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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이란 수식어를 달고 미국에서 산 지 14년째다. 미국이란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게 낯선 땅에 사는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를 습득하는 일이라 생각해서 한국 문화와 담을 쌓고 산 지가 10년쯤 되었을 때, 미국에서 태어난 두 아들 지누와 미누가 주일 저녁이면 엄마와 함께 깔깔대며 보던 한국 연예극이 궁금해졌다. <무한도전>을 알게 되었다. 남자 연예인 여섯 명이 낯선 상황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경험을 쌓아가는 과정 중 발생하는 관계 속 좌충우돌을 가까이서 관찰하며 영상에 담아 시청자에게 보여주는 연예극이었다. 공통점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다섯 남자가 알듯 모를 듯 묘하게 서로를 위하는, 표 내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멀리는 보는 사람은 다 아는, 해학이란 양념으로 버무려진 우정에 마음이 끌렸다. 그러다 유재석이란 사람을 알게 되었다. 다른 이의 감정을 해치지 않는 웃음이 무엇인지를 무척 깊이 고민했다는 흔적이 엿보였다. 다른 이를 웃기기 위해 누군가를 납작하게 밟기보다는 기꺼이 밟힘을 당하는 모습에서 드러나는 그의 겸손함에 자연스레 마음이 쏠렸다. 다른 이의 단점을 붙잡고 언어폭력만 행하기보다는 다른 이의 장점을 붙잡아 부러움 섞인 비꼼으로 질투 어린 빈정거림을 만들어낼 줄 아는 그의 이해심에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2018년 3월 31일 563회 방송을 마지막으로 <무한도전>이 종영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무슨 문제가 뒤에 놓여 있었을까란 의구심이 들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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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 처가 유재석 씨가 <놀면 뭐 하니?>란 새로운 연예극을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집 거실 안락의자에 처와 나란히 앉아 함께 봤던 <놀면 뭐 하니?>는 박명수 씨와 함께 일일 닭집을 운영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었다. 그로부터 몇 주 후 올여름을 겨냥해서 90년대 감성을 입은 춤을 추며 노래하는 남녀혼성 가수단을 꾸려보는 일을 시작했다. 두 주 동안 누구와 함께 남녀 혼성 가수단을 꾸릴지를 놓고 고심하던 유재석은 두 가수를 찾아갔다. 국내 가요계에서 1990년에서 2010년대에 음악 방송 1위를 차지한 유일한 여가수이자 연예 대상과 가요 대상을 받아낸 전무후무한 연예인인 이효리와 끝없이 노력하는 게 몸 구석구석 근육에 배어 있는 다재다능한 연예인 비(정지훈), '싹쓰리'라는 남녀 혼성 가수단은 이렇게 탄생했다. 미국 모던 재즈 연주자 'Four Play'가 생각났다. 각자의 분야에서 남다른 업적을 이룬 연주자 넷이 모여 만든 재즈 연주곡은 거스름 없는 짜임새로 안정감과 무한한 자유로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우리 한 번 놀아볼까?"라고 말하는 듯하다. 보는 이를 모두 지리게 만들겠다는 '린다G', 이제는 춤을 추는 가수로서 다시 태어나겠다는 '유드래곤', 지금까지 춤을 추며 흘린 땀으로 세상을 적셔왔으니 이제 한 마리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겠다는 '비룡', 망설임 없이 주어진 시간만큼, 딱 2020년 여름 동안만, 한바탕 신나게 놀아보자고 의기투합하며 세 사람의 이번 여름 노는 시간이 시작했다. 놀거리는 '추억 여행'이다. 노년기를 준비해야 하고, 중년에 접어들었고, 중년을 준비해야 하는 나름 중견 연예인에 해당하는 세 사람은 한때 한반도에, 아시아에, 전 세계에 자기의 존재감을 과시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로, 자기들만의 길을 가리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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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G', '유드래곤', '비룡'이 만든 10년 전으로의 시간 여행은 추억 소환이 아니다. 추억 재발견이다. 생물학적 젊음을 잃어버린 이 세 사람의 경쾌한 춤과 입가에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흥겹게 부르는 노래는 과거 속으로 사라진 '젊음'을 현재 속에 다시 살려냈다. '부활'이란 종교적 단어가 생각났다. 10년 전 상태로, 죽기 전 상태로, 완벽하게 돌아간다는 신기한 상상을 더는 할 필요가 없어졌다. 