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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 강물처럼 Jul 05. 2024

두 아들과 함께 한 3 대 3 축구 시합

인과응보(因果應報)?

지난 주말 두 아들과 함께 집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치러진 3대 3 축구 시합에 나갔다. 어른이 나, 고등학생이 첫째 아들, 중학생인 둘째 아들, 둘째 아들이 사설 축구단에서 만나 우정을 키운 친구, 그 친구의 고등학생 누나, 이렇게 다섯 명으로 선수단을 꾸려 시합에 출전했다. 원래 경기 일정은 6월 22-23일이었지만 그 주간 쉬지 않고 내린 폭우로 인해 한 주 뒤로 연기되었다. 시합 전에 세 번 정도 모여 연습하며 호흡을 맞췄다. 


토요일 첫 번째 경기는 고등학생 5명이 상대였다. 힘과 기술을 믿고 어떻게든 혼자서 점수를 내려고 애쓰는 고등학생은 우리 상대가 되지 않았다. 시합을 위해 세 번 모였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강조한 건 공을 가지고 있을 때보다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더 열심히 빨리 움직여 공을 가진 동료를 도와줄 수 있는 자리 찾아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내가 흘린 땀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려는 의지로 뭉친 우리는 고등학생 5명을 상대로 10 대 0으로 마무리했다. 전반전에 다섯 골을 넣었고, 후반전에는 경기 시간을 다 사용하지도 않고 다섯 골을 더 넣어 경기를 일찍 끝냈다. '이렇게도 축구를 할 수 있구나!'란 깨달음과 짜릿함이 아이들 얼굴에 가득한 모습에 나 역시 어깨가 들썩였다. 


두 번째 경기는 어른 3명이 상대편이었다. 후보 선수가 없다는 사실에서 후반 체력 싸움에서 우리가 우위를 점하게 되리라고 직감했다. 어른 3명은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무섭게 돌진해 왔다. 한 점이라도 먼저 만든 후 방어에 전념하겠다는 작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 분 후 수비에서 한 번의 실수는 우리의 실점으로 이어졌다. 당황한 아이들은 서둘러 한 점을 따라가기 위해 공격에 집중했고, 어른 3명은 그런 아이들을 상대적으로 우수한 체격을 앞세워 잘 막아 나갔다. 첫째 아들 지누를 경기장에 들여보내면서 내가 말했다. 


"지금 우리는 네 빠른 발이 필요하다."


잠시 후 지누는 빠른 발을 효율적으로 잘 활용하여 빈 공간을 침투하여 자기에게 흘러오는 공을 간결하게 골대 안으로 차 넣었다. 점수는 1대 1. 경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려졌다. 얼마 후 경기장 밖으로 나간 축구공을 미누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망설이지 말고 슛해라."


미누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공을 감아서 높이 올려찼고 3, 4초 하늘 위로 날아가던 공은 아래로 다시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2 대 1. 그 순간부터 난 아이들에게 공을 주고받으며 상대편 선수를 더 많이 움직이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내 요구 사항을 온전히 받아들여줬고 지친 기색이 역력한 상대편 선수들은 점수 차를 만회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기 시작했다. 서둘기 시작하면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좁은 시야는 절박함을 불러온다. 냉정함과 결별한 절박함에 사로잡히면 그때부터 상대편 선수의 꼭두각시 인형으로 변할 확률이 높아진다. 빈틈을 잘 노린 우리는 3골을 더 넣어 5 대 1로 두 번째 경기를 마무리하여 경기 첫날 승점 6점을 확보했다. 


경기 둘째 날 첫 번째 경기에서 만난 상대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첫째 날 가진 두 가지 경기를 모두 이겼다. 이변이나 푸념 없이 결승전에 나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경기였다. 경기 시작 5분 전 상대편 선수가 3명밖에 없는 걸 확인한 후 난 안도했다. 후반전 체력에서 우리가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2명의 선수가 상대편에 합류했다. 선수 명단에 오르지 않은, 지인을 통해 급하게 꾸려진 추가 선수들로 여겨졌다. 호각 소리와 함께 경기는 시작했다. 공을 주고받으며 돌리는 모습, 과감하게 치고 들어올 때와 뒤로 빠져야 할 때를 우리만큼 잘 알고 있는 모습에 약간 당황했지만, 우리 아이들은 연습한 대로 차근차근 기회를 만들어 선취점을 획득했다. 상대편은 역시나 만만치 않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곧바로 우리 쪽 골망을 흔들며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전후반 경기는 모두 엎치락뒤치락 양상으로 이어졌고 경기 결과는 2 대 2. 무승부였다. 


