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각자 로망이 있다. 나의 로망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 800km 전부를 걷는 것이 아닌, 그 길의 끝에 다다르는 것. 그리고 세상의 끝을 마주하는 것. 대학생 시절부터 품어온 긴 로망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알게 된 순간부터 가져온 로망이다. 하지만 실행할 수는 없었다. 대학생의 긴 방학 때 가면 되지 않았냐고? 그때는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 덕에 뙤약볕의 7, 8월의 순례길. 엄두를 내지 못했다. 휴학 시절은 또 어땠나. 그때의 나는 가난했으니까.
변명 같지만, 사실 이유는 딱 하나였다. 바로 용기 부족. 치기 어린 나이였지만, 상상만 하던 꿈을 과감히 실행으로 옮길 만큼의 무모함이 내겐 없었다. 지금은 어떤가? 지금의 나는 드디어 무모했던 꿈을 실행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어른이 되었다. 더 이상 대학생 때처럼 가난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대학생 때보다 훨씬 짧아진 여름방학이 나의 새로운 장벽이었다. 짧고 더운 여름 방학. 나는 순례길은커녕, 학기 동안 떨어진 체력을 보충하기에도 바빴다.
그런 내게 로망을 이룰 기회가 생겼다. 학교 공사로 생긴 긴 방학, 내 인생 최초의 9월의 여름 방학. 9월의 방학이 확정되자 나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이 스쳐 지나갔다. 단 하나의 생각 때문이었다.
'적어도 10년 안에 내가 9월에 방학을 맞이하는 날이 있을까?'
그 생각과 함께 나는 바로 비행기표를 찾기 시작했다. 로망으로만 품던 길을 드디어 진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결심한 '나의 로망, 산티아고 순례길'. 사리아에서 산티아고까지의 110km. 그리고 반드시 마주하고 싶은 세상의 끝까지. 여전히 치기 어린, 어쩌면 무모한 나는 110km 앞에 선다. 어깨를 짓누를 배낭의 무게, 발밑에 펼쳐질 낯선 길, 홀로 걷는 외로움. 하지만 오래도록 붙잡아온 로망의 길이 이제 내 눈앞에 있다. 속된 말로 쫄리긴 하지만, 두렵지는 않다. 오래 품어온 꿈의 길이기에, 나는 조용히, 천천히, 그 로망 속으로 걸어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