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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 강물처럼 Dec 11. 2022

미누와 나눈 대화

죽음과 환생

12월 7일 수요일 오후 7시경에 난 미누와 함께 버로나 체육관Verona Athletic Center에서 포티지Portage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미누는 12월 3, 4일 인디아나Indiana 주 포트 웨인Fort Wayne이란 도시에서 치러진 풋살 대회에서 2010/2011년생 국가대표를 육성하는 풋살교실Futsal Forget National 대표로 출전했다가 3연패의 쓴잔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언제나 어디서든 자기보다 나은 상대를 만날 수밖에 없는 게 우리네 삶이다. 걷는 이가 있으면 뛰는 이가 있고, 뛰는 이가 있으면 날아가는 이가 있고, 날아가는 이가 있으며 날아가는 이를 총으로 쏴서 떨어뜨린 후 유유자적 걸어가는 이가 있다. 그래서 난 두 아들에게 축구와 풋살을 배우고 연마함에 있어서 겸손과 배려를 강조한다. 손흥민이란 엄청난 선수를 만들어낸 손웅정 씨 역시 훌륭한 축구 선수의 자질로 겸손과 배려를 꼽았다. 공보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인생철학은 확고했다. 축구를 했다면 고작 동네 축구에서 동아리 축구로 진화한 것 말고는 그다지 내세울 게 없지만 12년간 미국에 와서 읽은 책과 책 속에 담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굴리고 또 굴린 머리는 껍질에 붙은 머리카락은 상당량 떨어졌지만 생각하는 능력으로 다져진 머리는 나만의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손웅정 씨가 책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에서 말했듯이 기본기의 소중함은 축구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공부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기본기가 쌓여야 하고, 음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도 기본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날도 난 미누에게 풋살 연습이 어떠했는지를 넌지시 물으며, 그날 아침에 올해 가을에 시작한 웨이브 축구단SC Wave 지도자가 쓴 선수 평가서에 관해 말하려고 했다. 


“미누야?”

“네?”

“너 말이야. 코치가 새로운 기술을 가르쳐 줬는데, 가만히 보니까 네가 아는 거야. 그런데 코치가 요구하는 방식은 네가 알고 있는 방식과 달라. 이럴 때 넌 어떻게 할 거냐?”

“음…” 눈치 빠른 미누는 네가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기 위해 잠깐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녀석이 말했다.

“음… 한 번 코치가 하라는 대로 해보고 나서… 생각을 하면 되는데…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너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지?”

“네.”

“오늘 아침에 로버트 코치가 너에 대한 평가서를 아빠에게 보냈더라. 축구 선수가 된다는 건 매 시합 회기가 끝날 때마다 누군가가 너를 평가하고, 그 평가에 따라서 넌 한 걸음 더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있거든. 그리고 너에 관해 좋은 말을 해줄 수 있는 이는 코치지 아빠가 아니야. 그런데 말이지. 사람들은, 특히 축구를 했고, 축구를 가르치며 사는 사람들은 네 코치 말에 귀를 기울일까? 아빠 말에 귀 기울일까?”

“코치.”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코치가 하는 말에 집중해야 해.”

“네.”

“그리고 코치가 가르치는 기술이 네가 배운 것과 다르면, 그건 이상한 게 아니야. 그건 새로운 거야. 축구장에서 경기를 할 때 공은 어떤 방향에서 어떻게 너에게 날아올지 예측할 수 없어. 그렇기 때문에 공을 다루는 방법은 이상한 게 없어. 코치가 가르치는 건 모두 다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만치 연습을 해서 네 것으로 만들어야 해. 알겠지?”

“네.”

“미누가 지금 11살이지?”

“네.”

“그렇네. 네가 진짜 좋은 축구 선수가 되려면 18살이 되기 전에 유럽에서 전화가 와야 해. 널 데려가고 싶다고. 아니면 네 코치가 널 유럽에 추천해야 해. 시간은 참 빨리 흘러간다. 그치?”

“네…”


미누는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안정효 씨 쓴 <글쓰기 만보>란 책에서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 말이 있다면 “할 말을 다했으면 끝내라.”이다. 힘차게 설득력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군더더기가 없어야 한다는 게 그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 말을 생각하며 입을 굳게 다물고 앞만 바라보며 운전에 집중했다. 


“아빠?”

“왜?”

“삶은 왜 이렇게 빨라요?”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르게 흘러가냐고?” 녀석은 “Why is life is going so fast?”를 한글로 직역해서 말했음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네. 시간은 너무 빨라요. 너무 빨리 흘러가요.”

“그래. 네 말이 맞다. 시간은 너무 빨리 흘러간다. 시간을 이길 수 있는 이는 없지. 그래서 아빠는 너랑 형 지누가 후회를 최소화할 수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후회 없는 삶은 없다.”

“후회는 ‘regrets’?”

“그렇지 ‘리그렛’이 없는 삶, 아니. ‘리그렛이 미너마이즈된 삶, a life with minimized regrets.’”

“…”

“할 수 있겠어?”

“네, 해 볼게요.”

“그래, 네가 해보겠다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빠는.”

미누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후회를 최소화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한 상념이었을까?

“아빠?”

“왜?”

“나… 죽기 싫어요.” 


할 말을 생각할 수 없었다. 어린아이의 마음에서 발생한 생각의 높이 뛰기. 어디에서 어디로 높이 뛰기를 시도했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했다. 미누는 시간이 빨리 흘러감에 놀랐다. 후회를 최소화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결국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럼 후회가 최소화된 삶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그래, 아빠도 죽기 싫어. 그런데 죽음은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난 죽는 게 무서워요.”

“아빠도… 마찬가지야. 아빠도 죽는 게 무섭단다.”

“하나님은 왜 사람을 죽게 만들었을까요?”

“그러게 말이다. 아빠도 너만 할 때부터 죽는 게 무섭더라… 지금도 무섭고… 그런데, 아빠가 45년 가까이 살아보니까 이제 슬슬 한 가지는 알겠더라. 그건 아빠 역시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사실 죽음은 아빠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지.”

“…”

“할아버지 할머니도 언젠가는 죽어야 하고, 엄마 아빠도 언젠가는 죽어야 하고, 그럼 너랑 형 지누도 어쩌면 지금 엄마 아빠 같은 나이가 되어 있겠지?”

“…”

“그래서 아빠는 삶을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너에게만 주어진 삶, 그러니 소중하게 잘 가꾸어야 해. 후회를 최소화하면서.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난 리인카네이션reincarnation이 좋은 거 같아요.”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환생이 있다면 다음 생애에 미누가 미누가 될지 아니면 동물이 될지 아니면 식물이 될지를 알 수 없잖아. 넌 다음 생애에 다른 아빠랑 엄마를 만나고 싶어? 형 지누도 없고?”

“모르겠어요.”

“아빠는 다음 생애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엄마가 있어야 하고, 미누랑, 지누가 있어야 해. 환생이 있다면 난 지금과 똑같은 삶을 다시 살고 싶어. 그럼 너네들에게도 더 잘해줄 수 있고, 실수도 줄일 수 있겠지.”

“…”

“그런데 환생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럴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잖아. 그러니 다시 아빠의 생각은 지금, 여기로 돌아와.” 

“네, 그렇네요.”

둘 다 침묵했다. 난 조용히 앞을 바라보며 집을 향해 달리는 차의 상태를 계속 확인했고, 미누는 오른쪽 손바닥으로 보조석 차유리를 어루만지며 또다시 상념에 빠져 있었다. 


2022.12.07.(수)


그림: 김은정, 그들의 대화(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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