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아직 어둠이 남은 사리아의 길 위에 섰다. 공기는 차가웠고, 숨은 하얗게 흩어졌다. 배낭을 메고 한걸음을 떼니 ‘드디어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이라 그런지 괴로움이나 지침보다는 설렘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조금 두려웠다. 이 어두운 길에 나만이 있다는 것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국의 길에 오롯이 혼자서 걸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자꾸만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하지만 1km, 2km 걷다 보니 깨달았다. '이 길에서 나를 헤칠 수 있는 사람은 없구나.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도와주겠구나'라는 깨달음. 그렇게 깨달음을 얻고 나니 더 자신감 있게 한 걸음씩 뗄 수가 있었다. 언덕 위, 멀리 풍력발전소가 보였다.‘저건 너무 멀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걷다가 지쳐 앞을 보면 멀기만 했던 풍력발전소가 가까워져 있었다. 그게 순례길의 시간이었다. '아,“‘언제 도착하나…’ 중얼거리면, 길은 늘 답을 보여줬다. 목적지가 보였고 쉴 곳이 보였다.
사리아에서 출발하는 순례길인 터라 110km 지점에서 출발해 100km 비석을 본다 해도 큰 감흥이 없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봤던 100km 비석, 생각보다 감격스러웠다.
초반에는 사람을 거의 마주치지 않았다. ‘다들 어디 있지?’ 싶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내가 선두에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믿기지 않게도 숙소에 도착하니 2등이었다. 걷는 중간중간 바나 카페를 몇 번 봤다. 초반에는 “조금만 더 걷고 가야지” 하며 지나쳤고, 후반에는 “조금만 더 가면 포르토마린인데” 하며 또 지나쳤다. 결국 한 번도 쉬지 않고(못하고) 묵묵하게 걷게 되었다. 한 번 마트에서 제로콜라를 사 마시고 잠깐 쉬어갈까 고민했지만 위생산태가 좋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그래도 마트에서 귀여운 “세요”(Sello, 스탬프)를 받았다.
길 끝 무렵에는 미국인 할머니 세 분과 잠시 함께 걸었다. 하필 같이 걷게 된 구간이 길이 조금 험해서 손을 잡아드리거나 부축을 해드렸다. 그랬더니 고맙다고 너와 마주쳐서 다행이라고 이야기해 주셨다. 같이 사진도 찍자고 하셔서 브이를 했더니 한 분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셨다.
“브이는 히피의 사인이야. 두 번째 손가락은 러브 세 번째 손가락은 피스야. 브이는 'love and peace'라는 뜻이야”
괜히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아무 생각 없이 사용했던 브이. 그게 사랑과 평화라는 뜻이라니. 그걸 알게 된 곳이 하필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니. 괜한 의미부여를 하게 되었다. 피곤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했다.
저 다리를 건너면 보이는 마을! 저 마을이 바로 포르토마린이다. 다리를 건너는 길을 추웠다. 하지만 여기만 건너면 끝이구나라는 생각이 나를 들뜨게 했다.
12시 반쯤, 드디어 포르토마린에 도착했다. 이 사진은 포르토마린을 들어가는 계단 앞이다. 25km를 걷고 마주한 높은 계단. 솔직히 처음 계단을 보니 절망적이었다. 저걸 언제 다 오르나 고민하고 있을 때, 나보다 조금 늦게 도착하신 할어버지 네 분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셨다. 저 막막한 계단 아래에서 기뻐하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을 굳게 먹고야 저 다리를 올라갈 수 있었다. 다리를 올라가고 좀 더 걸으니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해서는 단순했다. 바로 시트를 정리하고 씻고 빨래하고 밥을 먹으러 나왔다.
밥을 먹으러 출발하기 전, 나는 발을 떼기가 두려웠다. 사실 나가고 싶지 않았다. 아픈 발과 쑤시는 무릎이 나의 허기를 막았다. 하지만 나는 나가야 했다. 일단 나갔다. 나가서 햇빛이나 쬐고 마음을 다잡을 겸 숙소 앞에 있는 의자에 잠깐 앉았다. 앉아서 멀리 바라보니 익숙한 광경이 보였다. 풍력발전소였다. 걸어오며 봤던 풍력발전소. 멀어 보이기만 했던 그 풍력발전소. 내가 그 풍력발전소를 지나쳐온 것이었다. 그제야 용기가 생겼다. 저 멀던 풍력발전소도 지나쳐왔는데 500m 밖에 있는 음식점을 못 가겠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과 동시에 속으로 '가자.'라고 결심했고 드디어 음식점으로 향했다.
유럽에 온 지 3일째 되는 날, 드디어 첫 음식점에 들어갔다. 너무 설레서 그런가 너무 많이 시켰다. 하지만 남김없이 다 먹었다. 맛이 있었나 없었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배가 고팠다. 그러는 와중에 '이렇게 먹으면 거의 폭식인데'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렇지만 "아잇, 이 정도는 살 안 쪄"라며 부지런히 먹었다.
저녁에는 미사에 갔다. 낯선 언어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 낯선 경험 안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가톨릭 신자라서 가능한 경험, 각 나라의 언어로 드려지는 미사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게 작은 특권처럼 느껴졌다. 오늘의 나는 많이 걸었고, 조금 무모했으며, 무언가를 해냈다는 묘한 만족감에 잠겼다. 멀리 있던 풍력발전소가 가까워졌듯, 내 로망도 조금은 현실에 닿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