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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고원의 중심, 마이산(1)

말의 두 귀를 닮았다는 마이산

by 이기행

고즈넉한 고장, 진안고원


전북특별자치도의 진안군 면적은 789㎢로 서울시 면적 605㎢ 보다 훨씬 크다. 그런데 인구는 고작 2만 4여 명 갓 넘는다. 진안군에는 읍이 겨우 하나 있고, 그 읍에 군청과 여러 관공서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렇게 땅은 넓은데 사람은 별로 살지 않는 외진 지역이 전북에 무주군, 장수군 두 곳이 더 있다. 그래서 흔히 전북지역의 외진 골짜기 지역, 무주군, 진안군, 장수군 이 세 지역의 앞글자를 따서 무진장이라 부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무진장(無盡藏)은 한자 뜻 그대로 '다함이 없는 창고'처럼 많다는 뜻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덕이 광대하여 다함이 없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불경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무진장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무진장은 지형적 특징으로는 김제, 익산, 완주 등 호남의 드넓은 평야에 비하여, 무진장은 해발 고도가 제법 높은 고원을 이루어 다른 지역에 비해 선선한 편이며, 겨울에는 전북 대부분 비가 내리면 무진장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 특히 진안지역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사이에 위치하고 고도는 해발 200~300m 내외여서 호남지붕의 지붕이라는 뜻으로 진안고원이라 부른다. 처음 고원이라 하면 강원도 대관령 고원이나 함경도 개마고원처럼 높고 험준한 지형이나 일컫는 말인 줄 알아서 진안고원이라 했을 때, 사람들이 좀 과장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이곳 마이산과 주변을 둘러보니 진안고원이라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진안고원의 중심 마이산

진안군에 출장차 들렸을 때, 진안군에는 우리나라 어떤 산하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관광지가 있다고 했다. 바로 마이산이다. 마이산(馬耳山)은 봉우리가 두 개 봉긋 솟았는데, 생긴 모습이 산이름처럼 말[馬]의 귀[耳] 같은 모양이다. 멀리서 보아도 참으로 특이한 산세다.

이런 재미있는 산 형상 때문에 전북 도립공원과 동시에 명승지로 지정되었다. 두 봉우리에 각각 이름을 붙였는데, 서쪽 더 큰 봉우리를 암마이봉이라 하고, 동쪽 봉우리를 숫마이봉이라고 부른다.

KakaoTalk_20250211_212853143_01.jpg 관광단지 주차장에서 바라본 마이산. 왼쪽이 숫마이봉, 오른쪽이 암마이봉이다.

진안 IC에서 나와 마이산관광단지 주차장에서 바라보니 마이산의 모습이 독특하다. 봉긋 솟은 두 산봉우리가 뾰족한 말의 귀처럼 생겼다고 하지만, 보는 사람마다 제각각 닮은 형상을 생각할 수 있겠다. 아니나 다를까. 마이산은 닮은 모습에 따라 각기 이름이 있다고 한다. 봄에는 금강을 따라 떠다니는 배의 돛대를 닮았다고 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봉우리가 용의 뿔처럼 보인다 하여 용각봉,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 귀처럼 보인다 해서 마이봉, 겨울 철에는 먹물 찍은 붓끝처럼 보인다 해서 문필봉으로 불린다.

가을에 울긋불긋 나뭇잎이 물드는 것을 상상해 보니, 과연 말갈기 털처럼의 그리 보일 것도 같다.

그러면 내가 아직 매서운 추위가 머무르는 2월 11일 오르려 하니 문필봉에 오르는 것이겠다.


KakaoTalk_20250211_212853143_16.jpg 마이산 남쪽 저수지 탑영제

자료를 찾아보니 관광단지 주차장에서 오르는 것보다 남부주차장에서 오르는 것이 마이산 석탑군과 탑사를 볼 수 있다고 하여 다시 차를 몰고 남쪽으로 이동하였다. 등산로를 따라가니 탑영제라는 드넓은 저수지가 보였다. 마이산 산자락 맑은 계곡물이 모여 이루어진 저수지다.

하늘은 파랗지만, 저수지는 하얗다. 날이 풀릴 때 오면 호수도 하늘을 닮아 파랄 것이다. 이곳 광경이 아름다워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라 한다. 얼음만 제법 두껍다면 스케이트도 탈 수 있었을 텐데, 그러면 사람들 한층 더 모여들 것도 같다.

