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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 홀리다 Jan 20. 2020

미국의 비경, 모뉴먼트 밸리

겨울에도 좋아요

신들의 계곡에 도착했다.

한번 왔던 곳이라고 달빛도 없이 칠흑같이 어두워도 씩씩하게 둘러볼 수 있었다. 섭씨 영도를 밑도는 추운 날이라 그런지 캠핑 스폿엔 차들이 거의 없다. 기억을 되살려 적당한 곳에 자릴 잡았다. 자리를 깔고 누우니 오늘 겪은 일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꿈을 꾼 것 같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다시 온몸의 세포들이 들고일어난다. 마음을 추슬러 하늘을 보니 반짝이는 별들이 하늘을 빼곡하게 채웠다. 공기가 참 맑다. 하늘은 유난히도 까맣고 별들은 더욱 영롱하다. 옅지만 은하수도 보인다.

쏟아지는 별빛 세례


아침이 오는 소릴 들었다.

어제 몹시 고단했던지 눕자마자 잠들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눈이 떠져 성애 낀 창밖을 보니 날이 밝고 있었다. '누군가 깨웠던 것 같은데 그럴리는 없을 테고 저 멀리 떠오르고 있을 태양, 어스름 밝아오는 드넓은 대지, 그들 가운데 살아가는 이름 모를 생명들이 함께 맞이할 이 아침이 바람결에 지나며 일어나라고 속삭였던 것은 아닐까?'라고 쓸데없는 상상을 해보며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해가 떠오르기 직전 옅은 빛을 모았다


깊이 숨을 들이마셔본다.

좋다! 조금은 쌀쌀하지만 춥지는 않은 이 정도, 살짝 몸을 긴장시켜 잠을 확 깨게 하는 이 정도... 해가 떠오르기 직전 불그레 물든 동녘 하늘과 조금씩  빛으로 젖어가는 뷰트, 따스하게 온기가 퍼지는 황량하기만 한 벌판. 삼발이 둘러메고 야트막한 언덕에 올라 사진기를 켜고 서서 기다려본다. 절정의 순간, 해가 지평선을 통과하며 머리를 내미는 그 순간, 끊임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에서 손을 뗀 채 이글거리는 태양을 바라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해가 조금씩 그러나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솟아오를 때마다 밝아지는 대지, 산과 들, 주변의 바위와 돌과 식물들을 바라보면서 가슴 벅차게 하루를 맞이한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뷰트들


새롭게 시작하는 시간이라서 그럴까,

저녁 햇살과 달리 아침 햇살에는 힘이 있다. 길가 길섶에 비치는 햇살을 통해 보이는 황량한 벌판도 따스하게 보이는 까닭 이리라. 신들의 계곡을 한 바퀴 돌면서 뷰트들을 살피다 보면 햇살이 비치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 보이는데, 이럴 때마다 빛이 오묘함을 느낀다.

구름이 수놓은 하늘 아래 뷰트들이 당당해 보인다.


가는 길이 바빠도

신들의 계곡에서 모뉴먼트 밸리로 가는 길에 둘러보면 좋을 곳이 몇 군데 있다. 구즈넥 주립공원(Goosenecks State Park)이 있고, 멕시칸 햇(Mexican Hat) 바위도 있다. 많은 이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붐비는 포레스트 검프 포인트(Forest Gump Point)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30여분 가는 내내 길 위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어디에 멈추든 어디에 서서 사진을 찍든 모두 아름답고 멋있는 경치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아무리 갈 길이 바쁘더라도, 아무리 모뉴먼트 밸리가 보고 싶어도 천천히 차를 세울 수 있거나 샛길로 빠질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부담 없이 그곳에서 그곳의 풍경을 즐겨본다.

멕시칸 햇 바위 뒤쪽,  산 후안 강(San Juan River)가에 디스퍼스드 캠핑 스폿이 있고, 낚시를 하거나 보트를 탈 수도 있다.


모뉴먼트 밸리를 이야기할 때마다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신들의 계곡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그러나 이 모뉴먼트 밸리 안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물론 보통 사람들이 아니라 공원과 관련된 사람들, 말이나 지프 투어를 하거나 그곳에서 상품을 판매하거나 숙박업을 하는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그곳에 기거하고 있다. 이곳은 미국 땅이면서도 바로 그들의 땅이기도 하다. 미국 원주민 가운데 구성원이 가장 많은 나바호(Navajo)족의 땅, 나바호 자치국(Navajo Nation)이다.

공원 밖에서 보이는 모뉴먼트 밸리


이곳뿐만 아니라 이 근방은 나바호국(Navajo Nation)이다. 그들은 연방정부와 조약을 맺은 자치정부로서 그들 스스로 행정, 입법, 사법과 관련한 여러 기구와 조직을 갖추고 있으며, 이 근방에 사는 인구는 약 20만 명이 좀 넘는다. 그들의 국토에서 원유, 석탄 등 여러 광물이 발견되어 개발이 되기도 하고, 이제는 문을 닫은 광산도 많다. 이들 유전이나 광산은 그러나 그들 스스로 개발하지 못하고 연방정부나 기업과 손을 잡고 개발할 수밖에 없으므로 그곳에서 나오는 수익이 모두 그들 차지가 될 리 없다. 안타깝게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실업률이 42%를 넘어설 만큼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수도와 전기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두룩 하다. 나바호국은 말이 나라지 그들의 국토는 모뉴먼트 밸리에서 보듯이 제대로 된 나무도 없고, 풀들도 제대로 자라지 않는 황톳빛 황무지들이 대부분이다.

