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고 싶어서 대충 시작해볼까요

Shall we start together?

by 이나영

일단 시작해볼까?

이 말이 얼마나 무겁고 두려운 말인지!


시작했다가 실수하면 어떻게 하려고.

준비도 없이 시작했다가 누구한테 피해라도 주면 어쩌려고.

잘못 시작하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할까.

이 시작이 오히려 내게 손해는 아닐까.

시작했는데 제대로 하지 못해서 실망시키면 어떻게 하지.

내가 그 감정과 마음과 상황을 견딜 수 있을까.


이 완벽하고 싶은 마음은 단지 일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취미생활도 완벽했으면 좋겠다.

인간관계도 완벽했으면 좋겠다.

집안 살림도 완벽했으면 좋겠고,

배우자를 대하는 내 모습도 완벽했으면 좋겠다.

출퇴근 길도 완벽하게 효율적이면 좋겠고,

운동도 기왕이면 가장 완벽한 시간대에 하고 싶다.

어차피 할거 효율적이고 가장 최선의, 최고의 순간을 선점하고 싶다.




그런데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으로 내가 하는 말들은

"괜찮아! 이거 실수하는 거 선생님은 하나도 화가 안나.

00이는 배우고 있는 어린이고,

지금 이걸 눈물이 나도 도망가지 않고 배우고 있어서 너무너무 자랑스럽고 기특해!"

였다.


더 어린 아기들을 가르칠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6~9살의 우당탕탕 어린이들과 함께하면서

내 안의 어린아이에게도 함께 이 말을 하게 된다.


"괜찮아! 너 지금 실수한다고 의미 없는 거 아냐.

네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미처 부족했다는 것을 그렇게까지 널 비참하게 만들 만큼 비난하지 않아.

너도 역시 배우고 있는 어른이고, 너는 앞으로도 배워야 할 어른이야.

지금 이걸 눈물을 흘리면서도 도망가지 않고 배우는 것이 자랑스럽고 기특한거야."



T팩토리가 주는 격려

바쁜 일정 중에 정말 뜬금없게 전시회 가고싶은 마음에,

성수에 간 김에 역 근처 무료 팝업중인 T팩토리에 갔다가

오늘 글을 발행할 수 있는 용기(?)를 얻어왔다.


1을 365번 곱하면 그대로 1이지만, 1.01을 365번 곱하면 38에 가까워진다는 말이

혹여 내가 실력이 없어 제자리 걸음이라는 것을 알아채기 두려워서

그냥 자리에 앉아서 이전의 내 열정을 아쉬워만 하고 있던 내게


걸어봐!

제자리 걸음만 잘 걸어도, 네 몸에 활력이 돌고 혈액순환이 될 거 아냐.

제자리 걸음만 걷는다 해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해도,

네가 어떤 부분이 약해서 빙글빙글 돌게 되는지도 알게 될 거 아냐.

괜찮으니까 일단 일어서서 발을 떼어봐!


라고 열정적이고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내 또다른 모습이,

언젠가부터 힘을 잃어버린 그 내 모습이 나를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방향을 잘못 잡아서 걸으면 되돌아 올 것이 두려워서 걷질 못하던 나를 보게 되었달까.




언젠가 그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이 곡을 잘 치지 못하고 삐끗하고 화음이 맞지 않고

내 실력이 미숙하고 어리숙한 것을 견뎌낸 사람이 된다면

그 곡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칠 수 있다.


피아노를 나름 치는 나는 도리어 다른 악기를 배우는 데 있어서 음을 금방 잡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악기에서 나는 그 삐걱거리고 음이 맞지 않는 소리를 견디기 힘들어서

기타, 플룻, 우쿨렐레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만뒀다.

말 그대로, 내가 예쁜 소리를 피아노만큼 내지 못하는 것이 견디기 힘들어서.


그렇지만 사실 그 삐걱대는 소리를 바닥에 다진 다음에서야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것을 나는 안다.




내가 어떤 이유에서 이렇게 되었는지는 차치하고!


완벽하고 싶으니까 대충 시작해보려고 이 글도 적기 시작한다.


(사실 이 글 브런치 작가 되고 첫 글이라서 완전 잘 적어보고 싶어서 고민만 2주 한 것 안 비밀이다.)


어린이의 음정박자가 맞지 않는 노래소리가 사랑스럽고 귀엽듯이,

내가 나를 조금 사랑스럽고 귀엽게 봐주려고 시작한다.

아, 그래서 대충 시작한다.


내 눈에는 내가 너무 대충인 것 같은데,

애쓰고 있는 나한테는 생각보다 노력하는 걸테니까 사랑스럽고 귀엽게 봐주기로 했다.


도망가지 않고 대충 시작해보련다.


새해에 많은 계획들을 세우지들 않는가.

나는 사실 어쩌면 한 9살 정도부터는 원대한 계획들을 확실히 세우긴 했는데

그게 왜 그렇게 시작하기도, 해보겠다고 소리를 내보기도 그렇게 힘들었나 모르겠다.


옆에서 손잡고 날개를 달아준다고 격려해주는 내 사랑이 있으니,

그리고 서툴렀지만 자신들의 방법들로 나름 사랑해준 지금껏 만난 많은 격려들이 있으니,


도망가지 않고 대충 시작해보자!

그냥, 대충! 일단! 웃으면서! 눈 딱 감고! 나를 기특해해주면서!


Shall we start together?

:)