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한테 맞고 사는 교사가 불쌍하다고 선생들 수업 안 하고 파업하는 것까지 이해해줄 거라 믿었던 거지. 오랜만에 장단 맞춰주니까 흥분해 가지고는 쯧쯧. 이래서 교사 집단이 아마츄어 소리를 듣는 거야.”
남 팀장은 입술을 오른쪽으로 끌어올렸다. 한 달째 야근에 시달리느라, 셔츠 상태가 엉망이었다. 깃은 구겨졌고, 소매에는 라면 국물과 블랙 커피 방울이 대결하듯 튀어 있었다.
“각 교육청에서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어?”
“대체로 나쁘지 않습니다. 서울, 세종은 빼고요.”
“하여간 그 양반들 정치 욕심은 많아 가지고. 그래 봤자 큰 틀에서 바뀌는 건 없어. 다른 데는 잡소리 없어?”
미연은 품고 있던 스마트 패드의 화면을 황급히 넘겼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서 유통되는 모든 공문과 내부망 데이터 내역은 전부 교육부 빅데이터 팀을 거쳐 간다.
“XX도에서는 교육감 이름으로 전체 쪽지가 나갔어요. 꼭 쪽지 때문은 아니겠지만, 교사들 호응이 갈리는 형국이에요.”
“흐음, 무슨 말로 구슬렸는데?”
“선생님, 학교를 지켜주십시오 라고 시작하면서……”
미연이 읽어 내려간 호소문은 꽤 분량이 길었다. 그렇지만 남 팀장이 지긋이 눈을 감고, 때로는 그렇지 그렇지 추임새까지 넣으며 듣는 까닭에 미연은 끝까지 읽어 나갔다.
“선생님, 교사의 권리는 수업의 멈춤이 아니라 어떤 고난 속에서도 교실을 지키는 꿋꿋함 속에서 지켜집니다……부디 헌법에서 보장하는 학습권과 공교육의 책임을 다해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 대목에서 남 팀장은 손을 들어 미연을 제지했다.
“미연 씨, 미연 씨도 나중에 팀장으로 나가야 하니까 내가 챙겨주는 차원에서 하는 말이야. 퀴즈를 한 번 맞춰봐.”
미연은 담임 선생에게 꼭 찍혀서 심화 수학 문제를 칠판 앞에 나와 푸는 학생의 표정이 되었다. 아무 대답도 않고 있자 팀장은 제멋대로 말을 이었다.
“교육감은 집회 참여 자제 메시지를 오늘 보냈단 말이지. 사실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 제안은 열흘 전부터 있었거든. 왜 그랬을까.”
“워딩을 고르려고 그런 것이 아닐까요.”
“아니아니……”
남팀장은 성마르게 검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원론적으로는 맞는 설명이야.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해. 교육감 측에서 기다린 거라고. 교육부의 토스를.”
“토스요?”
“그렇지, 토스. 교육감 혼자서는 스파이크를 못 꽂아. 학교 반발이 부담스럽거든. 잘 봐. 그저께 우리 회사에서 뭘 보냈지?”
대외적으로 교육부 빅데이터 팀의 이름은 그냥 회사다. 교육부 장관 직속으로 배정되어 있지만 공식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누가 소속되어 있는가는 대외비다.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장관에게 조언을 하는 집단으로서 짙은 그림자 속에 철저히 가려져 있다. 미연도 사원으로 소개될 뿐이다.
-교원은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은 한 수업일에는 휴가를 사용할 수 없다.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
미연은 9월 4일을 학교의 재량휴업일로 지정하지 못 하게 한 공문을 떠올렸다. 으레 교육부에서 제작하는 문서와 별 다를 바 없는 경고성, 내재적으로는 협박을 담고 있는 문서다. 남 팀장은 그것을 토스로 인식하고 있었다.
“교육감은 명분이 필요하니까 위에서 날아오는 공문을 기다린 거야. 지금처럼 교권이다 뭐다 시끄러운 때에는 그럴싸한 근거가 없으면 교사들이 막 난리치거든.”