공원 주변의 땅, 나바호 내이션의 땅은 몹시도 황량하다


자신의 땅을 외지에서 몰려온 백인들에게 빼앗기고 강제 이주당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먹고살만한 곳은 이미 백인들이 점령해버린 그 땅에서 더구나 땅의 소유권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살아갈만한 마땅한 생계수단이 많지 않았다. 간단한 장신구를 만들어 팔거나 관광 안내를 하거나 그도 아니면 목축을 하거나... 최근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바호 구역 안에 카지노를 설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나마 조금씩 나오는 정부 보조금을 카지노에서 날려 버려 그들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들 뿐 보다 나은 삶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뷰트의 봉우리 부분에는 잔설이 남아있다


사람들과는 상관없이 모뉴먼트 밸리는 멋있다.

방문자 안내소의 마당에서 내려다보는 모뉴먼트 밸리의 전경은 너무 멋있다.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모뉴먼트 밸리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떤 이들은 지프를 타고 가이드 투어를 하기도 하고, 말을 타고 돌아보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차를 이용해 밸리 안을 돌아본다. 길이 포장되어 있지 않지만, 조심해서 운전하기만 한다면 승용차로도 충분하게 돌아볼 수 있다. 밸리에서 해지는 모습을 보거나 해 뜨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나바호 족이 운영하는 공원 안에 있는 호텔이나 캐빈, 캠프 그라운드를 이용하면 좋다. 문제는 늘 예약이 어렵다는 것인데, 이런 경우 주변에 있는 디스퍼스드 캠핑 스폿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모뉴먼트 밸리 방문자 안내소의 마당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모뉴먼트 밸리


공원은 비포장 길을 가면서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는 뷰트들과 바위를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이들은 대부분 이름이 있지만, 바위들 모두가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장갑 바위 등인데, 이름이 있다고 그 이름 때문에 개인의 상상력을 제한받을 필요는 없다. 보이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이름을 붙이다 보면 좀 더 재미있는 구경을 할 수 있다. 공원을 도는 길은 뷰트들을 먼 거리에서 보게끔 나있다. 그 뷰트들 가까이 가려면 미리 허가를 받아 안내원과 함께 가야 한다. 기회가 된다면 그들의 전통양식을 직접 겪어볼 수도 있고, 뷰트 주변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도 있으니 안내소에 문의하면 된다.

말을 타거나 트럭을 타고 둘러보는 프로그램도 있다
공원을 돌면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모양의 뷰트들


혹시 먹을거리를 준비해 간다면 어디든 편안하게 주차한 곳에서 요기를 하면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피크닉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는 곳은 길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있는 '아티스트 포인트(Artist's Point)'밖에 없으므로 이곳에서 편안히 앉아 요기를 할 수도 있다. 사실 이 아티스트 포인트는 공원에서 해지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한다. 석양을 보거나 해지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은 분이라면 두 곳을 추천한다. 하나는 공원안내소의 마당이고, 또 한 곳은 바로 이 아티스트 포인트다. 두 곳 모두 각자 해지는 모습을 다른 빛깔로 보여주므로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어젯밤 죽음의 드라이브를 했던, 95번이 통과하는 산. 어마어마하게 눈이 내렸다.
아티스트 포인트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만약 아티스트 포인트에서 석양을 보려는 사람은 공원 안에서는 내비게이션이 잘 안되므로 공원 지도와 출구를 미리 잘 파악해 둬야 한다. 해가 진 다음 공원은 가로등이나 조명이 없어 칠흑같이 깜깜하다. 거기에다 공원의 탐방로는 일방통행이거나 원을 그리며 돌다 밖으로 나가게 되어있어 처음 방문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헷갈리는 구조로 되어있다. 자동차 전조등으로는 이런 곳에서 길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실제로 공원에서 길을 잃고 상당 시간 헤매다 겨우 빠져나온 경험이 있는 터라 조심할 것을 당부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곳이 있다.

아티스트 포인트를 공원의 마지막 포인트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그다음에 있는 엄지 바위(The Thumb)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는 길이 있는데 이 길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노스 윈도 오버룩(North Window Overlook)이 있다. 이곳은 다른 곳과 달리 조금 걸어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돼있는 곳으로, 공원에서 유일하게 허가 없이 트레일 할 수 있다는 와일드 캣 트레일(Wildcat Trail) 보다는 훨씬 짧지만 이곳도 허가 없이 걸어볼 수 있는 곳이다. 아티스트 포인트에서 보이지 않던 곳을 이곳을 걸으며 살펴볼 수 있으며 찾는 이가 적어 호젓하게 둘러볼 수 있다.

엄지바위 근방에서 바라본 모습, 입구에 있는 엄지 바위,  아티스트 포인트에서 보이는 경치를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이번 여행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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