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은 회사원에게 잔인한 한 해라고 했던가. 이번 연도에는 5월에 석가탄신일을 마지막으로 남은 휴일들이 주말에 겹쳐 쉬는 날이 남아있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 프랑스 사람들은 툭하면 휴가를 간다는데 그렇다면 정말 프랑스 사람들은 일을 덜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일을 덜 한다. 물론 업종의 특성마다 다른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대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는 프랑스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대기업에 물류 담당자로 일하고 있다. 여행을 좋아해서 항상 휴가 때마다 어디에 갈지 고민하는데, SNS에 올라오는 여행지 사진을 보면 분명히 휴가 간지 얼마 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금세 또 휴가 사진이 올라온다. 친구한테 ‘휴가 저번에 다 사용한 거 아니야?’ 하고 물으면 친구는 ‘응, 휴가는 그때 썼는데 이번에는 RTT가 남아서 그거 썼어.’라고 답한다. RTT 그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나 또한 쓰고 싶게 만들어진다.
프랑스의 주당 기준 근로시간은 35시간이다. 하루에 7시간 일하는 것이다. 한국의 기준 근로시간이 40시간 인 것에 비하면 5시간 차이 난다. 프랑스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매일 1시간씩 덜 일하는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친구들의 업무시간을 보면 대부분 한국과 동일하게 9시에 출근하여 6시에 퇴근한다. 그럼 모든 프랑스 회사들이 법을 어기고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 바로 RTT개념이 적용되기 때문에다. 만약 계약서상에 기준 근로시간이 35시간이 넘게 된다면 RTT, Réduction du temps de travail 즉 근로시간 단축이 적용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최대 근로시간은 39시간을 넘겨서는 안 된다.
https://www.service-public.fr/particuliers/vosdroits/F34151
근로 계약서상 35시간이 아닌 9시 출근 6시 퇴근하는 프랑스 친구는 보통 일주일에 1시간은 일찍 퇴근하고 (39시간이 최대 근무시간이기 때문에) 이에 더해 추가 근무한 4시간에 대하여, 반차를 추가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https://www.service-public.fr/particuliers/vosdroits/F2258
프랑스에서 법으로 정해진 유급휴가는 한 달에 2.5일, 즉 1년에 30일, 즉 5주이다. 한국이 15일임으로 딱 2배 인 것이다. 주당 근무시간이 39인 사람은, 이 5주 휴가에 추가로 RTT를 적용해 24일의 연차가 더 생긴다.
말 만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나? 10주, 즉 두 달 반이 휴가라니.. 나와 동일한 근무시간을 가진 프랑스 사람은 내가 2주 쉴 때 두 달 반을 쉴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만난 한국인 중에 프랑스에서 온 이유가 기준 근로시간이 35시간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당시 대학생인 나로서는 ‘특이하다’라고만 생각했지 이러한 근로기준법이 나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는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지금은 충분히 이런 이유가 이민을 고려할만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비로소 왜 세계에서 한국사람들이 일을 ‘열심히’ 하기로 유명한지 이해가 된다. 괜스레 배가 아픈 건 기분 탓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