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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 강물처럼 Dec 06. 2022

칠 번 방의 선물 (2013)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건 기억이고 진실이다.

서류 뭉치를 싼 보자기 가방을 손에 한 젊은 여자가 교도소 운동장에 서서 맑은 하늘을 우러러본다. 그때 노란색 풍선 하나가  하늘로 날아가고 여자의 시선은 풍선에 고정된다. 교도소 담장 밖으로 날아갈 거 같던 풍선을 묶은 줄이 탈옥 예방 차원에서 담장 위에 설치한 철책에 걸린다. 교도소 밖으로 도망칠 수 있을 거 같던 풍선은 교도소 안과 밖 경계선에서 그만 멈추고 만다. 재소자 관련 서류 뭉치를 다시금 교도소에 반납하기 위해 찾아온 젊은 여자의 이름은 이예승이다. 그녀의 아버지 이름은 이용구. 그는 예승이가 초등학교 때 유아 유괴, 강간, 살해범으로 사형 선고로 삶을 마감해야만 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건, 사고보다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없다. 원인에 대한 집착은 원인이 아닌 걸 원인으로 오해하게 만들고 그렇게 자라난 오해는 사실로 둔갑한다.


상실이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어는. 이용구는 아내를 딸 예승이는 엄마를 상실했다. 그게 영화의 시작이다. 경찰청장은 딸을 상실한다. 교도소 부장은 아들을 상실했다. 경찰청장은 하루아침에 사라진 딸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사라진 딸이 메웠던 마음을 분노와 광기로 대신 메운다. 딸은 사고로 사라질 수 없었다. 사고로 사라져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딸을 죽인 이가 필요했다. 예승이 아빠 이용구는 추측이 확신으로 변한 다른 이의 잘못된 생각을 맞서 자기를 변호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지적 장애인이었다. 아내를 잃었기에 예승이마저 잃을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졌다. 자기를 상실함으로써 딸 예승이만큼은 지키고 싶어 했다. 


예승이는 교도소 부장의 양녀로 입양되어 자랐다. 변호사가 되는 게 꿈인 예승이. 영화는 예승이가 모의 법정에서 아버지 이용구의 무죄를 밝히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용구에게 사형이 선고되는 순간 예승이는 아버지를 꼭 안아주며 흐느낀다. 모의 법정 최종 발언에서 예승이가 말했다. “정의의 이름으로 아빠를 용서하겠습니다.” 


예승이 생일날에 아빠 이용구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감방 친구들이 마련해준 조촐한 생일잔치상을 앞에 두고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세일러문 가방을 손에 든 예승이가 아빠에게 절하며 말했다. “예승이의 아빠가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용구도 예승이에게 절을 한 후 말했다. “아빠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습니다.” 어린이의 순수함과 지적 장애인의 무덤덤함이 이 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관객의 마음에 절박함과 다급함을 밀어 넣는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현실과 환상(기억) 사이를 오고 간다. 사실보다는 진실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사실이 현실이라면 진실은 기억이기 때문이다. 인간 삶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현실이나 사실이 아니라 진실이고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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