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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 강물처럼 Jan 04. 2023

나의 아저씨(2018)

훔쳐보고 훔쳐듣는 변증법적 성장

1973년생 박동훈(이선균 분)은 건축구조기술사로 삼안 E&C라는 이름의 한 직장에서 20년 가까이 일하고 있다. 아내 강윤희(이지아 분)는 아들 지석(정지훈 분)이를 낳은 후에도 사법고시를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고시에 합격해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12살 지석이는 일찍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떠났다. 만인의 부러움을 살 수밖에 없는 가정으로 보인다. 아내가 대학교 후배지만 회사 대표 이사로 일하는 도준영(김영민 분)과 은밀한 관계를 이어가며 이혼을 준비 중이란 사실을 박동훈은 알지 못한다. 아내 강윤희는 남편이 지금까지 자기만의 가치관을 가지고서 세상을 헤쳐나가며, 타협하지 않았기에 남들에게 뒤처진 채 걸어야만 했고, 굽실거리지 않았기에 승진에서는 번번이 미끄러져야만 했고, 마음에 들지 않는 회사를 언제든 그만두고 싶었지만 형과 동생, 자기 뒷바라지에 평생을 바친 어머니를 위해서 이를 앙 다물고 버텨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강윤희에게 삶을 삶답게 만들어주는 게 흔히 사랑이라 정리할 수 있는 누군가의 극진한 관심이라면 박동훈이에게 삶을 삶답게 만드는 건 가족이다. 가족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해야 한다고 믿었기에 다른 이로부터 자기의 진짜 감정과 생각을 숨기기 위해 갈수록 말수는 줄었고 덤덤함과 무뚝뚝함으로 무장해갔다.


어느 날 파견직 직원으로 21세 이지안(이지은 역)이 삼안 E&C에서 일을 시작한다. 같은 파견직으로 회사 청소 담당으로 일을 시작한 할아버지 서춘대(이영석 분)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지난 20년간 지안이가 살아온 삶을 알지 못한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남기고 간 빚을 여섯 살에 떠맡게 된 이지안. 그녀에게 유일하게 의자하고 기댈 수 있는 말을 할 수 없는 병든 할머니 한 분뿐이었다. 부모의 보호 아래에서 자라는 게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아이 이지안. 아이였지만 순식간에 어른으로 변해버린 어른이란 껍질을 뒤집어쓴 어린아이 이지안. 어른이 된 이후로 한 일은 부모님이 물려주고 간 빚을 갚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기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할머니 돌보기가 전부였다. 고단한 하루 일과가 끝나고 나면 유일하게 숨을 돌리며 마시는 믹스 커피. 지안이가 믹스 커피를 준비해서 마시는 모습은 어린아이가 외로움이란 영양제를 먹는 모습과 비슷하다. 뜨겁게 데운 물에 녹은 커피를 마시면서 지안이가 생각하는 건 자기다. 돈을 갚아라고 찾아올 때마다 할머니에게 주먹질을 해댔던 사채업자를 죽여버린 자기다. 사채업자를 죽였을 때, 그의 아들 이광일(장기용 분)을 함께 죽였음은 되새길 때마다 깊은 상처가 되어 심장을 찌른다.


<나의 아저씨>는 박동훈과 이지안이 맺어가는 ‘관계’를 보여주는 연속극이다. 관계의 시작은 과장과 파견직 직원으로 마주침이다. 다들 자기가 가진 장기를 어떻게서든 고용주에게 알려 일자리를 구하고, 경험을 쌓아, 더 나은 일자리 찾기에만 집중할 때, 뜬금 없게 작성된 이력서 한 장이 박동훈 과장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기와 장기가 달리기. 망설임 없이 박동훈 과장은 달리기가 장기인 이지안을 파견직 직원으로 뽑았다. 운명이 있다면 이런 순간을 운명적 순간이라고 부를 수 있다.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이 인간이 주어진 삶에서 궁극적으로 이루어야 할 과제라고 정의했던 개인화/개성화individuation’ 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완성해야 할 숙명이다. 모든 삶의 완성은 죽음과의 화해이듯이 우리는 대면하기 싫은 우리 자신과 언젠가는 만나야만 한다. 외면과 거부로 꼭꼭 숨겨운 치부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현듯 우리 앞에 거듭 나타난다.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좋은 남편, 좋은 아들, 좋은 친구, 좋은 직장 상사가 되기 위해  철저하게 외면해온 솔직함과 당돌함이 배어있는 이력서를 손에 들고서 박동훈 과장은 자기 운명과의 만남을 얼떨결에 받아들였다.


