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에게 안부를 묻는 밤

by 이광

전날 형은 몸이 안 좋다며 회사에서 조퇴하고 돌아와 계속 누워있었다. 내가 아침에 형을 깨우려고 할 때 누워있는 형의 모습이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형은 온몸을 축 늘어뜨린 채로 단지 숨만 쉬고 있을 뿐이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불안감이 순식간에 나를 덮쳤다. 나는 정신이 나가기 직전이었다. 그러면서도 지금 당장 형을 병원에 데려가야겠다는 생각만 떠올랐다. 119를 불렀어야 했는데 그것보다는 내가 빨리 차로 형을 병원으로 데려가는 것이 빠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어져 있는 형을 힘겹게 앉히고 온 힘을 다해 형을 업었지만 몇 번을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너무도 야속해서 울부짖으며 온 힘을 다해 형을 업고 차 있는 곳까지 뛰었다. 형을 뒷좌석에 누이고 비상등을 켠 채로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가까운 병원에 도착했을 때 형 상태를 보고 종합병원으로 데려가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다시 형을 업고 차에 태워 종합병원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형은 갖가지 검사에 들어갔고 검사 결과는 급성 패혈증이라는 의사 소견이 나왔다. 곧장 형은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날 밤 형에게 고비가 찾아왔다. 심폐소생술에도 불구하고 형은 그 고비를 넘지 못했다. 나는 두 손을 꼭 모은 채로 중환자실 유리문을 통해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은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사람의 목숨이라는 것이 이렇게 허망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어제까지 멀쩡했던 사람이 오늘 이렇게 허망하게 주검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사람 목숨은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하지 않는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불가해한 일이었다.


형은 10년 가까이 괌에서 원양어선 냉동 기사로 근무했다. 20대를 온전히 외국에서 보내고 30대가 되어 귀국했다. 형은 바다낚시를 좋아했다. 오랜 외국 생활 중에도 낚시가 큰 위안이 되었다고 했다. 집에서도 금요일 퇴근 후에 낚시 가방을 챙겨 인근 바닷가로 나가서 야간 낚시를 즐겼다. 형은 밤새 낚시를 하고 토요일 오후가 돼서야 집에 돌아오곤 했다. 언젠가 형을 따라 낚시를 간 적이 있었다. 야경을 보는 건 좋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낚싯대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 그때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 뒤로 형이 낚시하러 갈 때 동행한 적은 없었다. 형은 낚시로 잡아 올린 물고기를 친구 집으로 가져가서 회로 먹고 탕으로도 끓여 먹었다. 가끔 집으로도 잡은 고등어를 가져오기도 했다. 형은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애주가이자 애연가가 되어있었다. 한국에 들어온 뒤에도 술과 담배를 끊지 못했다.


형은 꽤 많은 돈을 벌었다. 형의 친구들은 10년 정도 외국 생활을 하고 돌아와서 멋진 집과 고급 차도 사고 결혼도 하고 안정된 생활을 했다. 하지만 형은 그러지 못했다. 형이 외국에서 번 돈은 큰형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그 뒷수습하는데 다 들어가 버렸다. 그러면서 가족들은 풀뿌리 흩어졌고 어머니와 나는 가까스로 방 두 칸짜리 전세를 구해 따로 나와 살았다. 형은 부푼 꿈을 안고 한국에 왔는데 돈은 바닥나버렸고 몸은 망가져 있었다. 그런데도 형은 늘 괜찮다고 했다. 대학교에 다니고 있던 나는 여기저기 아르바이트했고, 형은 외국에서 집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장 회사에 다니기 시작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형은 속이 말이 아니었을 거다. 아니, 그때 형 속은 썩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사실 괜찮지 않았지만, 어머니나 나에게 털끝만큼도 내색하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형편이 안 좋아져서 남의 집 문간방에서 세 들어 살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어머니와 형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행복하게 살았던 시기였다. 형은 병원에 규칙적으로 다니며 치료를 받았고 몸에 좋다는 한약도 복용했다. 그러다가 내가 졸업 후 취직하고 돈을 벌면서 점차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나는 번 돈으로 차를 구입했고, 동시에 형도 낚시하러 갈 때 이용할 소형차를 구입했다. 하지만 형은 그 차 운전대를 채 한 달도 잡지 못하고 떠났다.

형이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오히려 덤덤했다. 나는 형의 죽음으로 약해지거나 눈물을 보일 수가 없었다. 만약 내가 약해지거나 눈물을 보인다면 형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 되어버려 그다음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 되어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적어도 장례가 끝날 때까지는 그랬다. 모든 장례를 마치고 썰렁한 집에 돌아와 앉아있는데 형의 부재가 점차 실감 나기 시작했다. 나는 태어나서 그때처럼 서럽게 울어본 적이 없었다.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차를 닦으며 웃고 농담을 건네던 형이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눈물범벅인 채로 형을 부르며 앞으로 어머니 잘 모시고 더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다.

얼마 전에 도서관 신간 서적이 진열된 책장에서 우연히 손에 잡힌 에세이 한 권을 빌려와 읽는데 작가의 남동생이 암에 걸려 죽음을 맞게 되는 부분을 읽다가 왠지 모를 서러움에 복받쳐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울어야 했다. 작가의 남동생의 죽음에서 형의 죽음이 보였다. 형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 서럽게 울었던 그때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형을 부르며 했던 다짐을. 형은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다 알고 있을 거라 믿는다. 형이 보기에 그동안 나는 잘 살아온 걸까, 그리고 그동안 형도 잘 지냈는지 세월이 한참 흐른 오늘 이렇게 형에게 안부를 묻는다.




이전 12화털장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