 후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햇병아리 교사보다 위태한 유정란 교사. 첫 직장의 기쁨은 느낄 새도 없었다. 평생 학생으로서 적당히 규칙에 맞춰 사는 수동적인 입장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학급의 책임자가 되어 생활지도를 하고, 교사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려니 엄청나게 혼란스러웠다.
나는 곧 변비에 시달렸다. 학생 지도에 요령이 없던 나는 사소한 분쟁 처리에도 시간이 걸렸다. 매 순간이 째깍째깍 초침이 흐르는 시한폭탄 같았다. 평생 겪은 바 없는 지독한 변비가 지속되었다. 사람은 변의를 느낄 때 화장실에 가야 한다. 그래야만 건강한 배변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항상 긴장한 채로 괄약근이 꼬여있다 보니 똥이 제대로 나올 리 없었다.
더구나 내가 있는 3층 화장실 변기는 사용불가에 가까웠다. 남자 화장실 대변기는 사용하려면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다. 누가 거기에 앉아 있을라 치면 아이들은 문 위로, 아래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당장 바지에 쌀만큼 급하지 않으면 감히 누구도 변기 칸에 들어가지 않았다. 선생님이라고 별 수 있나. 거의 항상 '열림' 상태로 운영되는 대변기에 차마 앉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수학 수업 시간에 엄청난 신호가 왔다. 최후의 통첩 같은 강렬한 변의를 느꼈다. 나는 캐비닛에서 비상용 수학 학습지를 꺼내 나눠주었다. 갑자기 교육청에서 장학사님이 와서 교무실에 내려가야 한다고 둘러댔다. 그 길로 교실을 나왔다. 1층 교무실 옆 화장실에는 갈 수 없었다. 계단에 체중을 실었다가는 당장에라도 주저앉을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용자의 변기'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변기에 도착했다. 주섬주섬 채비를 마치고 세계 화장실사에 남을 격렬한 시간을 보냈다.
더 이상 이번 생에서 바라는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르렀을 즈음 발치에 이상한 기척이 느껴졌다. 타일 바닥에 어린 검은 그림자와 살구색 볼기짝. 나는 너무 놀라 왁!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고개를 숙여 바닥을 들여다보던 아이도 와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는데, 누군가가 같은 공간에 있었던 것이다. 소진된 나는 쫓아갈 힘도 없었다. 꼼꼼히 비누로 손을 씻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미 다 끝난 일이었다. 화장실에 관객 스무 명이 있었다고 해도 나는 일을 치렀을 것이다. 아이들이 똥쟁이 선생님이라고 놀려도 받아들여야 한다, 내 운명이다.
표정을 바르게 하고 교실 문을 열었다. 이미 세간의 평가 따위 초월한 상태였다. 지독한 야유를 예상했건만, 의외로 조용했다. 교실에는 얌전히 수학 문제를 푸는 스물몇 명의 아이들과 바들바들 떨면서 안색이 어두운 한 명의 남학생이 앉아있었다. 나는 모든 사정을 짐작했다. 충격과 공포로 인해 차마 떠들 생각조차 하지 않는 패닉 상태의 아이. 나는 그 아이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 진실을 발표했다.
"사실은 선생님 배 아파서 똥 싸고 왔다. 변비가 있었는데 아주 시원했어."
갑작스러운 똥 선언에 아이들은 교실이 떠나가라 웃었다. 금기에 도전하는 해방군의 웃음과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혼자 똥을 누니 참 좋았다는 경험을 나누면서, 앞으로 수업 중에라도 화장실 가고 싶은 사람은 다녀오기로 했다. 단, 평화로운 배변 활동을 위해 동시에 두 사람은 안 가기로 합의 봤다. 내가 아이들과 진심으로 연결된 최초의 순간이었다. 그렇게 유정란 교사는 햇병아리 교사가 되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선생님은 변비에서 나으려고 투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