회사 내에서 드러나지 않게 권력 투쟁을 벌이던 두 집단 중 도준영을 따르는 이들은 눈에 가시같은 존재인 박동운 상무 이사(정해균 분)을 회사에서 쫓아내기 위해 계략을 꾸민다. 계약업체를 구슬려 박동운에게 5,000만원치 상품권으로 뇌물 공세를 펴려 했지만, 실수로 뇌물은 박동운 이사가 아니라 박동훈 과장에게 배달되었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5,000만원을 손에 든 박동훈 과장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고, 일단 그 돈을 사무실 서랍 안에 넣어 두었다. 어찌할 바를 몰랐던 이유는 며칠 전 회사에서 조기 은퇴 후 시작한 사업이 망해 무일푼으로 지내는 첫째 형에게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사업자금을 마련해 주려고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5,000만원을 대출하려 한다는 어머니의 생각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박동훈 과장은 누군가가 봉투 하나를 손에 쥐고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너무 일찍 어른이 되야 했던 이지안이 살면서 개발한 생존 도구는 귀신 같은 직관력으로 주변 상황을 누구보다 빨리 파악하는 능력이었다. 살해 당한 아버지가 남긴 사채업을 이어받아 아버지보다 더 악랄한 사채업자가 된 광일이에게 빚진 2,000만원을 한 순간에 갚을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나타났다.


“저기, 밥 좀 사주죠.”

박동훈을 따라 지하철에서 내린 이지안이 처음 박동훈에게 내뱉은 말이다. 한 명은 달동네에, 다른 한 명은 재개발 후 지워진 고급 아파트 단지에 살지만 둘은 후계동에 산다. 자기 앞으로 잘못 배달돈 상품권 5,000만원을 손으로 받아든 죄 밖에 없지만, 자기가 세운 가치관을 곧게 지키며 살려고 노력해온 박동훈의 마음은 하루종일 두근거렸다. 입사 후 단 한 번도 자기에서 제대로 된 말 한 마디 건넨적 없던 파견직 직원이 등 뒤에서 내뱉은 말은 이상하리만치 섬뜩하게 다가왔다. 왠지 모르게 이 아이는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생각에 이끌려 박동훈은 이지안에게 저녁밥을 사줬고, 그 자리에서 먼저 상품권 5,000만원에 관해 말했고 내일 회사로 제출할 계획을 설명하며 자기를 변호했다. 그날 밤 이지안은 사무실로 돌아가 박동훈 과장의 사무실 책상 서랍에 보관된 5,000만원치 상품권을 훔친다. 다음 날 상품권이 박동운 상무 이사가 아니라 박동훈 과장에게 잘못 배달되었다는 걸 알게 된 도준영은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박동훈 과장을 회사에서 제거하기로 마음을 바꾼다. 박동훈 과장을 제거하면 박동훈의 아내 강윤희를 자기 여자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더 높아지리란 생각 또한 잊지 않았다. 이지안은 훔친 상품권을 가지고 광일이에게 찾아가 빚 2,000만원을 갚으려고 했지만, 수상한 냄새를 맡은 광일이는 상품권의 출처를 알아내기 위해 이지안을 닦달한다. 5,000만원 상품권이 사라진 걸 알게 된 박동훈 과장은 하룻밤만에 뇌물 수수 혐의를 뒤집어 쓰게 되고, 상품권을 찾아내지 않으면 회사에게 쫓겨날 위기에 내몰린다. 자기에게 배달되기로 되어있던 상품권 5,000만원이 실수로 박동훈 과장에게 잘못 배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박동운 상무 이사는 자기와 뜻을 같이 하는 (도준영 대표 이사를 싫어하는) 다른 회사 직원들과 함께 이를 기회로 삼아 회사 이권 투쟁에서 우위를 점하기로 마음을 모은다. 잘못 배달된 5,000만원치 상품권으로 인해 삼안 E&C의 수많은 직원의 관계가 얽히고 섥히기 시작했고, 이 순간을 기회로 삼으려는 자와 예상치 않게 맞딱뜨린 위기의 순간을 어떻게해서든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자 사이에서 다양한 관계의 그물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박동훈 과장에게 잘못 배달된 상품권 5,000만원을 훔쳤다가 회사 내 쓰레기통에 넣어 반납한 이지안은 광일이에게 진 빚 2,000만원을 갚기 위해 박동훈 과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일을 자처했고, 한 순간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의 손전화기에 도청 프로그램을 설치한다. 2,000만원을 위해 시작한 도청 작업이 박동훈이란 한 인간의 내면 세계를 본인보다 더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됨을 예측할 수는 없었다.


