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받지 못하는 가운데것들에 대하여
감자전 인생 2막
초여름 햇감자를 씻어 온몸 치덕치덕
발린 흙덩이를 흘려보낸다
갈라지고 기미핀 껍질 감자칼로
벗겨버리고 사정없이 강판질 해대는데
감자는 부끄러울 새도 없이 기름 두른
철판위서 알몸으로 지옥불 견딘다
불의 고신 받으며 단련된 감자는 테두리부터
단단해 지는데 순박한 여린 마음은 가슴에 묻고
세상 닮아 거친 가장자리를 갖는다
인간들은 바삭거리는 테두리를 씹어대고 말랑한 속살은 무관심으로 식는다
접시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말랑하고 순진한
덩어리들을 바라본다
이제 괜찮단다 지킬만큼 지켰고
버틸만큼 버텼봤으니 후회 없단다
다시 달궈진 쇠위로 보드라운 덩어리를
가져가 지진다
잘게 쪼개진 속살들은
모두 바삭해진다
이제 젓가락에 먹힌다
하얗고 깨끗했던
꿈들을
누렇게 익은 낯짝으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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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강원도는 감자가 맛있습니다. 여름이 막 오려할 적에 고운 흙 털어 햇감자를 캤습니다. 상자에 담아놓으니 동글동글 환한 모양이 보름달 같았습니다. 서울 사는 여동생이 놀러온다기에 감자전 해준다 하였더니 수화기 넘어 목소리가 밝았습니다. 동생이 도착한 날, 햇감자를 씻고 갈아 전을 구웠습니다.
"너무 맛있어. 감자랑 소금만 넣었는데 이런 맛이 나?"
호들갑스런 칭찬이 싫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삭한 가장자리만 인기 좋게 팔렸습니다. 안쪽 은 부드럽고 촉촉해서 나름의 식감이 괜찮은데 도시 손님 입맛에는 맞지 않았나 봅니다. 접시 위에 덩그러니 남은 안 바삭한 덩어리를 잘라 다시 구웠습니다. 뒤집개로 꾹꾹 눌러 앞뒤 고소하게 지졌습니다.
'와 감자칩같아. 아까 남은 걸로 한거야?'
젓가락들이 앞 다투어 달려듭니다. 배부르다며 물러앉은 아내도 합세합니다. 세상에 그냥 버릴 건 없습니다. 감자전 인생 2막. 다시 구운 전을 먹으며 인생의 묘미를 맛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