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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 강물처럼 Mar 08. 2021

지누 영어 선생님이 보낸 편지

2021년 2월 어느 날이었다.

지누 영어 선생님이 2021년 2월 어느 날 보낸 편지


2021년 2월 어느 날 뜬금없이 지누 중학교 영어 선생님이 지누와 처, 나에게 보낸 편지가 하나 도착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된 지누는 영어 특수반에 들어갔다. 2020년 뉴저지에서 살기 좋은 도시 1위에 꼽힌 매디슨 Madison에 사는 아이 중 과외 수업을 받지 않는 아이는 거의 없다고 한다. 직접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생활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이곳 주민이 소유한 차, 입는 옷만 보면 충분히 그럴 것도 같다란 생각을 지우기가 쉽지 않다. 2007년에 엄마 뱃속을 둥둥 떠다니던 지누는 하나의 생명체로 세상에 자기 존재를 알린 지 9개월쯤 되었을 때, 미국에 왔다. 한글을 이해하고 사용하는데 그리 큰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지만, 몇 년 전 미국에 놀러 왔다가 우리 집에서 며칠 머문 큰누나는 지누가 쓰는 한글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과는 엄연히 틀린 발음이란 사실을 나와 처, 지누에게 각인시킨 후 돌아갔다. 장황하게 매디슨과 지누의 탄생에 관해 말했지만 강조하고 싶은 건 과외 수업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영어 특수반에 들어가 공부하기 시작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2020년 3월에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발발했으니, 3월부터 지금(2021년 3월 8일)까지 집에서 누리망을 사용하여 학교 수업에 참여했으니 특수반에서 난생처음 접한 논설문 작성법은 높다란 벽으로 다가왔던 거 같다.


          지누는 어렸을 때부터 글을 잘 썼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별생각 없이 쓴 글을 집에 가져왔을 때 처와 난 읽으면서 감탄했다. 작가의 영혼이 이 아이에게 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까지 했었다. 중학교 3학년 영어 특수반은 시작부터 우리가 우러러 봤던 지누의 영혼에 큰 상처를 남겼다. 영어 선생님은 엄격했다. 당신이 가르친 대로 학생이 글을 써오길 바랐다. 수필이나 시가 아닌 논설문은 정해진 원칙에 따라 써 내려가야 한다는 걸 학생에게 철저하게 깨닫게 하려고 엄격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두 번째 숙제에서 참패를 당한 지누는 당황했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논설문의 기본은 다른 이가 했던 말, 사실 유무를 철저하게 가려 가능한 한 객관성을 견지한 채 글을 써 내려가야 한다는 걸 지누는 인지하지 못했다. 날개 편 상상력을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상상력을 통제하는 법을 배우는 첫 관문이 지누를 힘들게 하는 듯 보였다.


"지누야, 이런 글을 잘 쓰고 싶냐?"

"네, 잘 쓰고 싶어야. 자꾸 잘못 썼다고 지적을 받으니 좀 짜증나요."

"그래? 그럼, 아빠가 한 가지 방법을 아는데, 해 볼래?"

"뭔데요?"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

"왜요?"

"오랜 시간이 필요하거든. 꾹 참고 해볼 수 있다면 한 참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결과는 분명 좋을 거야."

"그게 뭔데요?"

"뉴욕타임스 The New York Times를 읽어봐. 지금까지 넌 재밌는 소설만 골라서 읽었잖아. 그래서 소설이나 수필, 시를 넌 잘 써. 지금까지 읽어온 책이 알게 모르게 내 몸속에 들어가 있거든. 이제 논설문 쓰는 법을 배우고 있으니, 좋은 논설문을 읽어야 할 때가 된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냐?"

"한 번 해볼게요."


          한 두 번 지누의 논설문을 봐준 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았다는 말을 듣고 관뒀다. 필요하면 다시 부르겠지라고 생각했다. 얼마 후 지누 킨들 Kindle을 내 뉴욕타임스 계정으로 연결해줬다. 며칠 후 타임스가 어떻냐고 물었더니 엄청 재밌고 신기한 이야기가 참 많다는 답변을 들었다. '잘 됐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두 달 후 지누 영어 선생님이 보낸 전혀 예상치 못한 편지를 읽었다.


Dear Mr. & Mrs. Lee,

Now that we are halfway through the year, I wanted to reach out to tell you how delighted I am to be working with Jinu this year! It's been a challenging experience in particular this year, but Jinu has risen to the challenge! He invests 100% effort and focus in all he does. He's quick to incorporate lesson contents into his own writing, and he cares about his own growth and progress, which speaks to his maturity. Please continue to encourage Jinu - he is working hard and it shows! Jinu makes me smile every day. You've got a terrific kid!

Paiae Henry


지누 부모님께,

올해도 벌써 반이 지났어요. 올해에 지누와 함께 공부하면서 제가 얼마나 즐거운지를 전하려고 편지를 써요. 올해는 특별히 힘든 한 해인데요. 그럼에도 지누는 힘든 걸 당당하게 맞섰어요. 과제 하나하나에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해 집중하는 걸 제가 봤어요. 지누는 배운 걸 고스란히 작문에 재빨리 적용해요. 성장과 발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볼 때, 참 성숙한 아이란 걸 알 수 있어요. 지누를 계속해서 격려해주세요.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그게 보여요. 지누 때문에 매일 웃게 돼요. 두 분 정말 멋진 아이를 두셨어요.

파이애 헨리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남이 내 아들을 칭찬해주니 내 심연에 거대한 울림, 그것도 아주 따뜻하고 향긋한 울림이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2021년 3월 8일 월요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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