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추 3, 4, 5번 골절. 천추란 엉덩이 부분에 있는 척추를 말한다. 나는 그중 3, 4, 5번 세 개의 뼈가 골절되었다. 회사에서 미끄럼틀을 타다가 엉덩방아를 세게 찧었다. 미끄럼틀 위에 앉았을 때부터 엉덩이로 느껴지는 경사가 예사롭지 않았다. 눈을 감고 체중을 앞으로 실어 내려갔다. 빨랐다. 눈을 뜨자 휘어진 미끄럼틀의 바깥으로 발이 빠져나가 있는 게 보였다. 재빨리 몸을 미끄럼틀 안쪽으로 기울였다. 안도하는 찰나, 미끄럼틀이 끝났다. 쿵. 찌릿하는 느낌이 엉덩이에서 정수리로 이어졌다.
나는 두 달 전 스위스 취리히로 이주해 왔다. 여름휴가 기간 동안 한국에 있을 참이었기에 한국 병원을 갈 생각으로 일주일 동안 아픈 걸 참고 있었다. 여름휴가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콘서트 일정에 맞추었다. 다시 말해, 나는 척추 뼈 세 개에 금이 간 채로 아이돌 보러 24시간을 이동해 한국에 갔다는 말이다. 콘서트 이틀 전, 병원에서 시킨 대로 침대에 엎드려 쉬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콘서트가 취소됐다는 알림이였다. 취소 공지엔 어려운 말이 없었지만 여러 번을 다시 읽고 나서야 이해가 됐다. 아이돌 멤버들이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는 게 취소의 이유였다. 별 수 없이 콘서트는 다음을 기약하고 취리히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비행은 대기와 이동시간까지 합쳐 총 27시간이 걸렸다. 비행기에선 허리가 아파 한숨도 자지 못했다.
어제는 취리히의 임시숙소에서 새로 계약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새 아파트로 가는 트램 노선은 공사로 1년 동안 운행이 중단되었다. 나는 이삿짐이 든 캐리어를 끌며 트램을 타고 내리고 다시 버스를 탔다. 30도가 넘는 더위에도 버스는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 숙소와 새 아파트 사이를 네 번째 오 갔을 때 이사는 마무리되었다. 조금씩 나눠 옮겼더니 허리가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척추를 다친 것 치고 나는 그래도 괜찮은 편인 것 같다. 의사는 내가 요추를 다쳤으면 응급이었을 것이고, 꼬리뼈를 다쳤으면 화장실 갈 때마다 죽음을 맛보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나마 천추를 다쳐서 큰 통증 없이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잘 때 옆으로 누워 자야 한다는 점, 도넛 방석을 늘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점, 버스가 눈앞에서 떠나도 달려가 잡을 수 없다는 점이 요즘 내가 느끼는 불편의 전부이다.
콘서트가 취소된 것도 생각만큼 최악은 아니었다. 비행기에서만 해도 탈케이팝을 다짐했었지만, 돌아와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최애의 인스타 라이브 다시 보며 울고 웃는 중이다. 콘서트가 취소됐다고 해서 내 휴가가 망쳐진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생긴 시간 덕에 가족들과 함께 삼겹살을 먹을 수 있었다. 원래 일정 대로면 가족 외식은커녕 오빠 얼굴도 못 보고 취리히로 돌아와야 했었다. 미용실에서 머리도 시원하게 잘랐다. 예정에 없이 갔던 미용실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마주쳤다. 고향인 원주도 아닌 서울에 있는 작은 미용실이었는데, 그 친구가 내 바로 전 시간에 예약한 손님이었다. 미용실에서 안부를 묻고 카카오톡으로 더 이야기 나눴다.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기도 한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사도 마쳤다. 이사 갈 집을 구하기가 정말 어려웠었는데 왜 그랬던 건지 계약서에 사인할 때 알게 되었다. 표준계약서에 이사 나가는 건 3월 말, 6월 말, 9월 말에만 가능하다는 조항이 있었다. 내 계약서에는 그 조항 위로 취소표시가 그어져 있었다. 외국인이 많은 건물이라 예외를 뒀다는 설명을 들었다. 내 전 세입자는 트램이 중단되는 것 때문에 이사를 결심한 것 같았다. 나는 계약할 때 이 사실을 몰랐었다. 트램이 중단된다는 소식은 당황스러웠만 그래도 그 덕에 3월도 6월도 9월도 아닌 애매한 시기에 집을 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곳에 오고 두 달 동안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다. 대중교통 이용하는 것부터 집 계약하는 것까지 모두 낯설고 어려웠다. 해외이주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 까지 대략 넉 달 동안, 나는 쉼 없이 날짜를 조정하고, 우편물을 수령하고, 관공서를 방문하는 것 같은 신경 쓰이는 일들을 해내야 했다. 그래야만 익숙한 일상을 정리하고 새로운 일상을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젠 새로운 신분증과 집도 생겼으니, 나는 정말 스위스 사는 사람이 되었다. 지나고 보니 별 일이라 할만한 일은 없었다. 뼈는 붙고 있고 콘서트는 다음에 가면 되고 트램은 멈췄지만 대체버스가 운행된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