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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미 Oct 26. 2023

불안장애에 실직

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44

팬데믹 이전부터 스트레이는 이미 우울증, 불안장애, 이인증으로 힘들고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리고 직장 문제가 스트레이의 정신건강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었다.


팬데믹 이전부터 스트레이의 직장도 이미 불안정한 상태였다. 스트레이가 다니던 음반사는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아도 나름대로 옛날부터 유명한 곳이었다. 그러나 스트레이는 사장이 유능해서 성공한 것이 아니고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사장은 오히려 회사의 운영에 방해만 되었다고 한다. 사장에게 이유도 없이 괴롭힘을 당한 소속 밴드들은 다른 음반사로 옮길 여건이 되자마자 음반사를 옮겼다. 새로운 밴드들은 계약을 꺼렸다. 다른 회사들도 협업을 거부했다.


팬데믹이 일어나기 대략 반년 전 사장은 결국 4천만 달러를 받고 음반사를 팔았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스트레이를 포함한 직원들은 인터넷 뉴스를 보고 처음으로 자신의 직장이 팔렸음을 알게 됐다. 다행히 사장은 직원들을 그대로 남겨 두고 새로운 음반사를 세웠지만, 브랜드 가치를 잃은 회사는 빠르게 기울었다. 그렇게 시작되고 지속된 불안정한 상황은 스트레이의 불안장애가 심해진 원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미국에서 팬데믹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때쯤 사장은 팬데믹 때문에 회사가 어려워졌다는 명분으로 모든 직원의 임금을 25% 삭감했다. 회사는 그전부터 이미 가라앉고 있었기 때문에 팬데믹은 편리한 구실일 뿐이었다. 게다가 사장은 전보다도 더 심하게 직원들을 괴롭히고 모욕했다. 재택근무 때문에 직접 대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어찌나 못살게 굴었는지, 한 여직원은 매일 눈물이 고인 채로 일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새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많은 직원들이 버텨내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직원들이 제 발로 회사를 떠나면 사장에게 훨씬 편리해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장이 일부러 그렇게 행동한 것이라고 스트레이와 동료들은 확신한다. 사장은 정부에서 팬데믹 대책으로 마련한 중소기업 대출을 받은 상태였다. 대출 요건을 지키지 못하면 대출금을 강제 상환해야 하는데, 그 요건 중 하나가 대량해고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폐업을 눈앞에 두고 대량해고를 하지 않는 좋은 방법은 직원들이 스스로 퇴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사장의 의도는 뻔했지만 직원들에게는 대항할 수단이 없었다.


직원들이 충분히 떠났는지, 사장은 늦가을에 폐업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가족 명절인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를 앞둔 최악의 시기였다. 일처리도 마지막 순간까지 깔끔하지 못했다. 모든 집기에 경매 딱지가 붙고 나서도 사장은 한동안 폐업일을 확정하지 않았다. 직원들에게 마지막 출근 날을 공지해 놓고서는, 막상 그 날 아침이 되자 다음날도 출근하라고 통보하는 식이었다.


불안장애가 심해진 상태의 스트레이에게는 지옥 같은 나날들이었다. 불안장애를 가장 악화시키는 것은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곧 실업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만 해도 감당하기 힘든데, 정확히 몇 월 며칠부터 실업자가 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동안의 수입에 비해 저축이 없다시피 한 것도 문제였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그중 하나는 가족이었다. 지난 몇 년 간 스트레이는 집안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사람이었고 가난한 가족들이 기댈 유일한 대상이었다. 특히 어머니는 끝없이 돈을 요구한데다 빌려간 돈을 갚지 않아서 스트레이가 결국 모든 연락을 무시하게 됐을 정도였다. 그러나 어머니와 가까운 사이인 동생마저 무시하지는 못했다. 또 스트레이는 아버지에게 쫓겨나다시피 떠난 새어머니와 배다른 동생들에게도 자진해서 큰돈을 여러 번 보냈다.


그리고 다른 많은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이는 지출을 잘 관리하고 남은 돈은 저축한다는 관념이 부족해 보였다. 미국에는 집세와 연금을 내고 남은 돈은 그때그때 마음 가는 대로 써 버리는 사람이 흔하다고 한다. 게다가 빈곤층에서 방임을 당하며 자란 스트레이는 저축하는 습관을 배울 기회가 더욱 없었다.


스트레이는 계획 없이 돈을 쓰고, 어느 가게를 가든 넉넉하다 못해 넘치게 팁을 주면서 가난하던 시절의 한을 푸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팁을 많이 주는 것은 점원들의 모습에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장 한 푼이 아쉬운 살림에서 손님이 팁을 주지 않으면 속으로 얼마나 실망스러운지, 팁을 후하게 주면 얼마나 기쁘고 고마운지, 스트레이는 경험을 통해 잘 알았다.


