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조형학과를 다니던 나는 막학기가 되고 졸업전시를 준비하던 중 크게 기대해 본 적 없던 대기업 광고대행사 채용전환 인턴에 합격하게 되어 대뜸 모든 수업에 취업계를 제출하고 아트디렉터로써 처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다섯 번의 아이데이션 피티 발표와 두 번의 크리에이트 시험 네 번의 면접이 끝나고서야 두 달 동안의 채용절차가 끝이 났고 결국 최종합격자가 되었지만 회사의 번복으로 억울하게도 최종합격자는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다. 아쉬운 상황이지만 그때의 나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었던 가장 드라마 같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대행사 인턴을 끝으로 자동화 산업 기업에서 먼저 온 입사 제안으로 처음으로 나의 본격적인 디자인 커리어가 시작되었다.
카탈로그 리뉴얼
디자인 팀 비주얼 파트에 소속되어 내가 처음 맡게 된 업무는 카탈로그 리뉴얼 프로젝트였다. 타이포그래피 수업을 듣기 위해 타이포 수업으로 유명한 학교들로 학점교류를 다니기도 했고 대학생이나 직장인을 대상으로 일 년 동안 디자인 과외 수업을 진행했을 만큼 디자인에 대한 애정이 많고 툴을 다루는 데에도 능숙했지만 처음 경험하는 실무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특히 B2B 업계의 산업 회사 디자인은 사람들의 눈에 띄고 심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반적인 디자인과 무척 달랐다. 산업 제품들은 이름부터 생소했고,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작동되는지, 우리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든 제품마다 새로운 공부가 필요했다.
그때부터 나는 제품들을 속성으로 공부하고 스케줄 내에 급급하게 일을 쳐내야 하는 '처리하는' 디자인에 익숙해져 갔다.
제품 브로슈어
제품 브로슈어
업무상 쉬운 일보다는 어려운 일들이 더욱 많았지만 사실은 좋았던 점이 더 많았다. 매년마다 서너 번씩은 레드닷, 핀, IF, GOOD DESIGN 등 세계적인 권위의 국제 어워드에 수상할 만큼 수준 높은 제품디자인에 일조할 수 있었고 분야는 다르지만 다양한 연구원 분들과 함께 지식을 나누며 일할 수 있던 경험은 사실 두 번은 돌아오지 않을 만큼 너무나 값진 경험이었다.
처음 다녔던 직장이지만 정말 묵묵하게 팀을 잘 이끌어주셨던 팀장님과 근무 내내 가벼운 개그와 함께 디자인에 대한 대담을 나누며 생각을 넓힐 수 있게 도와주신 차장님 그리고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기적으로 만나 시시콜콜한 과거 직장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팀원들과 신입연수원 동기들은 지금 나의 최대 자산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하이트진로 캘리 제품 렌더링
두 번째로 이직한 광고대행사에서는 브랜드디자인팀의 3D 디자이너로 합류하게 되었다. 스무 살 이후로 오로지 아트디렉터만을 바라보고 준비했던지라 광고대행사에 디자이너 직무가 있는 것도 3D 디자이너를 채용하는 것도 조금은 아이러니했던 회사였다. B2B 기업과 다르게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디자인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게 무척이나 반가웠지만 두 번째 회사 역시 광고주건을 한시가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디자인 업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많았다.
내가 직접 한 기획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저 예쁘고 자극적인 이미지들만 공장처럼 만들어내는 일보다 브랜드 자산을 스스로 개발하고, 문제를 발견해 소비자들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솔루션을 만드는 ‘해결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하이트진로 캘리 제품 렌더링
대행사 이후에 나는 곧바로 이직이 아닌 충분한 클렌징 기간을 가지기로 선택했다. 시간이 얼마나 들어도 상관없으니 내가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정의하는 것이 앞으로 평생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 더 중요하다고 느꼈다. 일종의 나만의 아이덴티티를 정의하는 일이다.
그렇게 나의 여의도 출근기가 시작되었다. 물론 새로운 회사에 출근하는 것은 아니고, 평일마다 여의도에 있는 북카페에 나가 여유를 가지고 혼자 책을 읽거나 경험 디자인과 관련된 스터디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매일 반나절 이상 카공을 했던 터라 지금 생각해 보면 카페에 꽤나 민폐였을지도 모르지만 좋은 장소에서 보내는 오랜 시간들은 나를 꽤나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자리를 제공해 준 여의도 카페 콤마에게 문득 감사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