KakaoTalk_20250211_212853143_15.jpg 마이산 유명한 탑사

마이산과 함께 유명한 절이 여기 탑사다. 이갑룡이라는 처사가 절에 머물 때 꿈에서 계시를 받은 후 10년 동안 80여 개의 탑을 직접 쌓았다고 한다. 낮에는 돌을 주워오고 밤이 되어서 돌을 쌓았다고 하는데 다듬지 않은 돌을 정교하게 쌓아 지금까지도 무너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특히 절 뒤에는 마이산처럼 두 개의 높은 탑이 있는데, 어른 키의 3배 정도의 높이에 돌들을 정성껏 쌓아 올려놨다. 이 탑 이름은 천지탑이라고 한다.


KakaoTalk_20250211_212853143_13.jpg 마이산 암마이봉에는 움푹 파인 크고 작은 구멍들이 보인다. 이를 타포니라고 한다.

마이산은 생긴 모습도 특이하지만, 지질학적으로도 특별하여 유명하다. 마이산은 표면에 움푹 파인 크고 작은 구멍들이 보인다. 이를 지질학 용어로 타포니(tafoni)라고 하며 희귀하고 중요한 지질자료라고 한다. 그래서 세계 최대 규모 타포니 지형으로 2019년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되었다.

타포니 지형이란 '암석 표면에서 암석 입자가 떨어져 나가면서 형성된, 움푹 파인 구멍이 벌집처럼 모여 있는 풍화 구조'를 말한다. 가까이서 보니 북한산 인수봉처럼 화강암 단단한 바위가 아니라 자갈이 뭉쳐서 거대한 산을 이룬 것이다.

KakaoTalk_20250211_212853143_09.jpg 마이산의 봉우리는 자갈과 모래, 점토질이 뭉쳐져 이루어졌다.

멀리서 보면 인수봉처럼 단단하게 생겼건만, 가까이서 보니 그냥 자갈을 진흙으로 개어서 위로 쌓아 올려진 것이다. 마이산 돌탑이 사람이 돌로 쌓은 탑이라면, 마이산은 신이 돌로 쌓은 산인 것이다. 딱 그 비유다.

낮이라 기온이 풀렸는지 탑사로 가는 도중에 산에서 조약돌이 쿵쿵 거리며 떨어졌다. 주먹만 한 돌이 수백 미터 위에서 등산로를 걷던 내 앞으로 떨어졌는데 바로 맞았으면 어찌 될지도 모골이 송연했다.


KakaoTalk_20250211_212853143_07.jpg 마이산 표면을 자세히 살펴보니 바위, 자갈, 모래, 진흙 등을 콘크리트로 비벼서 부어놓은 느낌이다.

군청의 자료를 찾아보니 마이산의 형성과정이 제법 자세하게 나왔다.

마이산 형성기는 대체로 1억 년~9,000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데 이 시기는 육지에 생명체가 생긴 이후 지구 평균기온이 가장 높았던 중기 백악기 때이다. 이 시기의 평균기온은 현재보다 약 8~10℃이상 높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또 지하로 내려가면 지표의 압력을 받아 온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마이산 역암층이 매몰할 때의 온도는 약 150~200℃로 추정된다. 오랜 시간 동안 열과 압력을 받으며 퇴적된 자갈, 모래, 점토 등은 점차 바위로 굳어져 역암이 된다. 이후 지구의 지각운동으로 이 역암층이 지표면으로 상승한다. 상승 직후 진안 분지는 비교적 평탄한 공원이 형성되었으나, 바위의 강도나 풍화 특성 때문에 차별침식(약한 곳은 쉽게 침식되고 단단한 곳이 남는 침식)이 이루어져 지금과 같은 뾰족한 봉우리가 된 것으로 보인다. [진안고원 홈페이지 자료]
KakaoTalk_20250211_212853143_10.jpg 마이산 기슭 은수사

탑사를 지나면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로 은수사가 있다. 은수사는 이성계의 조선 개국과 연관이 있다. 이성계가 고려의 장수로 이름을 떨쳤을 때 새로운 왕조의 꾸을 꾸며 기도를 드렸던 장소가 이곳이었다. 이곳에서 기도 중에 마신 샘물이 은같이 맑았다고 하여 이름을 은수사(銀水寺)라 지었다.

은수사 사찰 앞에 세워진 해설판을 보니 더욱 자세한 내용이 있었다.

현재 샘물 곁에는 기도를 마친 증표로 심은 청실배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위용을 자랑하고 있고, 왕권의 상징인 금척을 받는 용금척수수도와 어좌 뒤의 필수적인 그림인 일월오봉도가 경내 태극전에 모셔져 있다. 또한 신라시대 때부터 소중한 제사를 지내던 소사터의 기록과 태종실록을 바탕으로 매년 군인의 날 전날인 10월 11일 산신제를 지내는 마이산신제단이 바로 뒤 수마이봉 아래에 있다. [이성계와 은수사 해설판]
KakaoTalk_20250211_212853143_12.jpg 은수사와 천연기념물 청실배나무. 뒤편으로 수마이봉이 우뚝 서있다.

