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교육 뉴스레터 37호 에세이
삼십 쩜 구팔 킬로미터(30.98km)
두영이(가명)는 이 먼 거리를 뚫고 영재교실에 왔다. 두영이는 6학년인데 올해 신규로 영재반에 등록한 친구였다. 바다풍광이 아름다운 임원항에서, 시내에 있는 교육청 영재교실을 다니며 그는 한 번도 지각하지 않았다. 두영이보다 멀리서 오는 사람은 교사인 나 밖에 없었다. 근무지인 도계초등학교에서 교육청까지 거리는 33.92.km로 자동차를 이용하면 50분이 걸린다. 음악과 라디오가 없으면 무료한 길을 다니며 생각했다.
‘두영이는 어떻게 왔을까? 그 부모님은 어떤 분이실까?’
초등 과학 영재반에는 스무 명의 아이들이 소속되어 있었는데, 두영이를 제외한 열 아홉 명은 모두 교육청 주변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시내 학교 애들이 유달리 똑똑해서가 아니라, 농어촌 지역에서 매주 영재 수업에 참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삼척은 관할구역이 매우 넓어, 농어촌 지역의 경우 부모님이 자녀를 태워주고 집에 갔다가, 다시 태우러 오기가 곤란하였다. 그 말인즉슨, 두영이의 부모님 중 한 분이 매주 엄청난 수고를 해주신다는 의미였다.
불편한 통학 환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영이는 항상 생기 있고 밝은 모습이었다. 첫날 소개할 때 보니 새로운 친구를 만나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빈말이 아니었다. 임원초는 전교생이 35명밖에 되지 않고, 6학년이 7명이었다. 6년 내내 자기들끼리 속닥속닥 붙어 지내다가 여러 학교에서 온 친구와 동생들 19명을 만나게 되었으니 얼마나 신났을까? 사춘기 남자아이답지 않게 붙임성 있는 두영이의 성격은 무리 중 단연 돋보였다.
약간 어색한 시작. 그래도 괜찮아
올해 내가 기획한 과학 프로젝트는 ‘콜라, 그 달콤한 유혹’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콜라에 여러 물질 반응시키기, 콜라 속 기체 추출하고 성질 알아보기, 콜라의 산성도 측정, 콜라 속 카페인의 효능 알아보기 등의 활동이 포함되어 있었다. 프로젝트 초반에, 콜라에 물질 반응시키기 실험을 할 무렵이었다.
설탕, 소금, 아이스크림, 건포도, 모래, 얼음을 주고 한 물질씩 콜라와 반응 시키기가 주요 활동이었다. 실험에 앞서 미리 결과를 예상하여 적어보는 시간이 있었다. 시원하게 식힌 콜라와 각종 재료들이 배급되니 아이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음식으로 실험을 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워 보였나 보다. 들뜬 학생들을 진정시키고, 직접 반응시키기에 앞서 모둠별 예상을 적어보라고 하였다.
두영이는 1모둠에 속했는데, 두영이를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은 이미 작년부터 알고지낸 사이였다. 그래서인지 서로 교재를 돌려보며 예상값을 공유하고, 예상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시끌벅적 유쾌하게 참여하는 아이들과 대비되어 두영이는 약간 쓸쓸해보였다. 친한 친구가 없었던 까닭이었다. 충분히 친해질 시간이 없었으므로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드디어, 반응실험 시작! 모둠별로 콜라에 물질을 넣어보라고 했더니 아까부터 주도권을 잡고 있던 친구 3명이 재료를 사용해 적극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두영이는 콜라 거품이 보글거리는 장면을 관찰하며 현상을 묵묵히 기록했다. 반짝이는 눈빛과 신중한 손동작이 인상 깊었다.
‘저렇게 과학을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데 얼른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겠다.’
계획을 급변경했다. 본래 활동 계획은 개인단위로 반응 결과 정리하고, 전체 공유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모둠별 발표로 변경하였다. 또 한 사람만 발표를 독점할 수 없도록 하여 모든 모둠원들이 고루 참여하게끔 하였다. 다른 모둠에게 발표할 내용과 분량을 조절하느라 아이들은 대화하기 시작했다. 짧막한 리허설을 하며 키득거리기도 하고, 청중이 되어 고칠 점을 짚어주기도 하였다. 1모둠 발표자 중 한 명이 되어 일어선 두영이의 표정은 아까보다 한결 환했다.
그 수업 이후 ‘콜라, 그 달콤한 유혹’ 프로젝트의 모든 활동은 모둠 단위로 진행되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과업을 부여하여 협력하도록 의도했다. 두영이 뿐 아니라 다른 내성적인 친구들의 참여도를 높이고 소속감을 길러주기 위함이었다. 변화는 빨리 나타났다. 두영이는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했다.
이산화탄소 추출 실험에서 수조 안에 손을 넣어 고무관에서 나오는 기체를 모았다. 옷에 물이 튀고, 콜라 때문에 끈적거린다고 다른 이들이 꺼리는 역할이었다. 카페인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 알아보기 실험에서는 추가로 녹차 마시기에 지원하였다. 녹차를 마시기 전 후의 맥박수를 측정하여 카페인이 각성작용을 하리라는 가설을 검증하는 활동이었다. 이미 학생들이 콜라를 마신 터라 배가 부르기도 하고 텁텁한 녹차 맛을 선호하지 않아 지원자가 적었다. 두영이는 이 활동에도 참여했다.
봉사정신 강하고, 다른 사람 잘 배려하는 두영이를 다른 친구들이 좋아했음은 물론이다. 매주 화요일 오후 6시 20분, 교육청에서 집까지 50분이나 걸리는 거리를 되돌아가며 두영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기분이 들까? 친구들과 즐겁게 수업에 참여한 날은 가슴 벅차고, 유쾌하지 않았을까?
도시에 살지 않아도 괜찮다. 파도 소리 아름답고, 별이 반짝이는 시골에 살아도 과학자의 꿈을 꾸고, 함께 공부하는 행복을 느끼는 아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