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균 지음 / 지식프레임
베테랑 교사의 교실에 가면 여유가 흐른다. 별 말 하지 않는대도 아이들도 잘 따르고 심지어 관계도 좋다. 수업도 사정은 마찬가지 인데 너무 애쓰지 않으면서도 수업의 목표를 놓치지 않는다. 가끔 잘 가르친다, 애들 잘 다룬다는 선생님을 만나거나 수업 장면을 보면 늘 발견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오 대단한대? 뭔가 있긴 있네. 학급살이가 이렇게 잘 풀리면 선생할 맛 나겠다.'
매번 감탄만하고 다시 돌아온 나의 교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래 이 정도면 꽤 괜찮아. 나도 나름 열심히 사는 놈이잖아하고 대충 위안 삼고 살았다. 그런데 이런 나의 일상을 불편하게 만드는 블로그가 하나 있었다. 김백균 선생님이 맨날 수업 기록하고 올리는 네이버 블로그 'BK의 스마트한 교단 일기'였다. 대충 훑어 읽으면 뭐 이런 평범한 소재들을 정리한다고(포스트잇, 쌓기나무, 분필같이 특별할 것 없는 도구를 자주 씀) 저녁 시간을 쓰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밥 먹고 배깔고 쉬는데 같이 좀 편하게 살지라는 하향평준화적 바람도 있었다.
사실, 그런 생각이 들 때부터 나는 이미 질투심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관심도 없고 무의미한 일이었다면 그냥 X버튼 눌러 딴 짓 하지, 자기변명을 하지 않았을게다. 어쨌든 뭔가 불편한데 안 보기는 약간 아쉬운, 자극제로 삼아 수업 연구의 동력이 되긴 한데 조금은 귀찮은 상태로 꿋꿋이 포스팅을 구독했다. 웹툰도 끝까지 잘 못보는 양반이 2년 넘게 꾸준히 포스팅 봤으니 질은 썩 괜찮다는 증거겠다.
우공이 산을 옮기듯 3년의 기록을 묶어 책이 나왔다. 똥봉투에 담겨 온 노란 책은 제목이 'BK선생님의 쉬운 수업 레시피'다. '선생님을 본 것은 나의 행운'이라는 간질거리는 멘트가 친필 싸인으로 따라 붙었다. 남자한테 이런 말을 듣는 게 드물지만 싫지 않다(?). 개인적으로 연구보고서 틀 베끼기, 주기적 글쓰기, 에듀콜라 주선까지 BK형한테 빚이 많았다. 이번에 책 선물까지 받았으니 부채가 더 늘었다.
책은 잘 빠졌다. 퇴고 다섯 번 했다고 저자가 밝혔는데 괜한 소리가 아니다. 블로그에 있는 포스팅을 간추려 정수만 옮겼는데 문장이 훨씬 편하게 읽힌다. 여담이지만 블로그의 몇몇 포스팅은 일필휘지한 흔적이 있다. 가끔 오타랑 비문이 있다. 메시지는 명확해서 문맥이 흔들리지 않아 무시하는데 어쨌든 책은 매끈하게 다듬었다.
정독하는데 1시간 49분이 걸렸는데 제일 마음에 드는 세 가지만 소개하겠다. 이미 오프라인 발표와 블로그 포스팅으로 접한 내용이라 상당히 익숙하지만 중요한 건 아무리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다.
첫째, 쉬운 수업을 약속한다. 학생, 수업자, 참관자의 입장에서 의미있으면서도 쉬운 수업을 알려준다. 기획-준비-실행으로 구조도 매우 단순한데 교사나 학생이 무리하지 않고 수업에 참여하되 배움의 즐거움과 목표를 놓치지 않는다. Q n A 형식으로 독자들이 궁금해할 점들에 친절히 답해준다.
둘째, 수업 사례가 생생하다. 망한 수업과 흥한 수업을 가감없이 밝히고 있다. 어느 지점에서 실패했고, 예상 밖으로 어떻게 성공했는지 포인트가 선명하다. 수업 방법 안내할 땐 약안 형태로 활동 과정과 사진을 첨부해 이해가 빠르다. 수업 재구성, 프로젝트 수업 등 사례수도 풍부하다.
셋째, 수업 디자인 개념에 집중한다. 수업 계획과 다른 개념이다. 계획이 '어떤 과정으로 진행할 것인가?'에 초점을 둔다면 디자인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학습모형이 아니라 핵심 활동을 중심으로 유동적으로 수업을 이끌어나간다. 쉬운 수업이 되려면 수업 디자인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하다.
나머지는 얘기하자면 너무 길어 이만 간추린다. 리뷰 쓰며 다시 한 번 책을 들추어본다. 역시 굉장하다. 교사가 수업 고민하고 실천한 이야기만 담아도 이렇게 근사한 작품이 나온다. 자기 직업을 노동의 노곤함이나 밥벌이의 지겨움이 아니라 가치 창출의 통로로 삼고있는 그가 새삼 크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