우울증과 거기서 비롯되는 술에 대한 의존도 돈이 빠져나가는 구멍이었다. 스트레이는 값싼 술은 마시지 않고 수제 맥주만 찾았기 때문에 지출이 더 컸다. 돈을 잘 벌기 전에는 값싼 술만 마셨기 때문에 지겨워서인지, 마시는 술의 양을 제한해 보려는 나름대로의 시도였는지, 둘 다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또 우울증으로 무기력했던 스트레이는 매일 우버를 타고 출퇴근했고, 매일 저녁을 배달시켜 먹었다. 미국에서는 두 가지 모두 가격이 만만치 않다.


고민하던 스트레이는 연금을 꺼내 쓰기로 했다. 원래 은퇴할 나이가 되기 전에 연금을 출금하면 불이익이 있지만, 팬데믹 부양책의 일환으로 특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불이익이 면제되고 있었다. 회사가 문을 닫아서 실직하게 되면 스트레이도 그 요건을 충족할 수 있었다. 장기적으로 보면 미래에 써야 할 돈을 현재로 당겨오는 것뿐이기는 했지만 스트레이는 당장 돈이 필요했다.


회사가 폐업을 자꾸 미뤘을 뿐 아니라 폐업한 후에도 실수로 잘못된 서류를 주는 바람에 스트레이는 마지막까지 애를 태워야 했다. 게다가 막상 연금을 손에 쥐고 보니, 불이익이 없을 것이라는 원래의 약속과는 달리 이런저런 명목으로 수천 달러가 빠져나간 상태였다. 그래도 목돈은 목돈이었다. 한동안은 집세와 생활비를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상황이 정리되고 나자 스트레이는 정신적으로 탈진하고 말았다. 불안장애가 수그러든 자리는 다시 우울증이 차지했다. 평생 일하고 싶은 곳은 아니었어도 스트레이에게 많은 의미가 있었던 회사가 이제는 완전히 사라졌다. 7년 넘게 몸담았던 일터였다. 넉넉한 돈을 받으며 전문직으로 일했다는 점에서 생애 처음이자 유일하게 좋은 직장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이직을 꿈꾸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회사와의 인연이 끝날 줄은 몰랐고, 그래서 허무했다. 이제 다시는 사장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이 한 가지 위안이었다.


직장이 없는 상태가 된 것 자체도 아주 오랜만이었기 때문에 이상하게 느껴졌다. 2012년 말 시카고에 다시 정착하기로 결정하고 접시닦이부터 시작한 이후로 한 번도 일을 쉬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실업자가 되었다는 사실도 매우 우울했다. 돈이 떨어질 때까지 다시 취업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만약 그렇게 되면 기댈 곳이 없다는 사실도 다시 우울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에 시달리는 상태에서 새 일자리를 구하러 다녀야 한다는 사실도 버거웠다.


스트레이는 한동안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을 만큼 무기력했다. 그래도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했다. 우선 최신 프로그래밍을 조금씩 공부하기 시작했다. 예전 직장에서는 오래된 기술과 낮은 난이도의 업무를 주로 다루느라 새로운 지식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불안과 부정적인 생각이 밀려들 때는 게임을 하며 머리를 비웠다. 예전만큼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인터넷 방송도 다시 시작했다. 마음이 맞아서 계속 연락하고 있던 예전 동료들과, 일주일에 한 번 화상채팅을 통해 던전 앤 드래곤이라는 주사위 게임을 하는 시간도 마련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자전거를 탔다.


술을 완전히 끊어야겠다는 생각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했다. 여덟 살 때 배운 술은 그 후 수많은 상황에서 스트레이의 유일한 안식처가 되었다. 술을 조절하는 일은 오랜 숙제였다. 그러나 스트레이는 자신이 완전히 금주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 왔다. 언젠가는 습관적인 과음에서 벗어나서 건강한 수준으로 적당히 술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실제로 그랬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때가 더 많았다. 이제는 술이 자신에게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통제하기 어려운 위험 요인이고, 그래서 가능한 한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좋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스트레이의 술 문제는 대체로 우울증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우울증이 호전되었을 때는 술을 크게 갈망하지 않았고, 우울증이 심해졌을 때는 자제력을 잃고 계속 마셨다. 근본적인 원인인 우울증을 먼저 치료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스트레이의 경우처럼 만성적이고 심한 우울증은 완치를 기대하기보다는 장기간에 걸쳐 관리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이제는 우울할 때에도 술을 마시지 않는 법을 연습할 때였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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