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법 개정이 놓치고 있는 노동, 환경 문제들
맞벌이 두 자녀인 우리 가족이 '새벽 배송'이 안 되는 지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 깨달았다. 지난 1월 24일, 장인어른 생신을 맞아 온 가족이 강릉에 모였다. 장모님은 묵호항 어판장에서 직접 홍게를 사다가 쪄주셨다. 게 다리살을 열심히 발라먹고 나자 몸통이 남았다. 요리 솜씨가 좋은 처형이 급히 스마트폰을 들었다. 얼굴에 기대감이 잠시 감돌다가 무슨 까닭인지 시무룩해졌다.
"내일 아침에 날치알 넣어서 게살 볶음밥 해주려고 했는데 강릉은 새벽배송 안 되네."
"지금은 밤이라서 마트도 문 닫았을 텐데."
"애 키우면서 새벽배송 필수인데, 안 불편해?"
"아, 그런가..."
우리 부부는 결혼 이후 쭉 동해시와 강릉시에서 살았기에 새벽 배송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말을 들어보니 수도권에서는 '새벽 배송'이 필수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지는 듯했다. 맞벌이에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는 더욱 그랬다.
다음날 아침, 처형은 정말 맛있는 게살볶음밥을 만들어 주었다. 날치알이 없어도 무한대로 먹을 수 있는 맛이었다. 김가루를 솔솔 뿌린 볶음밥을 떠먹으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가족은 집밥 메뉴를 하루 전날 계획하거나 소규모로 주문한 적이 거의 없었다.
지역에 하나씩 있는 이마트나 홈플러스도 집에서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대부분 걸어서 3분 거리의 하나로마트나 동네 상가를 이용했다. 장을 보면 최소 세끼 이상의 식재료를 담아왔다. 우리에게는 아예 새벽배송이라는 선택지 자체가 없었으므로 '미리 넉넉히 사둔다'는 방식에 완전히 적응해 있었다. 그러던 중 어쩌면 강릉에서도 새벽배송이 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렸다.
혹시 우리집에도 새벽배송이? 반가움보다 앞선 것은
최근 여당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은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가능하게 하려는 조치다. 기존의 규제가 쿠팡이나 컬리 같은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만 키웠다는 비판의 목소리에 반응한 결과다. 강릉처럼 '새벽배송'이 불가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도 있다. 신생아를 키우거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에게는 희소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날치알 넣은 게살볶음밥이 먹고 싶을 때 밤에라도 시키면 되는 거네?"
나와 아내는 새벽배송이라는 말에 '날치알'이 우선 퍼뜩 떠올랐다. 하지만 그 밖의 큰 변화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지금껏 새벽배송 없이도 두 아이를 초등학교 5학년, 3학년까지 무사히 키워냈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야간에 응급실은 몇 번 가보았어도, 새벽배송이 되지 않아 생존에 위협을 느꼈던 적은 없었다.
더구나 지난 몇 년간 새벽 배송을 하는 배달 기사의 부고 뉴스를 꾸준히 접해왔다. '유통법'이 개정되어 새벽배송 서비스 시장이 커지면, 관련 사고가 더 자주 발생하지 않을까. 야간 및 심야 근무가 노동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는 다양한 기관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가령, 2017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발행한 '야간근무자의 수면장애 실태 및 관리방안'에 따르면 야간 근무 근로자는 수면장애를 흔하게 겪는다. 특히 교대근무 수면장애는 우울과 불안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국제암연구소의 2020년 자료 'IARC 모노그래프 124권: 야간근무'에서도 야간 근무를 "인간에게 발암성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분류하고 있다(그룹 2A).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배송의 자유'가 아니라
쓰레기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 가족은 이미 '편리함'이 '불편함'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2020년 코로나19가 유행할 무렵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높아졌을 때, 우리 가족은 저장용기를 들고 가 김밥이나 아이스크림을 담아 오고는 했다. 그러나 가끔은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 설렁탕이나 순한 간장맛 찜닭이 주메뉴였다. 앱으로 주문한 설렁탕은 삼십 분 만에 우리 집 현관 앞에 도착했다. 식사는 금방 끝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플라스틱 쓰레기와 뒤처리라는 엄청난 과업이 남아있었다.
설렁탕을 시키면 설렁탕만 오는 것이 아니다. 깍두기와 공깃밥, 풋고추와 쌈장까지 크고 작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온다. 분리수거를 하려면 음식물이 남아있지 않도록 잘 씻어야 한다. 그런데 설렁탕처럼 기름진 음식은 그릇 씻기도 힘들다. 설거지용 비누로 거품을 내어 두 번씩 플라스틱 용기를 닦고 있노라면 '배달음식이 진짜 편하긴 한 건가'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코로나 시절의 아파트 재활용품 수거장에는 플라스틱 쓰레기와 스티로폼 상자가 그 어느 때보다 많았다. 너도나도 신선 식품이나 냉장, 냉동식품을 시켜 먹을 때이니 그럴 수밖에. 그래서인지 새벽배송이 된다는 소리를 들으면 나는 조건반사적으로 반투명 플라스틱통과 하얀 스티로폼 가루가 떠오른다.
아직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새벽배송은 편리할 것이다. 갑자기 딸기가 먹고 싶어 진다든지, 시래기 해장국이 급히 당길 수도 있지 않은가. 극강의 편리함에 푹 빠지면 생활의 필수 서비스처럼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새벽배송을 이용한 만큼 나는 동네에서 장을 덜 보게 될 것이다. 반찬가게도 덜 가고, 과일가게 방문도 뜸해지지 않을까. 대형마트 새벽배송 시장이 열리면 소상공인 분들은 타격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새벽배송을 쓰고 있는 사람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편리한 서비스가 합법적으로 존재하는데 거부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우리 가족도 다만 새벽배송이 안 되는 지방에 살아서 지레 거부감이 드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새벽배송 없이도 두 아이를 키워냈기에 적어도 새벽배송을 '필수 인프라'로 여기지는 않게 되었다.
쿠팡 독점을 막는 방식이 꼭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것이어야 하는가. 나는 동네에서 장보기를 좋아한다. 현관 앞에 아침 일찍 닭고기와 우유가 놓여있는 풍경은 보이지 않는 사회적 비용을 치렀다는 뜻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배송의 자유’가 아니라, 편리함을 공정하게 나누는 규칙과 책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