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딱따구리>를 읽고
새 학기가 되면
아버지는 새하얀 달력으로 각을 잡아 교과서를 싸고
검고 진한 펜으로 앞에는 과목, 뒤에는 내 이름을 적어 주셨다.
날렵하고도 힘 있는 필체가 어린 내 눈에도 너무 멋졌다.
알록달록, 파스텔톤 바른손 포장지가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교과서를 책상 위에 꺼낼 때마다 나는 자랑스러웠다.
새 학기가 되면
아버지의 오래된 철제 캐비닛이 열린다.
크낙새 연필 한 다스를 꺼내 이제는 가보가 된 일제 가위로 연필을 깎아 주셨다.
우리 집엔 하이샤퍄 연필깎이도, 미제 자동형 연필깎이도 없었다.
부잣집 연필깎이가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공책 위에 연필 한자루 올려 놓을 때마다 나는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