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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Feb 06. 2024

7번 국도 투어

강원도교육청블로그 나눗쌤 2월 원고

나는 교사이지만 집에서는 평범한 10살, 8살 두 아이의 아빠다. 말하자면 교사이자 학부모인 셈이다. 내가 학부모님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시기는 방학이다. 학교보다는 집에 머물며 나는 분필 대신 설거지를 하는 날이 많아졌다. 매일 맛나게 먹었던 급식은 나와 아내가 직접 감당해야 하는 삼시 세끼로 변했다. 학교에서 알아서 데려가주던 현장체험학습과 교실 수업은 오롯이 가족의 몫으로 남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방학이면 거의 수업을 준비하는 기분으로 가정체험학습을 계획한다. 집에도 책과 문제집이 있지만 언제까지나 방 안에서 머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여느 초등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집 두 녀석들도 집에 가만히 있는 것을 힘들어한다. 짧게라도 바깥공기를 쐬며 기분 전환을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 마치 체육 수업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은 우리 반 학생들처럼.


오늘은 방학을 맞이하여 방바닥과 한 몸이 되어가는 가족들을 위하여 우리 집의 '7번 국도 가족체험학습 코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7번 국도라는 이름을 굳이 붙인 것은 단순히 내가 강릉에 살고 있고 주로 7번 국도를 따라 자주 이동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소개할 장소들은 두 가지 기준에 따라 추렸다.


첫째, 공공시설이다. 방학은 길다. 좋은 사립시설들이 많지만 매번 이용하기에는 비용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무료 또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공공시설로 소개 범위를 제한하였다.


둘째, 자녀의 나이를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중학년까지로 설정했다. 우리 집 꼬맹이들이 해당 나이인 것도 있지만, 초등 고학년이 넘어가면 매일 부모님과 동행하는 것을 꺼려한다. 이번 방학 특선 가정체험학습 코스는 어디까지나 일상적인 느낌으로 부모님과 함께 다니는 나이대에 초점을 맞췄다.


사계절이 아름다운 죽서루 ⓒ삼척시청 홈페이지 갈무리

가장 먼저 소개할 도시는 삼척이다. 삼척은 강원도에 있는 7번 국도의 최남단에 속한다. 나는 8년 간 도계초, 정라초, 진주초 세 학교에 근무하며 산과 시내, 바다 일대를 두루 경험하였다. 좋은 곳이 정말 많지만 삼척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은 환선굴과 대금굴이라고 생각한다. 초대형 사이즈의 석회 동굴은 기타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진귀한 자원이다. 어른 4500원, 어린이 20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충분히 지불할 가지가 있다.


환선굴 모노레일 ⓒ삼척시청 홈페이지 갈무리


삼척의 두 번째 추천 장소는 죽서루와 그 일대에 위치한 어린이과학놀이체험관이다. 최근 무려 '국보'로 지정된 죽서루는 단원 김홍도의 그림에 등장하기도 했다. 죽서루에서 바라보는 오십천의 풍경은 매우 아름답다. 산책로도 잘 조성되어 있어 걷기에도 그저 그만이다. 죽서루의 특장점은 이 일대가 무슨 문화 체험 지역처럼 시립박물관, 착한 가격의 작은 영화관, 어린이과학놀이체험관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는 점이다. 영동지역 맘카페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어린이과학놀이체험관은 예약이 필수니 참고해서 이용하길 바란다.


도째비골의 해상전망대 ⓒ동해시청 홈페이지 갈무리


다음 도시는 동해다. 동해는 삼척의 북쪽에 있으며 내가 강릉으로 이사오기 전 두 아이를 낳고 길렀던 도시이기도 하다. 동해시의 첫 번째 공간은 묵호항 주변이다. 묵호 등대를 중심으로 논골담길이라 불리는 벽화마을이 있다. 가파른 경사를 따라 골목길을 가로지르며 걷다 보면 어느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나 싶어 고개를 돌리면 그대로 망망대해가 눈앞에 펼쳐진다. 거기다 근래에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라는 테마공원이 조성되었다. 해상 전망대와 하늘자전거, 거대 미끄럼틀 같은 어트랙션이 있어 심심하지 않다. 먹거리도 흔하다.


