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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요 Aug 26. 2022

가드닝 아내와 토분 남편 이야기

정원을 들이고 흙을 빚어 토분을 만들며 살아가는 부부의 고군분투 성장기

대학시절 교양강좌로 도예수업이 있었고 강사님이 와서 물레로 다양한 형태의 기물을 빚어내며 뿌듯해하시는 모습에 놀랐다. 큰 발을 하나 만드셨고 그 발이 굳어져 아무 쓸모가 없어지기 전에 우리는 거기에 우리의 이름을 새겼고 구웠으며 그 시절 유행했던 막걸리와 사이다 그리고 대학 미술관 옆 소나무의 솔잎을 띄워 낮술을 경험했다. 만든 그릇에 섞은 막걸리. 창조의 기운이었으니라. 낮술은 강렬했고 그 시절 청춘들은 강렬했으나 난 조신했고 술만이 좋았다.

 거칠 것이 없었던 시절이었으나 대학은 특수목적대라서인지 그다지 지성적이지도 그렇게 자유롭지도 않았다. 기숙사가 있었고 점호가 있었으며 걸어 다니며 피우는 담배에 조교선생님이 지적을 했다. 즐거웠으나 공허했고 공부보다는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놀이에 충실했다. 대학 잔디밭과 막걸리, 동아리 활동으로 분주하고 조별과제로 바빴지만 타지에 온 INFJ는 외로웠으며 시간은 늘 넘치는 공허로 다가왔다. 몸이 아팠을 때 라디오에서 나왔던 김건모의 [핑계]는 한창 유행이었고 그 유행가에는 좁고 습기로웠던 연탄보일러 자취방의 냄새가 각인되었다.

 


외로운 탓이었을까? 도자기가 성큼 들어왔다.

선배의 주도로 미술과 내에서 분과를 만들기로 했고 권유를 받았던 우리는 별로 아는 것 많지 않은 선배의 지도로 손으로 돌리는 물레로 흙과 물이 만나 진흙이 되어 손에 감기는 질감에 기겁했으며 수분을 고르게 하고 점토의 공기를 빼내는 꼬막 밀기에 구슬땀을 흘렸다.

"주도하고 아는 것 별로 많지 않았던 그 선배는 지금 특수목적대를 나온 우리가 종사해야 하는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문경 근처에 가마를 열고 선생님을 찾아뵈며 전업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만나고, 떠나고 도자기의 매력에 빠졌다가 노동의 힘겨움으로 손을 털어댈 때 나는 외로웠던 탓이었는지 미술관에서 밤새는 걸 즐겼다. 고독했지만 행복했고 할 일이 있어 좋았고 단순하게 반복되는 일이 지겹지 않았다. 미술관 도예실 문을 열어젖히던 귀신 이야기는 내가 만들어 냈다.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면서도 근처 공방을 찾아 도자기를 계속했고 손재주와 감각이 없진 않았는지

형이라 부르는 그는 곧잘 내게

 


"넌 도자기를 해야 하는 사람이야"


그 말이 참 좋았지만 도예를 전공한 그들도 먹고살 길이 막막한 판에서 내겐 길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칭찬으로만 듣고 감사했다. 대부분의 작업은 선물을 위한 것이었고 성격 탓인지 완벽한 형태나 깔끔한 결과물을 위해 노력한 시간이 계속되었다. 연애시절 자랑삼아 아내에게 보였다.


결혼을 했고 아파트를 거쳐 조금 더 큰 아파트로 옮기기 위해 분양신청을 했다가 떨어지고 갑작스러운 아내의 전원주택 알아보자는 말에 환호성~!!!!을 질렀다. 속으로 속으로만~

격한 반응은 늘 그렇듯이 생각을 주춤하게 하는 법이니까

'평생의 소원이 이뤄지려나 보다' 잠자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첫 번째 집에서 2년

아내는 가드닝의 전문가가 되어갔고 특히 장미와 델피니움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다.

마당이 좁고 다닥다닥 붙은 집에서 도자기는 꿈꾸기 어려웠다. 아내는 어려움에도 희망을 건네며 기억해주었다.


이사를 했고 집 앞 땅을 매입에 마당을 확장했다.

우리는 300평의 정원을 가진 사람들이 되었다. 연애시절 도자기 하는 걸 본 적이 있는 아내는 작업실을 마련해 주었고 가마와 토련기, 물레 등 기자재 사는 일에 투자했다.

너무 좋았던 나는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작업실에서 밤새 작업을 하는 실수를 저질렀지만 아내는 이해했다. 오랜 염원을 이해해주었다.

20년간 스케치만 하던 디자인을 빚어댔고 손의 비루함이 회복되었다고 여겨질 즈음

간혹 이야기 나누던 토분을 연구했고 만들었다.

나의 성과 아내의 성 그리고 가마를 뜻하는[요]를 붙여 만든 '이고요'

식물을 마당으로 들이는 일과 식물을 거실로 들이는 일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흙을 뒤집고 상태를 살피며 지렁이가 움직여 흙을 건강하게 하는 일이 마당으로 들이는 일의 시작이라면 거실로 들이는 일의 시작은 건강한 토분을 만드는 것이다.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그 일을 돕다가 보면 어린 생명을 기르는 일과 교육에 대한 지혜를 얻는다. 모든 일이 그 바탕을 살피지 않으면 세워지고 성장한 것들을 무너뜨리지 않고서는 덮고 속일 뿐 새로운 시작과 회복은 요원하다.

가까이 두게 된 자연은 그 스스로 인간의 시선을 끌어 확장시킴으로써 우리는 하늘과 별과 땅과 미래와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생각은 곧 고군분투의 열망을 일으키며


'나를 파괴시키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라는 니체의 말처럼 우린 도전하고 성장해 나간다.


우리 둘은 교육을 하고 오케스트라에서 오보이스트와 바수니스트로 활동하며  호구를 착용하고 검도 수련을 같이한다.

아내는 책을 읽고 소감을 남기는 일에 진심이며

나는 사물놀이를 배우고 공연을 하며 판소리를 배우는 일에 진심이다.

 

가드닝의 자리에 둘이 서서 늘 나누는 대화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따뜻하고 깊게 만들며 토분을 만드는 일은 태초의 생명과 신의 빚음과 인내와 소명을 떠올리게 한다.

다양하게 즐기는 취미생활은 삶을 풍요롭게 하며 때로는 지혜를 더한다.

틔우고 심어 자라게 하는 일과 빚어 소명을 갖게 하는 일은 자연스레 생명에 대한 성찰이 더해짐으로 급히 서두를 수 없고 보듬지 않을 수 없어 갸륵하다.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으로 던지는 물음과 간혹 깨달음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일을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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