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잣나무를 심겠다는 다짐
내 고향 의정부에 작은 밭이 생겼다.
작다고만 하기는 어려운, 300평짜리 농지다.
건물 하나 지을 수 없는 산자락 구석의 땅이다.
밭이 생겼을 때, 나는 사실 아무 방향도 세우지 못한 상태였다.
농사일이라고는 가끔 할아버지를 도와드린 정도였고,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가 농업이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감이 없었다. 스튜디오 일을 하던 중 하루 짬을 내어 양재 aT센터에 갔다.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 틈에 섞여, 농업을 한다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곳에는 대부분 은퇴한 본부장님이나 임원처럼 보이는 분들이 앉아 있었다.
농업 기술 자체보다도, 남은 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더 고민하는 분위기였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지나치게 젊었고, 동시에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조금 낯선 30대 남자였다.
그 시간은 농업 기술을 알려준다기보다, 농업인이 어떻게 삶의 터를 잡아가는지 보여주는 오리엔테이션에 가까웠다.
큰 도움을 얻지는 못한 채 나와서, 나는 사랑하는 교보문고로 갔다.
무작정 농업 관련 책을 뒤적이다가 농업에도 자격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중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유기농업기능사였다.
평소 자연 보존과 건강한 리추얼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왠지 재미있어 보여 책을 사 들고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농업이라는 것이 내가 막연히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어렵고 섬세한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어머니와 시간을 보낼 겸 포천에 오가던 길, 조금만 더 올라가면 산림조합 나무시장이 있었다.
무턱대고 들어가 밭에 시험 삼아 심어볼 만한 것들을 둘러봤다. 어머니가 눈여겨보는 나무들은 다양했고, 내게는 낯선 것들뿐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훑다가 한 나무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겨울이라 대부분의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서 유난히 푸르게 자태를 지키고 있던 스트로브 잣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나는 한주를 업었고, 나머지 어머니의 나무 셀렉들을 모아서 밭에 왔다.
실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험도 없이 이것저것 작물을 들이고 나니, 각 식물의 성질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결국 한철 만에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그 뒤로는 허송세월 같기도 하고, 예열 같기도 한 시간을 보냈다.
스튜디오에서 정신없이 본업에 매달리고나니 어느새 사계절이 지나 있었다.
밭에 가보니, 허허벌판이 되어 있었다.
산속 노루가 우리가 없는 사이 잔치를 벌였는지, 쫄망쫄망한 똥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높이 자란 잡풀 사이에서 그래도 푸르게 버티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그 스트로브 잣나무였다.
작은 순이 송송 올라와 있는 모습을 보는데 이상하게도 행복했다.
사계절 푸를 수 있다는 이 나무의 성질은, 하루하루 마음이 흔들리는 내게 묘한 믿음을 주었다.
그 뒤로 나는 잣나무가 궁금해졌다.
이 스트로브 잣나무에서도 잣이 열릴까, 먹을 수 있을까. 알아보니 스트로브 잣은 열매가 작아 보통 식용으로는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제야 우리가 흔히 먹는 잣은 어떤 나무에서 열리는지 찾아보게 되었다. 특별한 품종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름은 단순했다.
‘일반 잣나무’였다. 학명과 영명은 좀 흥미롭다.
학명 : Pinus koraiensis / 영문명 : Korean pine
학명의 ‘koraiensis’에는 고려, 곧 Korea의 뜻이 담겨 있고, 중국에서는 잣나무를 신라송이라 불렀고, 일본에서는 조선오엽송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반도와 그 주변 여러 지역에서 자랐지만, 이상하게도 이 나무는 오래도록 한국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남아 있었다. 내 밭이 있는 자일동 일대에도 잣나무 이야기가 남아 있다.옛날에는 이 근처를 잣나무고개라 불렀다고 하고, 2003년 의정부시에서는 잣나무와 자작나무를 심는 조림사업을 하기도 했다.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그 숲은 군락을 이루었고 산림 휴양공간으로 다시 정비되었다.
그런데 정작 지금 잣나무 군락지는 큰 위기를 겪고 있다.
가평과 홍천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재선충병, 소나무허리노린재, 피목가지마름병, 그리고 온난화 같은 문제로 잣나무가 빠르게 약해지고 있다고 한다. 잣 수확량은 급감했고, 나무는 점점 생육에 불리한 환경으로 밀려나고 있다. 무엇보다 잣나무는 크게 자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열매를 수확하는 일 또한 위험하다.
어르신들이 하나같이 잣나무를 말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돈이 되는 작물을 심으라고 조언하시는 이유도 알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이상하게 이 나무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내가 원하는 때에 백엽차를 마실 수 없다는 것,
땅 위에서 사계절 푸른 모습을 한가롭게 바라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잣나무의 피톤치드가 내가 바라는 풍경의 일부라는 것.
그런 것들이 전부 아쉽다.
한국적인 품종이라 여겨지는 이 나무가 점점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괜스레 마음이 아프다.
내가 무언가를 바꿀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 땅 위에, 잠시라도 이 친구들이 살아 숨 쉬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얼마 전에는 포천에서 잣나무를 키우는 분을 알게 되어 직접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H1 정도 되는 잣나무를 2미터 간격으로 심으면 괜찮을 걸세. 4월에 순이 나니까 너무 늦지 않게 심어서 땅에 적응하게 해보게. 다른 지역은 어떤지 몰라도, 잣을 빨리 따려는 욕심만 없다면 두고 키우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걸세.”
그 말이 판매를 위한 말이었는지, 진심 어린 조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 농원에서 한 가지를 분명히 보았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잣나무들이, 아직 추운 날씨 속에서도 푸르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처음인 나는 조심스러워서, 우선 자일동 밭에 약 70주 정도의 잣나무를 심어보려 한다. 이미 여러 어르신들이 나를 걱정한다. 돈이 안 되는데 왜 하느냐고,
청설모가 먼저 와서 따 먹을 거라고, 30년 40년은 걸릴 거라고.
뭐 어떤가. 30년 동안 나는 그 푸르름을 만끽할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