무릉별유천지의 아름다운 전경 ⓒ동해시청 홈페이지 갈무리


동해의 두 번째 공간은 무릉별유천지다. 옛 석회석 광산을 테마공원으로 개발했다. 도째비골도 그렇고 동해시는 체험형 테마공원 사업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 여기에서는 조금 더 본격적인 체험이 가능하다. 입장료와 별도로 이용요금이 붙는 스카이글라이더, 알파인코스터, 오프로드 루지, 롤러코스터형 집라인을 즐길 수 있다. 그렇지만 그냥 소액의 입장료만 내고 들어와도 손해 보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두 개의 인공호수를 낀 산악 풍경이 근사하고, 넓게 펼쳐진 라벤더밭은 편안함을 준다. 무료로 운행되는 '무릉별열차'가 있으므로 경관을 감상하며 한 바퀴 둘러봐도 좋다.


오죽헌 시립박물관 홈페이지에서 현재 전시 및 행사를 확인할 수 있다 ⓒ강릉시청 홈페이지 갈무리


이제는 강릉이다. 강릉은 강원도 영동 지역을 대표하는 도시이자 오랜 역사와 문화유산을 자랑하는 곳이다. 찾아갈 곳이 커피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방학 기간 자녀교육 차원에서 좋은 공공시설을 딱 두 군데만 압축하고자 한다. 첫째는 오죽헌과 한옥마을이다. 오죽헌을 달랑 집 한 채라고 오해하고 계신 분도 있는데 사실상 여기는 종합문화재 시설에 가깝다. 공원처럼 단장된 넓은 부지 안에 오죽헌은 물론 강릉시립박물관과 율곡인성교육관, 화폐전시관이 알차게 들어차 있다. 전시의 수준도 상당하다. 미디어 아트, 나만의 지폐 만들기, 오토마타, 반응형 게임 등 아이들의 도파민 시스템을 자극할 요소들이 충분히 있다.


올림픽 파크 일대는 여러 시설이 밀집되어 있어 이용하기 편하다 ⓒ강릉시청 홈페이지 갈무리


다음 코스는 올림픽 파크와 아트센터 일대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과 2024 청소년 동계올림픽을 주최한 장소답게 올림픽 파크에서는 동계 스포츠를 만끽할 수 있다. 아이스 스케이트와 컬링은 물론 강습을 등록하면 피겨와 쇼트트랙도 전문 코치에게 배우게 된다. 올림픽을 주제로 꾸며진 강릉올림픽 뮤지엄은 무료로 운영되며 역시 공짜로 운행되는 자율운행자동차 정류장도 뮤지엄 코앞이다. 문화예술을 사랑한다면 아트센터와 문화예술관이 제격이다. K리그 경기가 열리는 강릉종합운동장과 붙어있는 아트센터에서는 다채로운 전시가 거의 상시 진행 중이다. 사임당 홀에서 열리는 연주도 굉장히 수준 높아서 조성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세계 정상급 아티스트들을 만나볼 수 있다.


박물관 방문 전 쌍호 둘레길을 걸어보자 ⓒ양양군청 홈페이지 갈무리


강릉에서 북쪽으로 향하면 내가 근무하는 곳이기도 한 '양양군'에 도달한다. 양양은 서핑의 성지답게 무수히 아름다운 바다가 끝없이 이어져 있다. 남애, 죽도, 인구, 기사문, 하조대, 동호, 낙산, 물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바다가 고유한 매력을 지닌다. 그러나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는 겨울방학에는 아이와 함께 하기에 다소 추울 수 있다. 이럴 때 우리 가족은 오산리 선사유적박물관을 찾는다.


겨울철 양양의 메인 실내 코스라 할 수 있는 선사유적박물관은 호수인 쌍호를 끼고 있어 평화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주차장에서 바로 건물로 입장하지 말고 쌍호 탐방 데크를 지나 보자. 여유롭게 걸어도 십오 분이 걸리지 않는다. 쌍호의 갈대숲에서는 쇠박새, 붉은머리오목눈이, 황조롱이 등 여러 새들을 관찰할 수 있다. 박물관 외부에는 선사 시대의 움집이 여럿 재현되어 있고 안에 들어가는 것도 가능하다.


오산리 유적은 사회 교과서에도 등장할 만큼 고고학적으로 중요한데, 양양군 측에서 상당한 비용을 들여 고대인들의 생활을 생생히 체감할 수 있도록 박물관을 구성했다. 주말에는 예약제로 운영하는 무료 공예품 만들기 프로그램이 있으며 담당 강사가 친절하게 역사적 지식을 곁들여 설명해 준다. 전시관 도슨트 프로그램도 있으므로 시간을 맞춰 방문하면 겨울철 한 나절을 아이와 함께 보내기에 그저 그만이다.


