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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요 Dec 13. 2022

첫소리의 떨림

오케스트라 바수니스트

 연애시절, 아내가 초기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잠 대신 바이올린을 선택했단 이야기를 들었다. 아내는 재능이 있었고 협주곡 레퍼토리를 연습할 즈음 버거웠으리라

너무나 아름다운 오보에의 소리에 매료되었고 주말마다 먼길을 내달려 선생님을 찾아가 배우고 구하고 애썼다.

그간 선생님은 여러 번 바뀌었고 악보들은 너덜거려 흩어졌고 소리는 내 듣기로 깊고 단단해졌다.

그 세월이 10여 년 되어간다.

애인으로, 더 나아가 남편으로 곁에 있던 나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애인의 강권으로 첼로를 샀고 문화센터에 등록해 첼로를 연습했다. 묵직한 울림이 좋았던 악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보에를 연습하는 아내는 아파트 작은 방에 방음부스를 설치해 한번 들어가면 나올 줄을 몰랐다. 배는 고팠고 심심했지만 놀라웠다.

그 좁고 답답한 곳에서 어찌 그리 오랜 시간을 견디며

스케일을 하고 롱턴, 아티큘레이션을 할 수 있었을까?

감탄하던 찰나를 아내는 놓치지 않았고 바이올린 하는 곳에 첼로로 세워 앉히려던 계획이 틀어지자 내심 낙심했던 아내에게 물려 나는

클라리넷을 알아보았다.

오케스트라 구성을 위해 교회에서 악기를 대여해 주고 적은 비용으로 레슨도 받게 해 주었다.

주님 인도하신 길이라 여기며 매주 가서 열심히 연습했다.

맹한 소리에, 가끔씩 삑삑 대는 소리에 악기 연습이 즐겁지 않았다. 들고 오가는 길만 다른 이들의 시선에 대한 오해로 스스로 유난스러웠을 뿐이다.

-그치? 그치?

로 달래던 아내는 진득하지 못한 남편을 나무라는 대신

아내가 큰 맘 먹고오보에를 플라스틱에서 나무로 바꾸던 날

남은 오보에를 나에게 주었다.

같은 선생님을 찾아갔고 같이 배웠다.

둘의 합주를 꿈꾸며....^^

아내는 방음부스에 들어가면 3시간을, 나는 30분을 겨우 버텼다.

가장 배우기 어려운 악기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오보에

운지의 메커니즘이 극악하다.

어느 날,

아내가 바순이란 악기를 소개해줬다. 구하기도 어렵고, 비싸고, 크고, 무겁고, 이쁘지 않았다.

오보에 만큼 운지구조가 극악하고 고질적으로 불안한 음정을 지닌 음들이 많다. 오직 세월만이 극복해 준다고 했다. 미♭, 파#, 시♭, 라, 도 등은 악기의 구조상 어려운 음들이다.

시향 수석선생님과 처음 만났다.

악기를 소개하고 곡을 들려주시며 찬찬히 운지를 가르쳐 주시고

늘 칭찬에 격려를 아끼지 않는 선생님 덕분에 나는 현재 바수니스트가 되었다. 베토벤을 연주하고 영화 음악을 함께 연주한다.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연습하려고 노력하지만 악기를 조립하기까지 힘들고 롱턴은 지겹고 맞지 않는 음정은 괴롭다.


얼마 전 창단연주회를 했다. 리드가 마를까 입술을 살짝이며 적셔보지만 정확한 음정으로 첫소리를 내야하는 나는 늘 긴장이다.

소리가 어울려들며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의 매력은 대단하다.

겸손해질 수밖에 없으며 다른 소리를 들어야하고 지휘자를 지휘를 곁눈으로라도 보아야 한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의지하게 되고 어울리게 되며 다른 사람에게 감사하게 되어 나는 오케스트라를 좋아한다.


첫소리의 떨림은 가시지 않는다. 가실 수 없을 것이다.

즐겨야 한다. 굳건한 소리로 목관들의 현란함을 받치고, 금관의 우렁차지만 거친 소리를 융화시키며 현들의 뛰어다니는 고르고 편한 바탕이 되는 것

이제는 숙명으로 여긴다.


나의 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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