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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환 May 01. 2017

국경 한 번 넘기 더럽게 힘드네

보통 사람의 아프리카 여행법 - Addis Ababa, Ethiopia

 때는 아프리카 땅을 밟은 지 이틀 째 되는 날이었다. 형 사무실에서 같이 있다가 점심시간에 나미비아 대사관으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이유는 그놈의 비자. 남아공까지 내려가는 여행 계획에 포함되어 있는 나라 중에 사전 비자를 요구하는 나라는 나미비아가 유일하다. 국경에서 퇴짜를 맞으면 두고두고 써먹을 에피소드가 되겠지만 그러자고 입국 준비를 소홀히 할 순 없었기에 나미비아 비자는 여행 계획을 짤 때부터 신경을 썼다. 한국에는 나미비아 대사관이 없어 보통 여행자들은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나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에서 비자를 받는데 내 경우 에티오피아에 있는 시간이 긴 만큼 웬만하면 아디스아바바에서 나미비아 비자를 해결하고 싶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가장 흔하고 싼 교통수단은 바로 미니버스다. 일명 '딱시'. 우리가 생각하는 택시는 가격을 미리 흥정(contract)하고 간다고 해서 여기선 '꼰트라딱시'라 부른다. 딱시를 두 번이나 타고 한참을 걸어가서야 대사관 밀집지역에 들어갈 수 있었다. 국기가 게양되어 있고 Embassy라고 크게 쓰여 있는 건물을 기대했는데 웬걸. 분명히 대사관들이 모여있는 곳인데 국기 하나 보기가 힘들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묻고 물어 나미비아 대사관으로 보이는 곳의 문을 두드렸다. 입구에 에토샤 국립공원 포스터가 붙어 있는 걸 보니 여기가 틀림없다. 한 할아버지가 철문을 끼익 열고 나오셨다. 경비원이라기엔 너무 노인이었다. 나미비아 대사관이 맞냐는 물음에 할아버지는 최근에 대사관이 위치를 옮겼다는 말만 하시고는 다시 문을 걸어 잠그셨다. 하긴 또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리면 그게 또 이상하지.


 시간이 없어 다급한 마음에 마침 지나가는 꼰트라딱시를 불러 세웠다. 목적지를 얘기도 안 했는데 다급한 손짓을 하며 기사가 말한다.


"얼른 타"

"새로 옮긴 나미비아 대사관 위치 알아?"

"알지 알지. 얼른 타라니까."


 그가 먹잇감을 발견한 듯한 눈빛을 보였을 때 눈치챘어야 했다. 뭐가 됐든 일단 태우고 보자는, 서비스 정신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마인드를 가진 택시 기사는 아니나 다를까 주위를 빙빙 돌기만 할 뿐 대사관을 찾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점심시간은 끝나버렸다. 잘 모르겠으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자고 해도 기여코 제멋대로 가더니 결국 우리 시간을 허비하고 헛돈까지 쓰게 한 것이다. 내릴 때가 되자 그는 적반하장으로 기름을 더 많이 썼으니 약속한 50비르가 아니라 70비르를 달라며 도리어 생떼를 쓰기 시작했다. 형과 택시기사의 실랑이 끝에 결국 50비르만 던져주고 내렸다. 마지막엔 주먹이라도 날아올 것처럼 분위기가 살벌해져 나는 그냥 20비르 더 줘버리자고 했는데 비슷한 일을 많이 겪어본 형은 이럴 때 같이 화를 내줘야 저것들이 또 안 저런다고 했다. 역시 짬밥은 허투루 먹는 게 아니다.


 그다음 날 겨우 찾아가 신청에 성공한 비자를 바흐다르와 곤다르를 다녀온 후 열흘 만에 찾으러 가는 날이 됐다. 오전 내내 나미비아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봤는데도 받지 않아 내심 불안했는데 대사관에 도착하자마자 손쉽게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큰 건 하나 해냈다! 얼마나 기분이 좋고 뿌듯하던지 여권을 몇 번이고 펼쳐보았다. 비자 하나에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이제 아프리카 여행이 끝날 때까지 비자 걱정할 일은 없다.


대사관 옆 중식당. 중국 식당은 정말 어디에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콜라 중독에 걸린 원숭이와 500살 쯤 돼 보이는 거북이가 마당에 돌아다니는 모습에 또 놀라고


 다시 차를 타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거의 다 와갈 무렵, 옆에 가던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손으로 우리 차바퀴를 가리킨다. 처음엔 왜 저래, 하고 무시했는데 그런 차들이 많아지자 바퀴에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알아챘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바퀴를 확인했다. 왼쪽 뒷바퀴가 펑크가 나서 푹 내려앉아 있었다. 차가 안 굴러갈 정도로 완전히 주저앉은 것도 아닌데 이걸 발견하고 신호를 주다니.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오지랖이 넓은 건지 아니면 관찰력이 좋은 건지 아무튼 덕분에 발견해서 다행이다. 대사관까지 데려다주시고 또 점심까지 사주셨는데 이런 일까지 생겨서 사무장님께 면목이 없었다. 그깟 비자 한 번 받는 것 치고는 대가가 너무 크다. 국경에서 비자로 딴지 걸기만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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