상호작용

심리학자 베아트리체 비비Beatrice Beebe는 엄마와 아기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을 근접 촬영하여 0.01초 단위로 구분하여 분석했다. 일상 생활에서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엄마와 아기 사이에 오가는 미세한 몸짓 언어와 세밀한 표정 언어를 구별, 정리하면서 그녀가 발견한 건 아이의 정서에 영향을 주는 건 엄마가 아이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여 만든 웃음과 따뜻함이 밴 말이 아니라 연출된 말과 행동 속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진짜 감정이라는 사실이었다. 우는 아이에게 안정감을 제공하여 울음을 그치게 하는 건 엄마의 과장된 웃음과 친절이 아니라 겉으로는 무뚝뚝하게 보일지라도 엄마의 마음에서 아이를 향해 넘쳐 나오는 평안함과 안정감이다. 평안함과 안정감에서 시작하는 아이를 향한 관심은 자연스레 따뜻한 웃음과 머뭇거림 없는 친절로 드러난다. 자연스러움. 아이를 대하는 엄마의 말과 행동을 0.01초 단위로 구분하여 분석할 때, 머뭇거림이나 당황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엄마가 아이에게 보내는 반응은 아이의 정서 발달에 도움이 된다. 안정감으로 충만한 정서는 자연히 아이의 신체 발육에도 영향을 미치고, 건강한 정서와 신체는 자연스레 뇌세포 확장을 촉진한다. 비비는 수년 간에 걸쳐 진행한 연구를 통해 발견한 사항을 차례차례 이론화했다. 아기의 신체와 정신 상태에 대한 엄마의 (자연스러우면서도) 민감한 반응은 엄마와 아기 사이에 안전하기에 안정감을 안기는 관계를 형성하게 하고 자기에게 집중하는 엄마를 둔 아이는 엄마를 안전한 기지로 삼아 엄마 너머에 존재하는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나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Beatrice Beebe et al.] “On the Origins of Disorganized Attachment and Internal Working Models: Paper I. A Dyadic Systems Approach,” Psychoanalytic Dialogues, 22: 253-272, 2012, p. 254). 다른 이와 관계 맺는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엄마와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관찰, 조사한 비비는 그 원인이 아이가 아닌 엄마에게 있음도 밝혀냈다. 미해결로 남아 있는 상실감, 학대, 정식적 외상이 정신적 삶의 일부분이 된 엄마는 아기에게 건강하게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이 처음부터 결여되어 있었다. 아이의 울음에 공감적 반응보다는 아이의 반응에 과도하게 긴장하여 반응했고, 아이로부터 자기가 원하는 반응을 얻기 위해 과도하게 아이를 어루만지거나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자기 마음 속 두려움, 긴장, 불안을 아이를 통해 해결하려는 욕구가 이러한 행동 밑에 놓여 있었다 (Ibid., 256-257). 뜬금없이 심리학자 베아트리체 비비의 이론을 설명한 이유는 연속극 속 이지안의 성장과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비의 이론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 집을 나간 부모님은 하나 뿐인 딸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에도 찾아오지 않았다. 집을 나간 부모님은 결국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채 객사했고, 부모님이 이지안에게 남긴 건 빚과 언어 장애를 가져 정상적인 삶을 꾸려나갈 수 없는 할머니뿐이었다. 이지안의 마음에는 안전감과 안정감이 뿜어져 나오는 안식처가 존재하지 않았다. 유일한 안식처를 제공했던 이는 두 친구였는데, 한 명은 오락 중독자로 다른 한 명은 분노 조절 장애자로 자라났다. 한 푼 두 푼, 푼돈이지만 어떻게든 벌어서 빚을 갚아야 하고, 자기말고는 돌볼 이가 없는 병든 할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두 가지 거부할 수 없는 명령만이 어린이 지안의 마음밭에 새겨졌다. 이지안이 태어나 자라 살아가는 세계는 ‘돈’과 ‘할머니’라는 두 축 위에 지어졌다. 벌어도 벌어도 손에 쥘 수 없는 게 돈이라면, 할머니는 기대고 싶지만 기댈 수 없는, 도리어 돌보고 보호해야 할 대상이었다. 세상이 냉혹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할 수 없는 이지안에게 세상은 그저 하루하루 버텨내야 할 공간일 뿐이다.