파릇함은 가셨지만, 여전히 파릇함을 증명하는 세 사람의 진지한 노력과 열정, 마음가짐. '싹쓰리' 속에 부활한 정신적 가치는, 29살에 멈춘 듯한 강인함과 섬세함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비룡'의 몸에서 부활하여 뿜어져 나왔다. 여염집 아낙의 요염함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세상도 세월도 밟아 뭉갤 수 없는 청순함이 '린다G'의 눈짓과 몸짓 속에서 흘러내렸다. 신나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름 속에서 자기를 위해 높은 곳에서 내려온 동료를 향한 배려와 겸손이 10년 넘는 세월을 무명으로, 영원한 신인으로 취급받던 자기를 이겨낸 좋은 사람 속에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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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의 건장한 체격, 연예인으로서 지금까지 살아오면 이룬 업적이 '린다G'와 '유드래곤' 눈에는 영 밉상이다. 틈만 보이면, 기회만 잡으면, 인정사정 없이 '비룡' 난처하게 만들기로 부산하다. 경쟁의식보다는 넘볼 수 없는 대상에게 느끼는 감정인 질투가 분명한데, '린다G'와 '유드래곤'은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한다. 더 놀라운 건 '비룡'의 태도다. 자기 이름을 건 연예 기획사 사장이기도 한 그가 '린다G'와 '유드래곤' 앞에서는 막냇동생이 되었고, 형과 누나의 질투 어린 놀림과 할큄을 해맑은 웃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비룡'의 이해심과 포용심에 감동한 '린다G'와 '유드래곤'은 한 발짝 물러나기보다는 한 발짝 더 앞으로 나간다. <동물의 왕국>을 한 번이라도 본 이는 야생에서 태어나 자라는 새끼 동물이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 하는 놀이가 서로서로 공격하기란 걸 알고 있다. 철저하게 '선'을 지키면서 논다. 상대방이 다치지 않을 정도의 공격성을 절묘하게 유지하면서 논다. 이런 놀이를 인간 삶으로 옮기면 '소통'이란 단어를 떠올릴 수 있다. 인간은 언어를 가지고 논다. 언어를 사용해 소통하며 노는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다. 누리망이 인간의 놀이 문화에 미친 영향력은 무지막지하다. 산업화로 시작한 삶의 기계화는, 효율성에 대한 맹목적 추구로 인해 파편화로 이어졌고, 함께 얼굴을 마주 보며 서로의 표정과 몸짓을, 곧 본능의 꿈틀거림을 확인하며 소통할 기회의 빈곤은 파편화된 인간 삶을 자폐화로 몰고 갔다. 자폐적 인간의 자존감은 자기 자신이란 세계 밖으로 나갈 때, 혹은 다른 이가 경고 없이 한순간에 자기 자신이란 세계 속으로 침입할 때 산산이 조각난다. '싹쓰리'의 소통 방식은 공동체적이다. 서로가 걸어온 삶의 여정을 인정하고 존중하기란 튼튼한 반석 위에서 세 사람은 서로의 삶으로 깊이 들어간다. 다른 이의 들어옴을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쫑긋 세우고 방어하려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던진 주먹에 기꺼이 얼굴을 내어줄 수 있다. 서로를 향한 신뢰, 서로에 대한 애정, 서로를 향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소통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깊은 웃음과 눈물이 묘하게 섞인 관계를 지금 우리는 싹쓰리를 통해 재경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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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인류 문화사에서 발생한 획기적 변화는 "영웅의 죽음"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가 모두 우러러보며 닮으려는 영웅이 사라졌다. 환상 속 영웅의 부재는 새로운 신화를 창조했다. "영웅의 죽음"이란 자리를 대신 차지한 건 "일상인의 영웅화"다. 이런 인류 문화사의 지각 변동은 빠르게 우리 삶의 곳곳으로 흘러들어왔다.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일상생활과 평범한 일상이 중요한 볼거리와 들을거리로 부각되었다. 훌륭한 가수의 화려한 무대 위 모습보다는 일상을 살아내는 그 가수의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소소한 삶의 모습이 더 재밌는 볼거리와 들을 거리로 변했다. "인간미"라는 수식어구에 가려진 채 이제 수많은 사람은 컴퓨터 스크린과 텔레비전을 통해 다른 누군가의 삶을 엿보며 즐거워한다는 사실을 잊고 지낸다. 