첫 경기와 둘째 경기를 큰 점수차로 이겼기에 우리 아이들은 결승전에 나갈 수 있었다. 상대편은 다섯 명의 어른이었다. 세 번째 경기를 치른 후 한참 진행 중인 이들의 경기를 유심히 관찰했는데, 나이에 맞게 경험치를 잘 살려 심리전에서 우위를 점유하여 상대편 20대 젊은이를 5 대 2로 이기는 모습에서 쉽지 않은 결승전이 될 거라 예상할 수 있었다. 나 혼자만이 어른이란 걸 생각하며 더 영리하게 더 많이 뛰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결승전이 시작했다. 


5 대 3으로 우리가 패했다. 선취점을 우리가 먼저 만들었지만 경험에서 나오는 영리한 경기 운영 능력을 아이들은 아직 가지고 있질 않았다. 게다가 난 1분도 채 경기를 뛰지 못했다. 지친 기색이 보이는 미누를 불러들이고 경기장에 나간 지 30초가 지나지 않아 어떻게 그런 상황이 발생했는지를 아직도 알 수 없지만 난 상대편 선수의 몸에 밀려 넘어졌고, 상대편 선수는 내 오른쪽 발 위로 미끄러져 넘어졌는데, 그 와중에 내 오른쪽 무릎을 바깥쪽으로 뒤틀었고 고통에 못 이겨 난 고함을 질렀다. 


"Shit! 이런 젠장할!"

"What? I just played! 뭐라고? 난 그냥 경기만 했을 뿐이야!"

"No, you sprained my right knee! 아니, 네가 내 무릎을 뒤틀었잖아!"


아직도 어떻게 내가 넘어졌고, 넘어지는 내 위로 그 사람이 어떻게 넘어졌는지, 넘어질 때 왜 하필 내 오른쪽 다리 위로 넘어졌는지, 그런 와중에 내 오른쪽 무릎은 왜 뒤틀릴 수밖에 없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사고는 한순간에 발생한다는 그 말만 생각날 뿐이다. 경기를 뛸 수 없는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요구가 아닌 격려라고 생각했다. 팽팽하던 경기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부족한 경험치로 인해 상대편 선수의 수싸움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네 아이들은 목욕을 할 수 있으리만치 많은 땀을 흘리며 비기거나 이기기 위해 노력했다. 마음이 답답했다. 마음은 뛰고 싶었지만, 몸은, 내 무릎은 그러길 거부했다. 


그 전날 밤 교회 사무실에서 주일 예배 준비를 마친 후 난 언제나처럼 건물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5월 중순부터 철새가 교회 외벽에 둥지를 틀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고 난 알이 둥지에서 부화하기 전에 둥지를 없애는데 집중했다. 철새의 본능에 따른 끝없는 둥지 틀기와 의지에 따른 나의 끝없는 둥지 제거 작업은 지속력과 끈덕짐을 요구하는 전투였다. 몇 주 전부터 교호 외벽에 어떠한 둥지도 지워지지 않은 걸 확인한 후 난 '자연'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자부했다. 토요일 밤 교회 현관 위 천장에 보지 못한 둥지가 하나 놓여 있는 걸 확인하기 전까지는. 목표물을 확인한 후 난 곧바로 기다란 막대기를 가지고 와 둥지를 밀어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 순간 난 그 속에 알에서 부화한 새끼 새 두 마리가 엄마새와 함께 쉬고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둥지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진 새끼 새 두 마리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어미새는 새끼를 구하기 위해 떨어지는 둥지에서 떠나지 않았기에 바닥에 부딪혀 크게 상처를 입었다. 아비새는 가까스로 바닥과의 충돌을 피했고 하늘을 두어 바퀴 맴돌더니 바닥에 떨어진 둥지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후 바닥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은 채로 사태를 주시하고 있었다. 난 이들 새 가족에게 가정 파괴범이었다.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한 나는 그 상황으로부터 벗어나 사무실에서 다른 일을 조금 한 후 다시 바닥에 떨어진 둥지를 확인했다. 아비새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사태를 주시하고 있었다. 쓰레기 통과 빗자루를 가지고 나와 난 '살인 현장'을 청소했다. 그날 꿈에서 어린 시절 나를 만났다. 메뚜기, 사마귀, 매미를 잡아 괴롭히며 즐겁게 노는 모습이었다.


일이 분을 남겨두고 어떻게 해서든 2점을 더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뛰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눈앞에 새 둥지가 불쑥 나타났다. 조금씩 멀어지는 우승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아이들 모습에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즉사한 두 아이를 지켜보며 추락 시 입은 상처로 인해 더는 날 수 없는 어미새가 아등바등거리는 모습이 떠올랐다. 인과응보. 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을까?


2024.07.04.(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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