이 사람은 살아있는 마키아벨리다. 오로지 정치적 역학관계로만 세상을 판단하는 자다. 미연은 본능적으로 혐오감을 느꼈다. 그러나 고개는 저절로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교사를 장기판의 말로 인식하고, 효율적으로 다스려야 한다. 관료로서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리스트업 해 두고, 여러 시나리오를 제작하여 그에 맞는 카드를 대응책으로 갖추어 놓아야 한다. 이것이 중앙부처 공무원이 갖추어야 할 DNA였다.
왕의 DNA와 개돼지의 DNA는 엄연히 다르다. 개돼지에게는 개돼지의 생존 방식이 있고, 왕에게는 왕의 법도가 있다. 관료는 당연히 왕의 DNA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나중에 아이를 낳게 되더라도 특별하게 키울 것이다. 미연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다음 공문은 초안을 어떻게 잡으면 좋을까요?”
미연은 두번째 경고장을 날리는 상상을 했다. 앞선 공문과 내용은 비슷하지만 말투는 강하게. 중요한 이야기는 여러 번 반복해도 무방하다. 그렇지만 주말 마다 모여 시위를 여는 선생들의 성난 불길을 생각하면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선 밑밥을 깔자.”
남 팀장은 전화기를 들었다.
“아이고 최 기자님, 잘 지내죠? 저번에 쓴 사교육 카르텔과 결탁한 교사 기사 잘 봤어요. 와꾸 좋던데 허허허.”
남 팀장은 기자 다섯 명에게 언제 밥이라도 먹자며 연달아 전화를 돌렸다. 밑밥이 목구멍으로 넘기는 밥은 아닐 것이다. 어디 감히 교사가 권리를 찾으려 드나, 고분고분 윗선의 지시를 따라야지. 교사 집단이 알고 보면 얼마나 수준 미달이고 구린지 근거를 보태는 밑밥이었다.
4학년 짜리에게 장풍을 날리는 폭력 교사, 입시 학원에 문제 팔아먹고 3억 챙겨 먹은 교사, 제자와 성추문을 일으킨 교사 사건 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조금씩 다른 분위기로 기사가 나갔다. 오래되어 잊을 만한 사건들도 한 번씩 끄집어 올려졌다.
미연은 기사 밑밥 이후의 여론 지형을 상상 할 수 있었다. 3년 간 지켜보아 온 패턴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교사를 꾸준히 때리면, 특히 수업을 거부하는 행위로 직업윤리를 명분 삼아 때리면 반드시 교사는 여론에서 밀리게 되어 있다.
“팀장님 다음 공문은 집단행동하는 교사에 대한 징계를 좀 더 세게 포함해 보겠습니다.”
“막타는?”
“네? 막타…요?”
“내일까지 잘 생각해 봐.”
남 팀장은 사우나에 갔다 오겠다고 기지개를 켜며 나갔다. 미연의 스마트 패드에는 아까부터 알람이 울리며 메시지가 쌓이고 있었다.
- 빅데이터 분석 결과, 공교육 멈춤의 날 참여도 20% 미만으로 분석됨. 강행 지도부 명단 확보함.
아직 물이 끓지 않았다. 냄비 속 개구리는 물이 뜨거워지는 줄도 모르고 서서히 죽는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여론이 기울면 주도자를 중징계 먹인다. 막타의 핵심은 9월 4일 월요일 연가 상신에 결재를 해준 교장까지 연좌제로 묶는 것이다. 선생들이 거리에 발을 디디기 전에 교내 싸움으로 동력을 끊어놓아야만 한다.
수업을 포기한 교사, 아이들을 외면한 교사! 이 필살기는 언제나 통한다. 교사에게 교실과 학생은 자식 같은 것이다. 자식을 버린 부모는 힘을 잃는다.
미연은 막타 폴더에 두 가지 시나리오에 대비한 공문 초안 두 개를 작성했다. 회사의 불은 밤늦게까지 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