훔쳐보고 훔쳐듣기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박동훈이란 한 인간의 내면세계를 훔쳐보고 훔쳐듣는 일은 이지안에게는 유아기에 경험할 수 없었던 엄마와의 상호작용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었다. 조기 은퇴 후 시작한 사업이 실패한 후 재기할 용기와 희망을 깡그리 잃어버린 채 하루하루 살아가는 형, 수많은 이의 기대를 한 몸에 산 신인 감독으로 영화계에 등장했다가 두 번째 작품을 졸작으로 만든 후 영화계에서 영원히 사라진 동생, 이런 형과 동생을 거두어 사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자기만은 넘어지지 말자고 다짐하며 사는 박동훈 과장은 회사에서 후배 직원에게 근본을 잃지 않는 엄마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그의 엄마 같은 드러나지 않는 자상함은 계약직 파견 사원 이지안에게도 예외없이 주어졌다.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박동훈이란 한 인간을 도청하는 일은 관심으로 변했고, 관심은 아이가 좋아하고 따르고픈 어른을 향해 품는 존경어린 사랑으로 성장했다. 부모가 아이에게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건 아이에게 등을 돌리고 몰래 하는 행동이라는 말이 있다. 아이는 부모가 자기에게 등을 돌리고 몰래하는 행동을 보고 그걸 모방하며 자란다.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그래서 “진정한 교육이란 교육이 끝난 후에 학생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거다.”라고 말했을까? 박동훈이란 한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이지안은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훔쳐보고 훔쳐듣기는 동일화 경험이다. 이지안의 눈에는 모든 걸 다 소유한 박동훈 과장이었는데, 그의 속을 들여다 볼수록 자기만큼 삶을 힘겹게 버텨내고 있다는 사실에, 자기만큼 외로움에 떨며 하루하루 가야 할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자기만큼 좌절과 절망에 힘겨워 쓰러진다는 사실에, 이지안은 크게 한 숨을 내쉰다. 삶의 무게에 짖눌릴 수 밖에 없고, 외로움에 몸서리칠 수 밖에 없고, 삶과 맞설 때 우리는 계속해서 넘어질 수 밖에 없음을 이지안은 박동훈과 맺은 비밀스런 관계 속에서 스스로 배워나간다.


훔쳐보고 훔쳐듣기의 변증법

이지안이 박동훈을 훔쳐보고 훔쳐듣기 시작한 순간부터 자연스레 박동훈은 이지안을 훔쳐보고 훔쳐듣기 시작한다. 서로가 서로를 훔쳐보고 훔쳐듣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시청자뿐이다. 둘은 각자가 상대방을 향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이지안은 박동훈을 훔쳐보고 훔쳐들으면서 인간이 무엇인지, 다른 이와 함께 살아가는 무엇인지를 배웠고, 박동훈은 이지안을 훔쳐보고 훔쳐들으면서 무엇을 삶의 우선 순위로 가져야 하는지를 새롭게 고찰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박동훈은 자기 삶을 이지안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이지안의 마음밭에 안정감과 안전감이 있는 안식처 건설을 도왔다. 이지안은 자기 삶을 박동훈에게 건네면서 박동훈의 마음속에 분리되어 있는 생각과 감정을 하나로 엮어준다. 이 둘의 상호작용을 멀리서 훔쳐보고 훔쳐들으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들여다본다. 박동훈의 삶을 관찰하면서 올바름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그렇지 못한 자기를 다독치고 추스린다. 이지안의 삶을 관찰하면서 우리는 용기를 얻는다. 우리보다 못하고 생각했던 어린 아이의 마음속에 그 누구보다 크고 넓은 사랑의 불꽃이 정리정돈되지 않은 채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관계란 운명의 거미줄

관계는 운명의 거미줄이다. 거미줄에 얽히는 순간, 선택해야 한다. 거미줄에서 살아남는 방벙을 찾을지 아니면 거미줄에 얽힌 채 누군가의 먹이가 될 지를 선택해야 한다. 거미가 될지 아니면 거미에게 먹힐지는 우리가 정해야 할 몫이다. 거미가 된다는 건 거미줄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말이다. 거미가 된다는 건 내가 걸려든 거미줄을 내 걸로 만드는 능력을 소유한다는 말이다. 살면서 마주치는 모든 이는 나를 향해 던져지는 거미줄이다. 이 거미줄에 얽혔을 때,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나의 아저씨>는 훔쳐보고 훔쳐듣기가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해줬다. 관계란 운명의 거미줄에서 우리가 해야 할 훔쳐보기는 관음증(觀淫症: 변태 성욕의 하나. 다른 사람의 알몸이나 성교하는 것을 몰래 훔쳐봄으로써 성적(性的) 만족을 얻는 증세)과 다르다는 걸 명심하자.  


2023년 1월 3일(화요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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