인공암벽 등반이 가능한 국립산악박물관 ⓒ국립산악박물관 블로그 갈무리


마지막으로 소개할 도시는 속초다. 지도로 보는 속초는 자그마하지만 산과 호수, 바다가 두루 있어 알차다. 한 쌍의 보석 같은 청초호와 영랑호는 말할 것도 없고 멀리서 보아도 위용이 느껴지는 울산바위의 기상은 대단하다. 속초는 위도가 높아 같은 날이라도 동해, 삼척보다 더 춥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기온이 떨어져 야외 활동이 곤란해지면 속초시립박물관과 국립산악박물관을 찾는다.


두 박물관을 함께 언급하는 까닭은 바로 옆에 붙어있기 때문이다. 우선 국립산악박물관부터 들어가 보자. 실내 무료 클라이밍이 가능해서 초등생 이하 자녀를 키우는 분들에게 인기가 높다. 가상현실 장비를 쓰고 산꼭대기의 풍경을 볼 수도 있고, 클라이밍 기계로 어린이가 직접 연습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우리나라 등산인들의 역사와 업적, 장비들을 전시로 만나볼 수 있고 옥상에는 전망대가 있다.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설악산을 한눈에 담는 기쁨이 크다.


매우 역동적인 상모판 공연 적어도 한 번은 꼭 볼만 하다. ⓒ속초시립박물관 홈페이지 갈무리


산악박물관 브로셔에 방문 확인용 도장을 찍고 바로 옆의 속초시립박물관으로 이동해 보자. 브로셔를 제출하면 입장료를 할인해 준다. 할인가로 4인 가족 기준 오천 원도 하지 않는다. 속초는 발해의 최남단 영토였던 만큼 발해역사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한국전쟁의 아픔을 담은 실향민문화촌이 있어 매우 이색적이다. 실감영상실에서는 영상을 시청하며 스마트패드로 퀴즈를 풀 수 있는 관람객 참여형 감상이 가능해서 재미있다. 요즘은 역시 참여와 능동성이 대세인 것 같다.


속초시립박물관 전시도 훌륭하다. 각종 민속놀이가 준비되어 있고, 옛날 의상이나 신발을 신어볼 수도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작 키트 만들기도 다섯 가지 넘게 있어 실내에서 차분히 머물기에 알맞다.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은 마음 푹 놓을 수 있다. 그렇지만 속초시립박물관의 백미는 단연 풍물단의 야외 공연이다.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사물놀이와 상모판 공연이 번갈아 진행된다.


나는 상모판 공연만 보았는데, 솔직히 매우 놀랐다. 마을 축제에서 어르신들이 동아리 형태로 부담 없이 보여주는 공연이라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상모 돌리기와 원반 돌리기 같은 기예가 신명 나는 장단에 맞춰 계속되는 사이 나는 끊임없이 손뼉을 치고 추임새를 넣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서 봐도 좋을 만큼 잘했다. 빙글빙글 온몸을 팽이처럼 비틀며 상모가 돌아가는 장관에 관객들 모두가 물개가 되어 박수를 쳤다. 속초시립박물관을 방문할 예정이라면 공연시간을 참조하여 방문하기를 강력히 간곡히 추천한다.


경포 호수의 해질녘


삼척에서 속초까지 7번 국도 겨울방학 가정체험학습 코스를 살펴보았다. 숨이 막힐 듯 빼곡히 적은 것 같은데 글에 넣지 못한 장소들이 눈에 밟힌다. 그래도 모든 것을 다룰 수는 없다. 강원도는 숨겨진 아름다움으로 가득하고 여기에 없는 곳을 찾아내는 재미도 상당할 것이다.


나는 어디든 좋은 장소가 나오면 다음 학년도 현장체험학습 코스와 연결 짓는 직업병 교사다. 그렇지만 가정에서 아빠로서 아이들과 함께 갔을 때 느끼게 되는 것들은 또 달랐다. 강원의 겨울은 순백하고 청결하다. 나뭇잎이 떨어진 탓에 새도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고, 산의 실루엣도 차분하고 선명히 드러나 보인다.


눈 내린 날의 풍경은 고요한 명상의 세상에 발을 디딘 듯 잠잠하다. 이런 땅에 살아갈 수 있는 우리의 인생이 축복받은 것은 아닐까. 새 학기를 앞두고 있는 2월, 새 봄이 오기 전에 가족들과 겨울의 향기와 정취를 경험해 보는 건 어떨까. 다행스럽게도 7번 국도 라인에는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때라도 가족과 느긋한 오후를 보내기에 괜찮은 곳들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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