은수사 경내에서 바라보니 남쪽으로 봉우리가 보였다. 마이산의 거대한 두 봉우리에 가려 미처 보지 못했던 산이다. 이 또한 마이산처럼 우뚝 솟은 형세가 제법 기세가 단단하여 사람이 그대로 놔두지를 않을 것 같다. 찾아보니 역시 이름이 있었다. "나도봉" 설명을 듣지 않아도 그런 이름이 왜 붙였는지 척하면 모두 알겠다.


봉우리들 세상에도 시샘은 있는지 그들 두 봉우리 앞에 조금 작은 봉우리가 정말 시샘을 하듯 샐쭉한 모습으로 서서 “당신들만 봉우리요? 나도 엄연히 마이산의 한 봉우리요.”한다나요? 그래서 나도봉 이랍니다.
KakaoTalk_20250211_212853143_11.jpg 은수사에서 바라본 나도봉

마이산의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에는 데크계단으로 오를 수 있는 등산로가 있다. 여기를 지나면 처음 당도하였던 마이산관광지 주차장이다. 오르면서도 다시 돌아올 것을 생각하여 천왕문까지 오르기로 했다. 만약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이 금실이 좋았다면 이 사이로 등산로를 내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다. 다행히 서로 싸운 듯 떨어져 있어 길을 내기 수월했다. 여기에도 스토리텔링이 있다.

아득한 옛날 부부신(夫婦神)이 하늘에서 내려와 자식을 낳고 살다가 다시 하늘로 등천할 때가 되었다. 등천할 때에는 사람이 보아서는 안 되기 때문에 남편 신이 말하기를 "우리가 등천할 때에는 아무도 보아서는 아니 되니 한밤중에 떠납시다." 하자 부인 신이 "밤은 무섭고 올라가기 힘드니 이른 새벽에 떠납시다." 하며 우겼다. 이리하여 둘이 다투다가 부인 말대로 새벽에 등천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사람에게 들켜 등천하지 못하게 되었다. 화가 난 남편 신은 "당신 말을 듣다가 이 꼴이 되었구나." 하며 두 자식을 빼앗아 양팔에 안고 부인을 발로 차자, 부인은 등천하지 못한 서러움과 남편에 대한 미안함에 등을 돌리고 앉았으며 등천하지 못한 부부 신은 그대로 바위산을 이루어 마이산이 되었다고 한다. 수마이봉은 화가 나서 두 자식을 안고 기세등등하게 서 있는 모습인데, 탑사 앞 나도봉도 남편이 안고 있는 자식이라 한다.
KakaoTalk_20250211_212853143_06.jpg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 등산로. 앞에 나도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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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 천연기념물 은수사의 청실배나무와 탑사 인근 바위에 붙어 자라난 국내 최대 크기 능소화


마이산의 산책은 남부주차장에서 탑영제를 지나 탑사를 거쳐 은수사에 당도하고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 데크계단을 올라 천황문에 다다르면 큰 어려움이 없이 마이산 진경을 모두 볼 수 있다. 암마이봉 정상을 오를 수 있다고 하지만, 겨울이라 입산이 금지되어 청황문까지 오고 가는 것이 끝이다.

그래도 멀리서 왔는데, 고작 한두 시간 산책으로는 뭔가 아쉽다. 탑사 앞에서 용두봉으로 오른다.

사실 마이산 등산로라면 해발 527m 비룡대나 해발 540m 용두봉을 지난다. 탑사까지 다녀온 길은 말 그대로 탐방로 코스다.

KakaoTalk_20250211_212853143_02.jpg 마이산 용두봉

겨울산은 눈을 밟고 가는 맛이 있어야 한다. 즉흥적으로 운동화를 신고 오른 것이라 눈길이 조심스럽다. 다행히 오고 간 사람이 없어서 눈길은 빙판길이 되지 않았다. 미끄럽지 않고 밟는 족족 서걱서걱 눈 밟는 소리 그대로 청명한 하늘에 울려 퍼진다. 간혹 딱따구리가 썩은 나무를 쪼는 소리가 청량하게 울렸다.

KakaoTalk_20250211_212853143_04.jpg 용두봉 산행길에서 바라본 숫마이봉. 움푹 하인 타포니 지형이 선명하다.

용두봉 정상에서 조망하니 진안고원이라는 말을 이해했다.

호남의 지붕이라더니 과연 첩첩산중이다. 호남평야나 나주평야가 있어서 조그마한 언덕을 고원이라 칭하는가 싶었더니 과연 산줄기가 겹겹으로 중첩되어 끝 간 데를 모르겠다.

KakaoTalk_20250211_212853143_03.jpg 용두봉에서 바라본 호남의 지붕 진안고원. 저 멀리 비룡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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