기계화가 불러온 인간 삶의 파편화, 인간 삶의 파편화가 야기한 인간 정신세계의 자폐화는 '자기'라는 나약한 감옥에 갇혀 사는 이가 유일하게 다른 이와 소통하는 방법으로 택한 게 관음증이란 걸 보여준다. 관음증을 통한 자기만족과 자기 위안이란 주된 먹거리는 일상인으로 전락한 한때 영웅이었던 이에 대한 비웃음과 비아냥이다. 영웅이라 믿었던 이가 사실은 나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확인함에서 얻을 수 있는 자기 합리화와 자기만족으로 지금 우리는 우리 마음을 다스린다. 2020년 3월에 전 세계 곳곳으로 번져나간 코로나 사태는 우리의 몸마저 각자의 집 공간 속에 가두었다. 근원적 고립감과 불안감에 더해진 답답함은 암담한 미래에 내비치던 한 줄기 빛마저 앗아갔다. '싹쓰리'는 한때 영웅이었던 이들을 한순간에 춤을 추며 노래하는 남녀 혼성 가수 지망생으로 바꾸었다. '싹쓰리'의 일상은 평범한 일상이지만 평범하지가 않다. 새로운 신화 속 영웅이 되기 위한 '린다G', '유드래곤,' '비룡', 이 세 사람의 여정에 모두가 설레인다. '과연 그럴까?'란 기대감에 '싹쓰리'만큼 설레는 우리와 마주친다. 그러고 보니 '싹쓰리', '린다G', '유드래곤', '비룡'이란 이름도 우리가 만들었다. 부를 노래도 전 국민에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싹쓰리'의 탄생부터 모든 음원과 음반 순위 1위를 차지한 지금 이순간까지 어느 정도는 우리 모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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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연극은 사회 공동체의 번영과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자연을 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닌 적응해야 할 대상으로 믿었던 고대 그리스인에게 삶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낙관적이기보다는 비관적이었다. 그리스 비극은 집념으로 삶을 시작한 한 영웅이 결국에는 체념으로 삶을 마친다는 지극히 단순한 줄거리에 기반한다. 한 영웅의 비극적 삶을 보고 들으면서, 고대 그리스인은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을 스스럼없이 토해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카타르시스Catharsis. 마음속에 억압한 감정의 응어리를 언어나 행동으로 외부에 표현하여 정신적, 정서적으로 안정을 되찾는 일이다. <다시 여름 바닷가>란 노래 음악극을 보는데, 마음이 시려왔다. '린다G'의 육체미가 청순하면서도 욕정을 자극했고, '유드래곤'의 노력하는 이가 건네주는 결과물에 놀라웠고, '비룡'의 힘차면서도 절제미가 더해진 춤과 노래에 고개를 절로 끄덕였지만, 마음 한켠이 먹먹했다.
음악극이 끝났을 때, 처가 말했다. "참 신나는 노래인데, 왜 눈물이 나려고 하지?"
"어? 난 나만 그런지 알았는데, 당신도 그래요?" 내가 물었다.
"당신도 그래요?" 아내가 다시 물었다.
인생이란 비극이다. 비극이 아니라면, 적어도 비극적 요소가 다분하다. 2020년 여름을 한번 싹 쓸어보자고 결성한 '싹쓰리.' 결성부터 수많은 이의 관심을 사로잡았고, 매주 '싹쓰리'의 노래와 춤이 구체화하자 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은 하나하나 화제가 되어갔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싹쓰리'는 2020년 여름, 우리가 모두 함께 잠깐 꿀 수 있는 달콤한 꿈일 수밖에 없다는 걸.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가수와 연예인, 사회자. 이들 또한 우리처럼 늙어가고 있고, 늙어간다는 건 결국 멈춰서야 할 때를 예견하며 걸어갈 수밖에 없는, 비극 속 주인공이다. 지혜의 왕 솔로몬의 손목 팔찌에는 "이 또한 지나가리다."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가장 "뜨거웠던" 삶의 순간이 있다. "뜨거웠던"이란 말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닐 수도 있음을 표현하기 위해 택했다. "싹쓰리"는 지금 우리 삶에서 가장 뜨거웠던 순간 속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설렘과 긴장.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는 애석함과 허무함. '싹쓰리'가 흥겹게 춤추며 힘차게 부르는 노래는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 웃음 속에서 눈물이 담겨있다. 아련한 과거와 기약할 수 없는 미래 사이에 선 우리 마음속 불확실성이 '싹쓰리'가 밀고 온 파도 속에 쓸려온다.
2020년 7월 27일 월요일 오후 9시 2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