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내 느리게 걷기

2015년 8월 23일

by leelawadee

2015년 8월 23일

산내와 인연을 맺은 지 1년이 되는 날.


주말 내내 즐거운 친구들이 <CASA merci>에서 함께 지냈다.
딱 1년 전 이 곳에서 만나 사람들.

꺄르르시스터즈 지원씨와 선혜씨

은근히 잘 통하는 작가 안선희

<CASA merci>를 있게 해 준 고마운, 그래서 늘 미안한 sachiko 현정씨

우리는 지리산 시골살이학교 1기 동창생이다.

사진 순서 왼쪽에서 부터 마을에서 자전거 타고 다니는 아가씨로 통하는 현정씨, 까르르시스터즈 선혜씨, 지원씨 그리고 안선희 작가


서울로 돌아가기 전,

1년 전 우리의 오아시스였던 <마을카페 토닥>으로 가는 길.

산내초등학교 앞에서 철물점 주사장님과 딱 마주쳤다.
왜 어제 술 마시면서 자기를 부르지 않았냐고 투정하듯 반가움을 표시한다.
정답게 안부를 묻고 이야기 나누는 그 모습이 정말 보기 좋다.

뒤따라 나무선생님이 걸어온다.

'아, 오늘 산내마을 청년들 돼지 잡는 날이다.'


한여름의 무더위와 가뭄을 잘 이겨내고 있는 산내의 벼들

모두 각자의 길로 향하고 혼자 실상사를 한바퀴 돌아 산내를 천천히 걸어보았다.

산내 삼거리에서 실상사로 가는 도로변의 밤나무

마을 길 밤나무에는 올해도 밤이 많이 열렸다.

아직은 연둣빛 가시를 보이지만 조만간 점점 자라면 가시는 더 뾰족해지고 색깔은 초록으로 변하겠지.

그 속엔 단단한 밤이 익어갈 테다.

실상사의 느티나무

주말이라 실상사에는 사람들이 참 많다.

항상 실상사에서 내가 앉던 바위에는 관광객 아저씨가 자리를 선점했다.

덕분에 나는 느티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관광객들이 떠나고 비로소 실상사는 고요하다.

<발원>을 읽다 문득 느티나무를 올려다 보니 초록잎 사이로 햇살이 쏟아진다.

초록은 더 푸르고, 햇살은 더 빛난다.

조용히 눈을 감고 바람을 느껴보자 마음 먹으니 천왕봉으로부터 불어오는 듯한 실상사의 바람에선 향내가 난다.

지리산 뱀사골 계곡물이 산내까지 흘러 내려 온다.

그러고 보니 주말 내내 전쟁이 날 것처럼 요란스러웠지만
이 마을에선 아무도 그걸로 대화의 주제를 삼지 않았다.
배추 모종을 심어야 하는데 오락가락하는 날씨 때문에 언제 심어야 할지 걱정이라는 어르신들의 얘기가 더 현실적이다.

그리고 산내는 평화로웠다.


1년 전에는 낯설고 조금은 신기한 기분마저 들었던 산내를 이렇게 느릿느릿 혼자 걷고, 느끼고, 바라볼 수 있다니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