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과 비극의 중간 어디쯤

by 이광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 보면 비극이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 찰리 채플린 -


겉만 보고 그 사람의 삶을 판단할 수 없다. 평상시 만나는 사람들에게 늘 웃는 모습으로 대하는 사람조차도 자기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름의 사정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희극과 비극의 중간 어디쯤을 살아가는 우리는 녹록지 않은 삶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서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격려하며 살아가야 할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이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 우리나라가 자살률에 있어서 OECD 국가 중 1위라는 불명예는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축복이라고 말한다. 축복받고 세상에 태어났지만, 끝까지 살아보지도 못하고 도중에 삶을 버리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낭떠러지로 몰아붙이는 것일까.


내 주위에도 목숨을 버린 사람이 있다. 고인은 이십 대가 되면서부터 위에 문제가 생겼다. 너무 민감한 성격이라 소화를 제대로 시키지 못하는 거라고 스스로 진단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았는데도 여전히 소화능력은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국내에서 유명한 의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갔지만 특별한 이상 소견을 발견하지 못했다. 한약을 먹어도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갈수록 고인은 점점 야위어 갔다. 고인이 먹는 거라고는 식사 때마다 죽 조금 먹는 것이 전부였다. 주위 사람은 고인을 이해하지 못했다. 겉으로 보기엔 너무도 행복한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가정에 성실한 남편이 있고, 스스로 잘해나가고 있는 아들과 딸도 있겠다, 걱정할 게 뭐가 있어 그렇게 밥도 제대로 소화도 못 시켜 죽만 먹고 사는지 주변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럴수록 고인은 점점 더 외로웠고, 삶이 고달팠다. 그러다 아들과 딸이 직장을 얻을 무렵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말았다.


그런 일이 있기 두 달 전 어느 결혼식에서 고인을 만나 몸이 괜찮은지 물었을 때 고인은 별 차도가 없다고 하면서 그래도 애들이 잘 돼서 너무 좋고 이제 걱정할 것 하나 없다고 말했다. 사실 고인의 낯빛이 좋지 않아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어 조만간에 연락해서 차분하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걱정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나 자신도 나름대로 허둥지둥거리며 하루하루 살다 보니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다른 사람이 걱정되고 마음에 걸려도 자기 코가 석자라는 말처럼 언제나 자기에게 던져진 삶을 살아가기에도 벅차서 다른 사람을 챙기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장례식장에서 상복을 입고 있는 아들과 딸은 너무도 허탈한 표정으로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엄마가 아침에 잘 갔다 오라는 인사말이 마지막일 줄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고인은 겉보기에 남부러울 것 하나도 없어 보이는 행복한 가정의 주부였지만 스스로는 너무도 고단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또 한 번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지인을 길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다. 오랜만의 조우라 매우 반가웠다. 길에서 한참 동안 서서 자녀들의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음에 차 마시러 들르겠다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그 지인의 남편은 사업이 번창하고 있었고 친정어머니도 직접 모시면서 참 화목한 가정을 가꿔가고 있었다. 오랫동안 가까이서 봐왔던 나로서도 그 가정을 생각하면 마음이 흐뭇해지고 삶은 저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러워했다. 하지만 몇 개월 뒤에 우연히 만난 다른 지인에게서 너무도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나는 한동안 정신이 멍해졌다. 다름 아니라 지난번에 길에서 우연히 만나서 차 마시러 머지않아 들르겠다던 지인이, 내가 그렇게도 부러워했던 그 지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다른 지인의 말에 따르면 이전에 길에서 만났을 때도 항암 치료를 받고 병원에서 나왔던 때였다고 했다. 남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될 만큼 행복해 보이는 그 지인도 남모를 시련 때문에 오랫동안 슬픈 나날을 보냈던 것이다.


우리의 삶은 원래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순간순간 행복하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 힘든 삶 중에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 웃고 노래하고 춤추며 살아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고된 삶을 제대로 사는 길이다. 그래서 니체는 ‘춤추지 않고 지나간 하루는 그 하루를 제대로 살았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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