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웨스 앤더슨의 연출 장치 활용
웨스 앤더슨의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따뜻한 미술과 화려한 미장센 사이 분명히 숨어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나는 그렇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헨리 슈거의 기상천외한 이야기, 독, 쥐잡이 사내, 백조(헨리 슈거의 기상천외한 이야기 외 3편)
로얄 테넌바움, 프렌치 디스패치, 페니키안 스킴
모두 가족, 동료, 혹은 개인의 이야기를 개인이 풀어주는 방식이다.
(로얄 테넌바움, 2002)
특히 로얄 테넌바움은 가족 버전 포레스트 검프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포레스트 검프를 보고 주인공에게 정들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로얄 테넌바움을 보고 테넌바움 가족과 일라이, 그 외 등장인물 모두에게 정을 들이지 않는 건 매우 어려울 것이다.
'정'은 한국의 고유 정서라고 말한다. 웨스 앤더슨 영화에서 정을 느끼는 건 한국인인 나뿐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분명히 느낀다.
웨스 앤더슨 영화에서 정을 느끼고 친밀감을 느끼는 이유는 영화라는 극 안에 극을 설정해서 영화를 풀어나가기 때문이다.
정말 말 그대로 웨스 앤더슨은 영화를 연극처럼 이용한다.
그 특징을 잘 보여주는 부분은
같은 배우의 반복이다.
랄프 파인즈, 베네시오 델 토로, 토니 레볼로리
에이드리언 브로디, 월렘 대포, 빌 머레이, 안젤리카 휴스턴 등등
(훨씬 많다. 웨스 앤더슨 영화에 나온 배우들은 거의 2번 이상은 웨스 엔더슨 영화에 출연한다.)
(랄프 파인즈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쥐잡이 사내)
같은 영화 내에서 1인 n역을 하기도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웨스 앤더슨은 다른 영화에 자신의 사단의 배우들을 정말 연출 도구처럼 사용한다.
인형극을 보는 것 같다고 느낄 때도 있다.
(에이드리언 브로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다즐링 주식회사, 프렌치 디스패치)
배우의 반복은 감상자에게 있어 그 유명한
'내적 친밀감'을 유발한다.
나 또한 페니키안 스킴을 보고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베네시오 델 토로가 되었는데, 프렌치 디스패치에서 미치광이 화가로 출연하여 베네시오 델 토로는 내 확고한 최애배우가 되었다.
극에서 인형처럼 활용된 배우들은 약간은 수동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에(등장하기 전 배우들이 투명한 문 뒤에서 기다린다거나 건물이 판자라던가..)
사실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뮤지컬이나 연극을 보라며 욕할 수 있지만,
(헨리 슈거의 기상천외한 이야기, 2023)
(헨리 슈거는 공중부양 한답시고 배경과 같은 색의 박스에 앉는다.)
부자연스러움에서 느껴지는 분명한 인간다움에 정이라는 감정은 영화를 보며 생기게 된다.
(문 뒤에 보이는 남자는 곧 등장할 초능력자다)
웨스 앤더슨 영화는 내가 말하는 '극' 형식과 '준사실적인 영화'로 구분할 수 있다.
극형식은 흔히 웨스 앤더슨의 단편영화에서 극단적으로 활용되고 준사실적인 영화는 흔히 장편영화에 사용된다.
굳이 '준'을 붙인 이유는 두 분류 모두 해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장편영화는 보통 액자식 구성으로 이루어지기에 크게 보면 극형식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현대적인 기술인 영화를 원초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보면서 아무리 자극적인 내용일지라도 스트레스를 느끼기 힘들다.
(스트레스는 많은 영화에서 의도하지만 웨스 앤더슨 영화에서는 느끼기 힘들다.)
스트레스 안 받고 정을 느낄 수 있고 내적 친밀감까지 생기는 딱 한국인에게 맞는 작품들 아니겠는가
이제 해설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웨스 앤더슨 영화에서 해설자는 대부분 등장한다.
[헨리 슈거의 기상천외한 이야기 중 1차 해설자인 로얄드 달(랄프 파인즈)과 2차 해설자인 헨리 슈거 본인(베네딕트 컴버배치)]
웨스 앤더슨의 해설자는 감상자에게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 설명하는 일반적인
해설자가 아니다. 오히려 대본을 그대로 읽는 듯한 느낌을 줄 때도 있다.
[영화 백조의 해설자 피터 왓슨(루퍼트 프렌드) 본인의 유년 시절을 해설한다.]
자칫 몰입을 방해할 수 있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해설자를
거의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른다.
분명 감상자는 해설자의 해설에 따라 영화를 보고 있는데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 것
같이 몰입하게 된다.
웨스 앤더슨은 해설자를 정말 무정한 장치,
기계로 설정하고
등장인물들에게는 '정'을 부여하여
어느 순간 감상자는 등장인물들에게 몰입하고 해설자라는 장치를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등장인물과 해설자가 같다 하더라도 해설자는 과거의 자신을 설명하기 때문에 감상자는 둘을 쉽게 분리할 수 있다.)
부자연스러운 연출과 의도적인 사물배치, 대칭적인 구조는 정이 어떻고 내적 친밀감이 어떻든 미장센을 이야기보다 우선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건 결국 그 미장센은 이야기를 꾸며주는 역할이고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라는 것이다.
장치가 본체보다 화려하고 커질 순 있으나 동력은 본체로부터 나온다.
내가 생각하는 웨스 앤더슨은 미술에 미친 인간이 아니다.
미술과 연극이라는 예술 장르를 영화에 합쳐둔 그러니까 미술(예술) 영화감독이 아니라 '영화감독'이다.
웨스 앤더슨 영화를 볼 때 아! 웨스 앤더슨이니까 장면 하나하나 눈에 담아야지! 내용은 딱히 중요하지 않겠지!
가 아니라 일반 영화 보듯 미술은 장치로만 보는 경험도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그 경험을 하기 위해 가장 먼저 로얄 테넌바움을 추천한다. 내가 말하는 준사실적인 영화에 부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